꿈처럼 봉쇄가 해제되었습니다.
2022년 5월 30일 확진자 6명 무증상 확진자 61명
몇 주 째 반복된 월요일 같지 않은 월요일 아침.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한국에 있는 바이어에게 상하이 및 중국 코로나 상황을 간단히 메일로 보고한다. 두 달이 넘게 봉쇄가 이어지면서 실제 업무에 타격도 많이 받았을뿐더러 실제 상황을 알 수 업도록 편집이 잔뜩 된 공식 발표만으로는 실 상황을 파악하가 어려운 탓에 바이어 측에서 별도로 요청한 업무이다. 나는 교민단체방에서 제공하는 코로나 수치에 대한 그래프를 넣어 신빙성도 더하고 공식적인 정부 발표는 이러하지만 실제는 이렇다 등의 경험에 의한 예측도 한 줄 정도 넣어 상황을 전달한다.
오늘 아침 보고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났다.
“6월 1일부터 6월 하순까지 단계적으로 봉쇄를 해제하겠다는 상하이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긴 하나, 이전 사례들로 보아 빠르면 6월 중순쯤 정상적인 업무가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메일을 발송한 지 오래지 않아, 갑자기 회사 단체 대화방에 공지가 내려왔다. 6월 1일부터 다시 출근을 할 예정이니, 주민위원회의 불허 등으로 출근이 불가능한 경우, 근거가 되는 증빙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물론, 빨간 도장이 꼭 찍힌 공문. 말도 안 돼. 1일이면 내일모레인데 가능해?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쉽게 해제가 될 리가 없다며 웃음을 지은 것이 나 하나는 아니었던 듯 직원들 몇몇이 “길은 뚫린 거냐, 사무실은 들어갈 수 있는 거냐, 아파트 밖은 나갈 수 있는 거냐”등등의 질문을 보내왔다. 아니, 아직 집 앞 슈퍼도 못 나가는데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출근이라니요. 맘이 너무 급하신 거 아니에요? 그리고 평소 큰 목소리를 내던 직원 하나의 무심한 한마디로 다시 단체방은 조용해졌다.
“到时看看吧 그때 가서 보자고.”
이틀 후 2022년 6월 1일.
나는 9시가 조금 못 된 아침, 평소 출근을 하던 대로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얹어 삑 소리와 함께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정말 거짓말처럼 6월 1일 00시를 기준으로 상하이 시 전체의 봉쇄가 해제되고, 그 어떤 곳에서도 확진자 발생 이유를 제외하고는 출입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공지가 떨어졌다. 그래서 5월 31일 오후 늦게부터 갑작스러운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한참 사용하지 않은 화장품은 입구가 굳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곰팡이라도 낀 듯 거뭇거뭇 해진 퍼프는 과감히 버려야 했다. 한동안 식당 사용이 불편할 테니 먼지가 뽀얗게 앉은 도시락도 다시 꺼내 씻어야 했다. 수저가방은 어디 있더라. 봉쇄 직전 구매하고 신발장에 내내 가둬 두어야 했던 석 달 묵은 새 구두에 낯설게 발을 넣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해제라니.
두 달 여 만에 만나는 직원들도 딱히 달라진 것 없는 모습이었다. 한국에 다녀오신 뒤 3주 격리가 끝나자마자 두 달간 더 봉쇄를 당하신 사장님만 마치 배냇머리를 자르지 못한 아기 같은 헤어스타일로 우리를 놀라게 만들었다. 평소 잔머리 한 올 내려오지 않게 깔끔한 헤어를 유지하는 분이신데, 본인도 무척 견디기 힘드셨든 듯 간단히 조회를 마치고 황급히 미용실을 다녀오시겠다며 사라지셨다 (다음날 단정해지긴 했지만 역시 이상한 헤어스타일로 등장하신걸 보니 아마도 단골 미용사 분은 아직 봉쇄 중이셨으려나...)
꿈에서 깬 듯 모든 게 그대로였다.
1층 편의점은 부족한 상품들이나마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은 채 손님들을 기다리고 아직 겨울 점퍼와 목도리, 모자 등 30도를 육박하는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옷을 두른 마네킹들이 멋쩍은 옷가게들도 손님들을 분주히 맞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식당에서 포장된 음식을 받아 강변 의자에 혹은 바닥 여기저기에 앉아 배를 채우고, 담배를 피우고, 또 수다를 떨었다. 마스크는 턱에 걸치기도, 주머니에 넣기도, 혹은 보이지 않기도. 역시 봉쇄 직전 그대로다. 누가 이곳을 어제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개와 고양이들이 누워 낮잠을 자고 뱀, 개구리들이 로드킬 걱정 없이 자유롭게 지나다니던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피스 입구 가게 입구마다 선명히 새로 붙은 큐알 코드와 72시간 내 핵산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매의 눈을 가진 관리원들이 더 늘어났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일까.
갑자기 무서워졌다.
가둘 때도 예고 없이 가두더니 해방(?)도 이렇게 갑작스럽다니.
게다가 한 계절이 다 가도록 긴 시간을 집에만 갇혀있다 풀려난 사람들은, 마치 어제저녁 퇴근을 했다 오늘 출근을 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타고, 물건을 사고, 일을 하고 또 내일 출근을 위해 정시에 퇴근을 했다. 아침잠을 이기지 못해 늘 주문에 실패했던 온라인 식품 구매도 이전처럼 1시간 만에 띵동 띵동 배송 완료 알림을 보내왔다. 평소의 두배가 넘는 가격에 구해야 했던 채소들은 다시 봉쇄 전 가격표를 착하게 달고 있다. 나는 봉쇄 해제가 된 지금의 이 세상이 어색해서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제 그만 풀어달라고, 배가 고프니 구호품을 달라고, 학교 기숙사에서 집으로 보내달라고 냄비를 두드리고 분노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갑자기 이 많은 배달원들과 식품들은 어디에서 난거지?
2개월이 넘도록 눌려 있던 사람들의 분노는 오늘 6월 1일 00시, 봉쇄 해제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지던 폭죽과 흔들리던 오성홍기, 그 불꽃과 바람에 실려 다 사라진 걸까?
갑작스럽게 갇힐 때는 아무 말 못하고 조용히 갇히더니 해제를 그렇게 요란하게 맞을 줄은 몰랐는데, 밤 늦게까지 폭죽을 터뜨리고 길거리에서 환호를 하던 사람들의 흔적도 오늘아침의 길거리에는 남아있지 않다.
그냥 모든 것이 하룻밤의 꿈처럼, 이제 잠에서 깨어났으니 이전처럼 살아가면 된다고, 모르는 척 살아가라 얘기하는 것 같다.
나만 알고, 너만 아는, 그 시간에 여기 있었던 우리만 아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60여 일의 시간.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같은 궤도를 도는 버스,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쓰레기를 쓸고 있는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사거리에 숨어 헬멧을 쓰지 않은 전동차를 단속하는 교통경찰.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빽빽이 정렬된 수많은 공용자전거들. 두 달 전과 같은 모양의 갑작스러운 오늘을 만들어 내느라 상하이 정부는 텅 빈 거리에 얼마나 많은 인력과 돈을 쏟아부었을까. 그 노력에 감사해야 하나 싶지만 ‘레드썬’과 같은 주문으로 그동안의 맘고생을 다 잊으라 하는 것 같아 그저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퇴근해 집에 돌아와 보니 지난 주말에 한 움큼 불려 키우기 시작한 녹두가 벌써 물통 키를 넘어 밖으로 뻗쳐 날 만큼 자라 있다. 봉쇄 해제가 될줄 모르고 콩나물 대신 먹으려 했지만 정상생활로의 복귀를 축하하는 꽃다발처럼 느껴져, 왠지 이 아이를 무쳐 먹고 싶지 않다.
세상을 놀라게 한 상하이 봉쇄, 두 달 간의 시간은 빠르게 잊히겠지만, 내가 기억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녹두 한 줌으로는 한 끼로 먹기에 너무 많은 숙주가 자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노란 콩 두 줌은 두부를 만들기에는 적은 양이라는 것도 억지로 알게 되었고, 깔끔한 신사도 두 달 동안 머리를 자르지 못하면 동네 바보형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굴소스만 있으면 웬만한 중국 요리쯤 흉내 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도 개인의 자유가 단체의 공익을 위해 철저히 희생 될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일부의 생각은 거대한 공권력과 언론 앞에서는 티도 나지않는 먼지처럼 묻힐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시간을 잊어버리기에 , 나는 억지로 알게 된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 시간을 지우려는 그들이 무섭고, 빠르게 기억이 지워지는 이 사람들이 무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