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둘기로소이다

다시 이 방주로 돌아오기 싫어요

by 보부장

드디어 외출을 허가하는 출입증이 도착했다.


아차, “드디어”라는 말을 쓰고 싶진 않았는데. 원래 19일이라던 첫 외출이 아무 이유도 없이 미뤄지면서 다시 공지된 일정이라 반가웠나 보다. 명함만 한 작은 종이에 볼펜으로 우리 집 동 홋수가 바쁜 글씨로 쓰인 소중한 출입증.

물론, 가능하면 나가지 말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다양한 사자성어들도 볼 수 있다.

그와 중에 점잖은 척 앉아있는 협박성 한 마디, 不添麻烦, 귀찮은 일을 만들지 말라니. 참 수준 높은 표현이다.




여러 가지 제한 속에서 5월 23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주어진 자유다.

텅 빈 거리에서 하늘을 보고 땅을 걷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데 자유라니. 이건 사람들을 약 올리는 거라고, 기분이 나쁘다며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외출 허용이라는 말이 나돌 때부터 나는 팔짱을 끼고 돌아앉아 툴툴거리고 있었다. 한인촌 슈퍼라도 다녀오겠다는 친구에게 그러다가 갇히면 어쩔래, 그러다 감염이라도 되면 어쩔래 은근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출입증을 앞에 두고 조금씩 궁금해졌다.

슈퍼는 정말 서로 들어가겠다고 어깨를 밀치는 사람들로 가득할까?

차도 사람도 없이 텅 빈 길은 어떤 느낌일까?

유일하게 허락된 공유 자전거를 타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옆 동네로 넘어가는 길에는 아직도 철망이 무겁게 놓여있을까?



첫 외출일 공지부터 엉덩이가 들썩하던 601호 언니를 슬쩍 찔러본다.

“우리 나가볼까?”

오전 내 배탈이 나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바빴다는 언니는 고맙게도 내 툴툴거림이 기억나지 않는 척, 슬그머니 따라 나서 준다. 비정상적인 대장의 상태로 인해 갑자기 맞게 될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한 우려도 우리의 외출을 막지는 못 했다. 언제 굳게 닫힐지 모르는 대문, 아직 꾸르륵 거리는 배를 야무지게 동여매고라도 나가겠단다.




나는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채 널브러져 있는 공유 자전거 중 작동이 가능한 자전거를 겨우 골라내어 미리 준비한 알코올 티슈로 손잡이와 안장을 깨끗이 닦아 냈다.

큰길 입구로부터 가림막으로 가로막혀 차들이 들어올 수 없는 작은 도로를 자전거로 맘껏 달리며 마치 바닷가에서 본 것처럼 쨍하게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실컷 올려다보았다. 분명 집에서도 보던 그 하늘인데, 밖에서 보는 하늘이 이렇게 낯설고 또 반가울 줄이야. 차량 운행이 줄어 그런지 봉쇄 이후 하늘은 내내 맑은 쪽빛이다. 이런 날 상하이 서쪽 끝에서 보면 동쪽 끝의 동방명주도 선명히 보이는데, 죄다 문을 닫아놓은 터라 신나게 올라갈 건물 하나가 없다. 내 시선에도 부족한 자유가 너무 아쉽다.




2020년 코로나 초기 때에도 이 정도로 차가 없지는 않았는데, 큰길에는 짐을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식 트럭과 누굴 실어 나르는지 모를 대형버스들만 간혹 보일 뿐 개인 차량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 와중에 금방 내려놓은 듯 꽃들이 환하게 만발한 화분들은 중앙선마다 왜 놓여있는 건지, 마치 촬영을 위해 준비된 영화 세트장이 이렇게 생겼으려나 싶다. 누굴 반기는 꽃들이려나. 한쪽에서는 길에 나오지 말라며 대문에 못을 치고 한쪽에서는 보는 사람 없는 길에 꽃단장을 하다니. 참 앞뒤가 맞지 않는 도시다.




누구는 그 짧은 시간에 보도블록 사이사이 풀이 자라난 와이탄 구경도 가보고, 누군가는 큰 도로로만 자전거를 몰아 평소 좋아하던 동네도 둘러보고 했다지만 목적지도 없이 그저 뻥 뚫린 넓은 길을 신나게 달리던 나는 곧 괜히 심통이 나 자전거 머리를 돌려버렸다. 맑은 하늘에 깨끗해진 기분도 잠시, 입꼬리와 함께 기분이 가라앉았다. 억울했다. 이 짧은 허락이 뭐라고 좋아해야 하나. 원래 내 시간이었는데. 왜 내가 이런 하찮은 허락을 기다려야 하나. 지난 60일간의 수많은 사람들의 인내와 힘겨움이 그들 주장대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이 땅을 코로나로부터 구원했을까?




우리는 눈치 없이 맑은 하늘과 뜨거워지는 햇볕 아래 오래간만에 익숙지 않은 땅을 걷느라 쉬 피로해진 다리를 쉴 곳 하나 찾지 못하고 어수선한 슈퍼에 들러 공구로는 구하지 못한 작은 살림살이들 몇 개만 구매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를 설레게 했던 출입증도 경비아저씨들에게 압수당했다. 괜히 아쉽다, 아차, 아쉬워하면 안 되는데 에잇. 내 머리로 하는 생각과 내 마음으로 뱉는 말은 이렇게 다르구나.




긴 봉쇄 후 어렵게 맞은 잠깐의 외출 동안, 우리는 노아의 방주에서 풀려나온 비둘기가 된 기분이었다. 좁은 방주 안 천장 아래서만 낮게 날다 넓은 하늘을 나느라 힘들었을 테지만 아직 물에 잠긴 세상에 앉을 곳 하나 찾지 못하고 물 위로 삐죽 머리만 내민 올리브 잎사귀 하나 입에 물고 돌아와야 했던 비둘기처럼 마치 물에 잠긴 듯 앉을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고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는 거리에서 올리브 잎사귀 대신 장거리를 어깨에 지고 돌아와야 했던 사람들.



그래도 노아의 방주 밖, 마치 물이 말라 가는 세상처럼 새로운 확진자 수는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고 있고, 끔찍한 격리 시설들이 하나 둘 철수를 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곧 방주로 돌아오지 않는 비둘기처럼 나도 가고 싶은 곳 어디든 훨훨 날아가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