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을 확인해 주세요
드디어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소문으로만 듣던 외출 공지가 떨어졌다.
언제 봉쇄해제가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아파트 단지마다 다른 시간에 외출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텅 빈 차도에 드러누워 찍은 셀프샷이나 아파트 정문이 열리자마자 우와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가는 사람들의 영상이 떠돌면서 외출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져있긴 했다. 나가봤자 눈을 감고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하고 동네 거리겠고 그 공기가 내가 지금 숨 쉬는 공기, 그 하늘이 내가 지금 보는 하늘이겠지만 60여 일만에 나서는 정문 이라니!
하지만 그렇게 바라던 공지가 떨어졌지만 거주민 단체 방안에 환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선 해외 뉴스에에서는 드디어 상하이의 봉쇄가 해제되었다 하지만 절대 해제는 아니다. 상하이 정부가 교묘히 의도한 대로 보도 되었을 뿐.
점진적 해방, 조건적 외출. 외출 조건이 이렇게 복잡할 수가 없다.
클리어해야 할 미션이 너무 많아, 꼭 게임에 참여하는 기분이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아파트별로 다르게 정해진 일정에
-한 가구당 한 사람만
-4시간 내에
-걸어서 (개인 자전거, 전동차, 삼륜차, 자가용 이용 불가)
-48시간 내 핵산 검사 음성 결과 보고서를 지닌 채
-외출 내내 숨 막히는 KF894 마스크를 착용 필수
1차 조건에 적합하다면 다음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장소마다 다르다하지만 우리 집 근처 대형 마트에는 이런 미션이 주어졌다.
-총 구매 가능액은 500웬 (한국돈 약80000원) 내
-총 쇼핑 시간은 1시간 내
-그 중 구매시간은 40분, 물건 소독 시간은 20분
-역시 도보로만 구매한 물품을 옮길 수 있음( 자전거, 전동차, 리어카 등 사용 금지)
한동안 조용하던 거주민 대화방에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반 조롱반 온갖 불평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미리 외출이 허용되었던 지역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을 감행한 사람들의 진풍경도 전해졌다. 앞뒤로 나란히 어깨에 짊어진 대나무에 어렵게 구했을 생필품을 걸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차량은 안된다 하니 말을 타고 텅빈 이륜차 전용차로에 등장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저런 웃픈 모습들이 곧 나의 모습이겠구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소 달구지라도 구해온다면 틱톡 1위쯤은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카트라도 끌어줄 강아지 한 마리도 없다. 혹여 나가게 된다면 조선시대 아낙들 처럼 생필품들을 보따리에 동여매고 머리에 얹어 사뿐 사뿐 걸어와 볼까.
곧 플라잉 카도 날아다닐 거라는 21세기 대도시에서 나타난 진기한 장면들에 상하이는 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주변에는 상하이에서 산다는 것이 이제는 부끄럽다는 중국인들도 생겨났다. 중국인 친구 하나는 갑자기 한국으로 이민을 가겠다며 통역기를 통해 말도 안 되는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아, 평소 예의바른 친구라 급한대로 처방해준 임시방편 높임말이었는데 갑자기 머슴체가 되어버렸네.
워워, 친구야, 봉쇄 해제되면 다시 얘기하자꾸나.
외출 허가증을 놓고 평소에도 의견 내놓기를 좋아하던 몇몇 사람들은 느낌표를 쿵쿵 찍어가며 역시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몰아갔다. 물론 먼저 외출이 허용된 아파트에서 다시 확진자가 발생하는 사례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KF94 마스크를 꺼내 들고 60일 만의 설레는 외출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필요하든 하지 않든 공구는 넘쳐나고 단지 안의 지저분하지만 물자가 충분한 식품점 덕분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돌아올 일도 없으니.
지금 우리에겐 그저 내 맘대로, 내 속도대로 내 발걸음 닿는 대로 걸어갈 길 한 줄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