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긋방끗 Oct 14. 2024

여행_몰입의 짜릿함

설렘과 몰입을 곱하면?

  ‘여행’ 이란 단어만 들어도 나는 설레고 즐겁다. 여행은 물리적 장소의 이동을 동반하고, 내가 있는 공간이 달라지는 것만으로 나의 감각은 예민해지고 자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낯선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설렘과 몰입이 곱해져 더 많은 에너지를 내뿜는다. 그 응축된 에너지가 나만의 작은 우주를 만들어, 시간 가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상위 포식자처럼 내 삶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 


  대학교 여름방학마다 음악밴드 선후배들과 여행을 갔다. 10년 이상의 선배들과의 어색함도 연주를 하다 보면 사라졌다. 모두 음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 조회대에 드럼, 앰프, 마이크를 세팅하여 기수별로 연습도 하고 즉흥연주도 했다. 나는 평소보다 더 강하게 심벌을 치고 베이스드럼 페달을 밟았다. 학교 건물 사이에 있던 작은 연습실에서처럼 다른 악기들을 배려해 소리를 줄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조용했던 시골 학교를 가득 채웠다. 드럼, 기타, 베이스기타, 키보드, 목소리들이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갔고, 나도 음악과 함께 자유로워졌다. 


  또 다른 기억은 교환학생으로 갔던 일본 대학교 테니스 동아리에서 간 여행이다. 합숙훈련처럼아침부터 저녁까지 테니스를 쳤다. 돌아가면서 심판을 했는데 나는 그늘에서 잠깐 쉴 수 있는 심판이 좋았다. 일본 친구들은 일본어에 받침이 없어 영어 발음을 어려워했는데 내가 ‘Forty love’ 라고 하면 ‘우와 너 발음이 정말 좋다’ 라며 칭찬했다. 칭찬에 으쓱해져 발음을 더 굴려 큰소리로 점수를 외쳤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만 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공이 라켓에 정확하게 맞을 때 팔로 전해지는 진동과 소리는 정말 짜릿했다. 운동 후 먹은 장어 덮밥도 잊을 수 없다. 윤기 나는 밥 위에 올려진 짭짤하고 달콤한 장어의 맛은 최고였다.


  내가 가장 몰입했던 여행은 캐리커처 여행이었다. 직장에 다니며 캐리커처를 배웠는데, 선생님과 배우는 학생들이 함께 일본에서 열리는 캐리커처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선생님은 작가로, 우리는 방문자로 등록해서 3일의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5박 6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갔다. 상업적으로 캐리커처를 그리면 포토샵 보정처럼 눈을 좀 더 크게, 얼굴을 작게 그려서 개성이 없는 캐리커처가 되고 말았지만, 이 곳 작가들은 작가들은 개성을 살려 익살스럽고 과장되게 사람들의 얼굴을 표현했다. 나는 피사체가 되어 작가들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완성된 캐리커처의 다양한 나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평범한 컨퍼러스룸이 그림과 열정으로 가득 차는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했다. 

  

  캐리커처 여행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흥분되었다. 나와 함께 갔던 언니들은 내게 ‘기발OO’ 이라고 불렀는데, 도파민에 흠뻑 취해 머리가 더 잘 돌아갔던 것 같다. 이 여행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나의 삶에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었다. 낯선 곳에서 설렘과 열정이 뒤섞여 나의 몸이 하는 행위에 몰입하는 경험은 너무 짜릿해, 마치 지니의 요술램프처럼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 여행들로 내가 음악가나 테니스 선수, 화가가 된 건 아니지만, 음악과 운동, 그림은 나의 친구처럼 곁에서 나를 위로하며 함께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일단 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