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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쭈야 May 18. 2022

우리동네 사람들

#07 컴퓨터 수리점 사장님

 
수많은 문제집들을 책가방에 마구 쑤셔넣고 하교하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현재 설계 일을 하는 나는 ‘집에서라도 일을 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많은 자료들을 들고 퇴근을 한다. 그러나 결국 가방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날 출근을 한다. 전날 집에서 하는 것 없이 시간만 보낸 것에 대해 옛 시절과 닮은 후회를 하면서...... 



[양산 북부동 현대컴퓨터 나래정보기술 사장님]

 협력사에서 긴급하게 업무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어느날, 회사에서 일을 마무리를 못해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아뿔싸,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모니터에 전원이 들어오지를 않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사용했는데 바쁠 때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다음날 나는 고장난 모니터를 들고 북부동의 작은 컴퓨터 수리점으로 갔다.

      

 사장님을 알고 지낸 지도 벌써 15년이나 되었다. 그는 고객의 요구에 맞는 컴퓨터 조립, 주변 부속품 판매, AS까지 너무 잘 해주셔서 우리 사무실은 물론이고 집 컴퓨터까지 모두 맡긴다. 고장난 컴퓨터를 들고가면 진득하니 앉아서 원인을 파악하고 컴퓨터가 보내는 신호들을 읽어내면서 수리하고 프로그램들을 새로 깔아 주신다. 이런 작업들은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이어야 가능하겠지? 나는 어떤 기계라도 작은 고장이라도 나면 다급해지고 화부터 나니 말이다.  


 사장님은 내 모니터를 점검해보시더니 운명했다고 하신다. 야호~ 순간 나는 새 모니터를 들여올 생각에 신이 났다. 웬지 일도 더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든 것도 잠시, 수척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코로나로 영업이 힘드셨을 텐데 잘 지내셨냐고 여쭤보았다. 그는 웃으며 잠시 일을 쉬었다고 했다. 어느 하루는 업체에 컴퓨터 수리를 갔더니 “마스크를 왜 쓰고 들어오느냐, 내가 코로나 감염자일 까봐 그러느냐, 가분 나쁘니까 당장 벗어라” 면서 화를 내더란다. 세심한 성격의 그는 충격으로 그 뒤 공황장애까지 와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고객의 컴퓨터를 치료하러 다니면서도, 그들의 상처주는 말들이 마음속의 바이러스가 되어  그의 소프트웨어가 망가져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야 포맷하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날의 기분마저도 고스란히 머리와 가슴에 남는다. 학창시절, 간밤에 열어보지도 않은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등교하던 날의 그 찝찝함이 되살아 나듯이......       


 15년동안 내가 봐온 사장님은 나의 귀찮은 AS요청에도 늘 친절하고 성실했다. 기계치인 나에게 그는 맥가이버처럼 멋진 분이다. 늘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내 컴퓨터를 오랫동안 책임져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조금은 넉넉하고 따뜻한 말들로 서로에게 마음의 백신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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