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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Oct 05. 2020

특별하거나 혹은 이상하거나

난 곤충이 좋아

 요즘 들어 곤충 책만 읽고 싶다는 별이를 위하여 친구가 추천해 준 곤충 관련 책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  한 권이 있었다. 제목부터 "난 곤충이 좋아". 별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책이었고 실존 인물인 어린이 과학자 소피아의 이야기였다. 사실 제목만 보고 주문한 터라 내용은 그리 기대하지 않은 터였다.


난 곤충이 좋아


 새 책을 보고 늘 시큰둥해 하는 별이는 역시나 내가 책을 꺼내와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굳이 꼭 읽어야 할 까닭은 없기에 또한 이미 별이가 좋아하는 책들이 많기에 나는 별이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또한 한창 주관을 뽐내는 일곱 살 별이에게 이야기해봤자 반대로 거부할 것이 너무도 분명했기에.


 그러다 온라인 수업이 한창일 즈음 원래는 유치원의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을 그 시간 별이에게 조용히 이 책을 다시 건네주었다. 별이는 오랜만에 내 무릎에 앉아 나의 책 읽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언제부턴가 별이가 나의 무릎에 앉는 것을 나는 좀 힘들어했다. 내게 안겨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별이에겐 미안할 따름이지만 별이의 머리에 가려 글을 읽는 것이 어려웠고 별이의 무게를 버거워할 만큼 별이는 자라있었다. 더욱이 별이의 한글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별이도 나도 각자의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생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날 만큼은 우린 참 오랜만에 함께 책을 읽었다. 곤충을 좋아하는 한 언니의 이야기는 별이에게도 나에게도 큰 즐거움을 줄 것이 자명하므로.


 곤충을 좋아하는 소피아는 별이와 참 많이 닮아있었다. 무언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무언가를 참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놀랍게도 비슷하기도 하다. 우리 집에도 곤충 박사가 되고 싶은 별이가 만들어낸 여러 규칙들이 있었다. 별이는 곤충을 연구하기 위한 곤충 연구소를 만들기도 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곤충을 기르고 싶어 하기도 하였다. 또한 곤충을 잡아먹는 거미들은 곤충 연구소에 절대 출입해서는 안 되었는데 그것은 곤충을 연구하지 않는 엄마 아빠 역시 그러했다. 연구소는 오로지 본인의 허락 하에서만 입장할 수 있는 무척 엄격한 공간이었다.


식탁 아래 자리 잡은 별이의 곤충연구소.
우리 집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이다.


 더욱이 날파리를 포함하여 곤충을 절대 죽이면 안 된다는 별이 나름의 뚜렷한 기준이 있었다. 우리는 별이의 생각을 존중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별이 역시 우리 집 거북이 귀요미와 사랑이의 안전을 위하여 거북이에게 접근한 날파리는 잡아야겠다는 나의 의견과 음식물 위에 있는 날파리를 잡아야 한다는 아빠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려 애썼다.


 소피아의 모습에서 별이의 모습이, 소피아 엄마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겹쳐져 있었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점을 찾으며 재미있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에 간 소피아가 친구들에게 이상한 아이 취급을 당하고 또 소피아의 소중한 곤충을 짓밟히는 아픈 이야기가 펼쳐졌다. 소피아 엄마는 소피아를 따뜻하게 위로하지만 소피아는 상처받았고 나는 소피아를 통해 어쩌면 앞으로 상처받을지 모르는 나의 별이가 그려져 마음이 아팠다. 그런 소피아를 위해 소피아 엄마는 소피아의 친구를 찾아 나섰고, 곤충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 덕분에 소피아는 원래의 소피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소피아 엄마는 상처받은 소피아에게 간절히 말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곤충을 사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야.. 멋진 일이야... 그리고 나는 굳이 이야기에 덧붙였다. 그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어졌다.


 별이는 조용히 본인의 마음을 내비쳤다.


 "엄마, 나는 남자 친구들에게 내가 곤충을 좋아한다고 얘길 못했어. 나를 남자라고 놀릴까 봐."


  "곤충은 남자도 여자도 좋아할 수 있어. 물론 남자 친구들이 많이 좋아하는 편이긴 해. 하지만 여자 친구들도 곤충을 좋아할 수 있어, 소피아 언니처럼. 모두 다른 거야. 별이가 남자 친구들에게 곤충을 좋아한다고 하면 놀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어. 별이 말처럼 곤충을 좋아하는 남자 친구들이 많은 편이거든. "


 나의 아이이기 때문에 내게 지나치게 특별한 별이의 곤충 사랑은 그래서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은 모두 다를 수 있고 그것이 무엇이든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공주를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주를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공주를 좋아하지만 공룡이나 곤충을 조금 더 좋아했던 별이의 취향 덕분에 어떤 이들은 애정 담은 말로 이상하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평범하지 않다며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별이가 경험한 것은  나의 이야기와 조금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의 경계가 불분명한 별이의 판단이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난 나의 생각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에 서툴지만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도 같다. '여자' 아이라서 '공주'를 좋아해야 하는 것도, '공주가 아닌' 다른 것을 좋아해야 하는 것 자체도 어른들의 고정 관념일 수 있으며 아이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잣대로만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나아가 '지지'해 주어야 한다고. 나는 별이가 좋아하는 것을 별이만큼 좋아하지는 못하지만 바라봐 줄 자신이 아직은 있었다, 고작 칠 년 차 엄마여서 그럴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나를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나의 틀로 너를 가두려 하지 않을게.


 언젠가 별이가 다른 어떤 것을 원하더라도 엄마는 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 줄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릴지 모를 엄마를 위해 여기에 적어두고 두고두고 기억할게.


 혹시나 오해할 누군가를 위해 굳이 덧붙이자면 별이는 핑크색도 공주도 무척 좋아한다. 다만 요즘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 곤충일 뿐. 별이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별이는 작년부터 가끔 본인을 '박곤충'이라고 불러달라 하기도 하였다.






이야기 끝.









2020년 9월 22일 오후 5시.

킥보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별이는 어떻게 봤는지 사마귀 한 마리를 찾았다.


여기에 사마귀가 있네.


 나뭇가지에 올려 꼼꼼히 살펴보곤 앞발이 없다는 것을 포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손 위에 올리고 싶어 하는 별이를 말린 터라 나는 나의 행동이 옳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별이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였다. 미안해, 별아. 엄마의 틀을 조금씩 넓혀 나가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별이는 사마귀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위에 살며시 내려주었다.

사마귀야, 잘 살아.




별이 이야기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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