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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Oct 07. 2020

별이의 옷

아침부터 옷 전쟁, 이제 시작인가요.

 옷을 직접 사러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별이와 나를 위하여 인터넷으로 별이의 옷들을 구경하던 참이었다. 지금까지 별이를 위한 옷은 별이 자신이 좋아하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을 고르는 별이 엄마의 취향과 그것을 결제해야 하는 별이 아빠의 취향을 모두 고려한 것이어야 했다.


 내가 가끔 선택하는 이 브랜드는 아기 원피스가 워낙 예쁘다고 소문이 난 것이기도 하였고 별이가 아기일 당시만 해도 유니크한 디자인이기도 하였다. 외국의 사이트를 들어가 주문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긴 했지만 우리나라에 직배송이 되는 터라 난 가끔 세일할 때 이 브랜드의 옷을 주문하였고 참 이상하게도 별이가 좋아할 만한 옷들이 늘 가득하였다.


 이번에는 한창 곤충에 몰입하고 있는 별이가 좋아할 만한 옷들이 눈에 띄었고 난 입기 쉬운 원피스 형태의 벌 무늬의 옷을 골라 별이에게 보여줬지만 별이의 표정은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별이는 이 사이트의 다른 옷들을 익숙하게 손가락으로 넘겼고 거기엔 큰 사슴벌레가 그려진 옷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별이의 마음을 한순간에 빼앗아가 버릴 정도로 충분히 예쁜 옷이었다. 난 별이의 옷 선택에 의견을 묻지 않으면 서운해할 별이 아빠에게도 그 옷을 보여주었다. 별이 아빠는 아까 벌 원피스를 볼 때의 별이처럼 마음이 썩 내켜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왜 내가 고른 입기 편한 곤충 옷은 다들 별로인 건지.) 하지만 이것은 사실 별이의 옷이므로 별이가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은 '엄마 몸'이 아니라 '내 몸'이라는 예전 별이의 말처럼. 그러나 나는 별이가 고른 옷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 역시 담았다. 하지만 그것은 별이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는 별이 스타일이어야만 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난 그 브랜드의 세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나온 신상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세일 폭이 크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별이와 나는 여느 날처럼 옷으로 다툼을 벌였고 그날 아침에는 조금 더 격렬했던 것도 같다. 결국 별이는 눈물이 났고 나는 짜증이 났다.


 "별아, 옷을 직접 고르러 가는 것도 싫어하고, 엄마가 산 옷은 입어보지도 않고 싫다고 하니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도대체 어떤 옷을 입고 싶어?"


 화가 난 내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본인의 마음을 몰랐던 답답함 때문인지 별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사슴벌레 옷."


 별이가 등원하고 바닥에 뒹그러진 옷들을 보며 나는 너무 미안해졌다. 그리고 추석이 오기 전 나는 그 옷들을 주문했고 감사하게도 어제 아침 우리 집 문 앞에 놓였다.


 "엄마, 문 앞에 뭐 온 거야? 책?"

 "아니, 음.....  곤충 옷."

 "나 정말 많이 기다렸어"


 킥보드를 타고 등원하는 별이는 유난히 더 신나했다. 그저 긴 추석 연휴가 지나고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일 것이고, 거기에 그렇게 기다리던 곤충 옷도 만나서 일 것이라고 짐작만 해볼 뿐.


 눈치 없는 엄마는 별이가 그 옷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어. 친구가 조언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세일을 더 기다리고 있었을 지도 모르고 별이도 옷을 계속 기다렸을 테지. 나는 별이의 마음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일찍 알 수 있으면 조금 더 좋을 것도 같다.


 기뻐할 별이를 위해 옷을 세탁하고 별이와 별이 아빠에게 보여주었고 별이 아빠도 실제로 보니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별이는 '진심'으로 날 듯이 기뻐하였다, 늦게 주문 한 내가 너무 미안할만큼. 별이가 '옷'을 보고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내가 기억을 더듬어야 할 만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기뻐하던 티셔츠를 입었는데 오늘 아침 바지로 또 다툼이 났다. 나는 별이의 옷에 이토록 '지나친 간섭'을 하는 것인지. 그저 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면 되었을 텐데.


 7살이 된 별이는 편하다는 이유로 레깅스만을 고집하였고 별이가 길지 않은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는 것이 조금 걱정스러웠던 38살 나는 별이가 좋아하지 않는 청바지를 권하였다. 별이는 내 말에 억지로 입어보기는 한 뒤, 달릴 수는 있지만 멈추기가 어렵단 이유로 입기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이어 청바지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7살 별이의 날카로운 지적은 진실로 맞는 말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편하다는 이유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우리 둘은 참 많이 닮았다.


 그리고 별이가 등원한 후 여간해서 쇼핑을 즐기지 않는 나는 별이를 위한 바지를 수십 개는 찾아본 뒤에 결국 처음 생각했던 치마레깅스를 주문하였다. 별이가 마음에 들어 할지는.... 알 수 없다. 예전에는 별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요즘은 별이의 마음을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나인 것도 같다.


이야기 끝.


사진 찍으려니 스스로 얼굴 가려주는 예쁜 7살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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