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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Sep 22. 2020

너와 스타 크래프트

꽤 괜찮은 우리 사이

 몇 주 전 신랑은 평소의 모습답지 않게 들뜬 목소리로 회사에서 스타 크래프트 대회가 열리고 본인이 팀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우리의 일상을 평범하게 보냈을 예전, 신랑은 아주 가끔 동료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했었다. 특히나 명절 때 친정 사촌 동생 PC를 빌려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친정 식구들은 나에게 별이 아빠의 취미 활동을 지나치게 억압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었고 나는 결국 PC를 들여놓기로 결정하였다. 우리에겐 오래되긴 했지만 나름 쓸만한 노트북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PC의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했다. 나는 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신랑의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지만 별이와의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에 별이 아빠가 게임을 하는 것까지 내가 참견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노트북으로는 게임을 하지 못한다고 하니 그렇다면 PC를 구입하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자금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사용할 때는 그 크기에 따라 동의를 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공지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아마 나는 암묵적으로 PC 구매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신랑은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던 것도 같다.


 어찌 되었던 올해는 PC도 사고 PC를 올려놓은 테이블도 함께 구매하였다. PC를 사기까지는 꽤 오래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물건을 사는 것은 아주 쉽고 간단하였다. 나는 PC가 온전히 신랑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그 목적에 맞게끔 신랑이 원하는 대로 본인의 선택으로만 구성하기를 바라었다. 나는 PC의 가격 외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PC를 올려놓을 테이블에 대해서는 늘 그렇듯이 서로의 의견이 달랐다. 나는 갑작스러운 지출에 최소의 비용을 들여서 쓸만한 물건을 보고 있었고 신랑은 가구는 오래도록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가격이 더 들더라도 튼튼한 물건을 사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지나고 보니, 나의 말이 옳을 때도 있었고 신랑의 말이 옳을 때도 있었다. 그 의도는 너무나 공감하지만 갑작스러운 지출에 테이블과 의자까지 추가되니 선택의 여지가 더 없었다. 


 다음은 의자였다. 게임용 PC로 세팅하고 싶어 하는 신랑에게 나는 편안하고 좋은 의자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데 좋은 것은 너무 비쌌다.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좋은 물건이 모두 비싼 건 아니었지만 좋은 물건들 중에는 비싼 것이 더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예산을 고려하여 의자를 고르고 있었는데 신랑은 아주아주 저렴한 의자를 골라서 보여주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신랑에게 늘 배려가 없다고 본인 위주의 판단을 하는 것에 불만인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신랑도 본인을 위한 무엇인가가 없었던 것도 같다, 평소 그의 말처럼. 나는 별이의 세계 속에서 보다 집중하여 살아왔기 때문에 신랑 소유의 무언가를 잘 생각해 보지 못했고 나에게 그럴 여유 또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런 신랑에게 못내 서운해했던 것도 그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난 그의 말을 듣기만 하였지 마음을 이해하여 주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그동안 나에게 서운했던 건가.


 난 신랑의 의견을 무시하고 나의 생각대로 별로 비싸지는 않지만 신랑이 고른 것보다는 살짝 더 비싼 의자를 샀고 별이 의자 역시 골랐다. 우리가 PC 테이블을 굳이 산 것은 우리 모두 다 함께 책상에 앉아서 시간을 공유할 미래의 그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에 있어선 나와 신랑의 의견은 일치하였다. 그러니 우선은 처음의 목적대로 신랑의 의자가 필요하였고 다음으로 아빠 혹은 엄마 옆에 있고 싶어 할 별이를 위한 의자를 주문하였다. 나는 가끔 헉 소리가 나도록 엉터리 실수를 할 때가 꽤 있는데 이번에는 별이를 위한 프린세스 의자를 주문한다는 것을 프린세스 의자 커버만 주문하는 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결국 우리는 별이를 더 실망시키지 않으려 그 의자 커버에 맞는 꽤 비싼 의자를 주문하여야만 하였다.


 우리에게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겼던 그 PC는 최근 집콕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었다. 신랑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됨에 따라 가족의 안전을 위하여 오프라인 강의 대신 온라인 강의를 듣기도 하였고 그것은 별이 역시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더욱 그러하였다. 더욱이 나 역시 놀이처럼 시작한 일들을 오래된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 PC의 존재가 고맙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제일 마지막 방 구석진 곳에 놓여 있던 이 PC가 최근 거실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이 PC는 신랑의 게임을 위하여 놓인 본래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물론 아주 가끔 나의 눈치를 살피며 즐기기는 했지만. 그런데 회사에서 (추측하건대) 친목을 다지기 위한 대회를 하며 팀의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니 이보다 더 게임을 해야만 하는, 할 수밖에 없는 명분은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갈수록 불안해지는 코로나 분위기에 소소하게 즐기던 여가 생활마저 끊긴 신랑에게는 회사 생활과 나와 별이가 유일했는데 그것이 조금 더 안쓰러우던 참이었다. 


 우리의 정당한 합의 아래 게임을 시작한 신랑은 게임 연습부터 난항에 부딪쳤다. 요즘은 같은 팀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기를 치른다던데, 게임 전 음성 채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스타 크래프트는 신랑이 과거 꽤 열심히 했던 유일한 게임이었을 것이고 아마 지금까지 그래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게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별이 엄마로 지내면서 나의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처럼, 그도 별이 아빠로 지내면서 그의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일 테지. 짠하기도 하면서도 애잔한 신랑의 헤매는 목소리에 방에서 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나는 거실로 나오기도 하였다. 신랑은 도와주려는 나를 극구 만류하긴 했지만.


 다음날 프로그램을 재설치하고 제대로 작동되자 신랑은 신나게 제대로 된 게임을 하기 시작하였다. 신랑의 한껏 흥이 오른 목소리는 지난날의 젊은 그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였다. 별이가 잘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그는 게임에 몰입하여 본인의 목소리 크기를 자각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별이와 나는 아빠의 큰 목소리를 불평하면서도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그의 목소리를 차마 줄이라고는 하지 못하였다.  


 '나'와 '그'는 그동안 참 많은 것들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우리의 소중한 별이를 위하여. 우리는 '나'에서 벗어나 '너'에게 몰두해 있었다. 우리가 지켜줘야 할 작고 예쁜 '너'를 위하여 우리는 아주 잠시 '나'를 잊고 지냈다. 그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였고 기대보다 즐거웠으며 우리가 '나'를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행복하였다. 그러다 아주 가끔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우리는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고 지금의 '나'를 스스로 가엾게 느끼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와 같지 않은 '그'를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그도 나와 마찬가지였으리라.


 결국 신랑이 속한 팀은 첫 번째 경기에서 졌다. 상대팀이 너무 잘하더란 신랑의 씁쓸한 뒷이야기를 나는 미안하지만 너무 즐겁게 듣고 있었다. 요즘 우리는 예전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꽤 괜찮은 친구인 것도 같다. 




너와 스타 크래프트 이야기 끝.




2020년 5월 율곡 수목원에서 우리 셋.

우리가 함께여서 참 좋다.
엄마랑 만들다가 아빠랑 만들다가.
별이의 보석들
조심조심
네가 즐거우면 우리도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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