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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Sep 10. 2020

미꾸라지

빨라, 느려, 여행 안녕.


별이 유치원에서 여름 방학 직전 캠핑데이를 진행하였고 미꾸라지 잡기 체험을 했다. 미꾸라지에겐 너무 미안할 따름이지만 작년 워터슬라이드에서 무더운 여름을 날려보냈지만 올해는 그러질 못하여 그 대신 미꾸라지 체험을 하였고 그 모습을 라이브 방송을 통하여 부모님에게 보여 주셨다.


 화면 속 별이는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건지 들려도 대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미꾸라지 잡기에 몰두해 있었다. 평소 겁 많기로 소문나기도 했을뿐더러 스스로 겁 많은 자신을 인정하는 별이가 뜰채를 이용하여 미꾸라지를 잡는 모습은 우리에게 꽤 신선한 모습이었다. 별이는 아기 때부터 손에 무엇인가를 묻히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소리에도 지나치게 민감한 예민한 아이였고 때문에 본인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자극에 대해 즐거움보다는 불안이 큰 아이였다. 무척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격의 별이는 지금은 활발하고 적극적인 모습에 가려져 원래의 그 기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주 가까운 사이이거나 직감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는 덜 알아챌 정도로.


 미꾸라지 잡기 체험을 마치고 별이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투명한 컵에 들어있는 미꾸라지를 보여주며 말을 쏟아내었다. 말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묻지 않으면 굳이 유치원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인데 미꾸라지 이야기며 그날 있었던 이런저런 활동에 대해 무척 상기되었던 모양이었다. 별이의 재잘재잘 소리는 보통은 내게 더할 수 없이 큰 즐거움이었지만, 이 날 만큼은 나는 별이의 이야기보다 컵 속의 미꾸라지에 더 신경이 쓰였다. 이 미꾸라지를 어째야 하나. 미꾸라지를 집에서 키워야 하나. 우리 집엔 어항도 없고 먹이도 없는데.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꾸라지를 덜컥 만나니 나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미꾸라지들 안녕.


 별이는 대수롭지 않게 본인이 잡았고 데리고 왔으니 당연히 키워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이었다. 이미 미꾸라지가 우리 집에 들어온 이상 우리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나는 재빠른 인터넷 검색을 통해 미꾸라지가 비교적 생명력이 길고 다양한 것을 먹는 잡식성이며 더불어 산소 공급 및 여과 장치 같은 것이 필요 없는 어종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장수풍뎅이를 키우려고 미리 준비해둔 플라스틱 상자에 미꾸라지를 키우기로 하였고 그것은 별이가 가져온 투명 컵보다는 환경이 조금 나아 보였다. 별이는 스스로 플라스틱 상자를 씻고 미꾸라지를 옮겨주고 미꾸라지를 위해 (우리가 장수풍뎅이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플라스틱 수초와  본인의 바닷속 동물 장난감을 함께 넣어주었다. 물론 유치원에서 했던 미꾸라지 잡기 놀이를 이어 하기도 하였다. 미꾸라지는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겠지만 미꾸라지와 놀고 싶은 별이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였다. 혹시 모를 일에 조마조마하면서 나 역시 집 안에 미꾸라지 먹이 찾는 일에 열중해 있었다. 먹이가 부족하면 서로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어떤 글을 읽고 두려움에 나는 후다닥 밥을 하였다. 그날따라 밥솥은 텅 비어있었다. 밥을 재빠르게 마치고 별이는 숟가락으로 미꾸라지에게 밥을 먹이고 싶어 했다. 너무 좋아서 그랬겠지만 미꾸라지가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꾸라지 잡기 놀이처럼.


 별이는 그 사이 미꾸라지 세 마리에게 느려, 빨라, 여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나는 별이와 미꾸라지 사진을 담고 신랑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신랑은 밥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미꾸라지가 어느 정도 먹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고 부족한 것보다는(서로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므로) 넘치게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신랑의 말처럼 먹이를 많이 주자 물이 금세 뿌옇게 변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미꾸라지가 흙탕물에서도 잘 산다 하지만 우리가 준 먹이 때문인 것 같아 나는 당황했고 물을 또 한 번 갈아주었다. 신랑은 수돗물을 받아서 며칠 지나고 넣어야 한다고 야단이었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밥 물에 미꾸라지가 질식할 것만 같아 바꿔주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별아, 물고기 먹이를 굳이 이렇게 줘야겠니.


 그런데 미꾸라지 어항은 우리의 생각보다 너무 금방 지저분해졌다. 우리는 지쳤지만 매일 물을 갈아주었고 조금씩 덜 갈아줄 즈음 여행이가 물 위에 뒤집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여행의 죽음을 직감했고 별이는 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혹시 몰라 새로운 물에 세 미꾸라지를 넣어주었고 시간이 지나자 여행이는 다시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별이도 오열을 하다 말고 여행이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보고 몹시 안도하였다. 신랑은 며칠 둔 물을 사용하지 않아서, 나는 먹이를 지나치게 많이 주어서, 별이는 여행이가 누군가에게 물려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나와 별이 둘만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느려와 여행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별이 아빠는 퇴근 후 발견한 느려와 여행이의 마지막을 긴급히 나에게 알렸고 마지막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나는 이 이별을 듣고 마음 아파할 나의 아이를 위하여 서둘러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전에 나비를 떠나보내기 싫어했던 별이의 성격을 너무 잘 아는 친정 부모님은 미꾸라지를 어디서 사 올 수는 없는지 혹시 추어탕 집에서 팔지는 않을지 대화를 나누셨고 (두 미꾸라지에게 미안하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극한 손녀 사랑이 만들어낸 시트콤 같은 대화가 재미나게 들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전날 엄마가 미용실에서 별이가 좋아할 것 같아 받아온 아기 구피들이 있음에 감사하였다.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고 별이가 좋아할 것으로 여긴 엄마의 예감은 맞았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별이는 집에 돌아와서는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아기 구피를 위해 먹이를 아주 조금 비벼서 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별이를 위한 이모들의 케이크.


 미꾸라지와의 이별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별이는 더욱 정성껏 빨라와 구피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구피는 너무 빠른 데다가 9마리나 되어 별이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고 하였다.) 매일 아침 별이는 빨라와 구피의 먹이를 챙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나는 그 사이에 거북이들의 먹이를 챙겼다. 그리고 퇴근 후에 신랑은 우리 집 동물 식구들의 컨디션과 환경을 끊임없이 살피고 잔소리를 쏟아냈다.  




 어제 별이는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코피를 쏟았다. 별이는 평소에 코피를 자주 흘리는 편이었지만 별이의 컨디션은 평소보다 좋지 않아 보였고 그것은 요즘 밤잠을 설친 나 역시 그러하였다.


 오전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어 별이는 잊었던 물고기들의 먹이를 챙기러 갔고 나는 별이의 점심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별이는 빨라가 죽은 것 같다며 날카롭게 소리쳤고 난 빨라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몰라 다른 깨끗한 물에 빨라를 넣어보았지만 이미 빨라의 생명은 다한 듯 보였다. 


 평소 맨손으로는 만지지 않는 미꾸라지를 별이는 빨라가 죽자 손으로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워 만지지 않았던 별이는 느려, 여행이가 떠나고 나서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 것을. 그것은 처음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다. 그 후로 내가 본 별이는 미꾸라지를 장난스레 만지지 않았다. 물론 아주 가끔 가만히 있을 때 혹시나 죽었을까 싶어 건드려 보기도 했지만.


 빨라에게는 몹시 미안한 일이지만 빨라보다 오열하는 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먹이를 늦게 주어서 죽은 것은 아닐까?"


 "아니야. 별이는 매일 미꾸라지 빨라와 구피의 먹이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잖아. 오늘도 아주 조금 늦었을 뿐이라고." 


 오늘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 코피를 쏟고 정신없이 온라인 수업을 듣느라 점심때쯤 먹이를 주러 갔을 뿐이었고 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고기들의 먹이를 챙겼고 물고기들이 가족 방으로 이동을 한 후에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고기들의 먹이를 챙겼다. 


 그런데 오늘 빨라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나는 별이를 안아주었고 그저 담담히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빨라가 갔는지는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빨라가 갈 때가 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우리가 잘 못 살펴줘서 그럴 수도 있어. 이곳은 미꾸라지가 원래 살던 곳은 아니니까. 하지만 원래 살던 곳도 일찍 죽을 수도 있고 오래 살 수도 있어. 그건 알 수 없어."


"적이 있으면 일찍 죽었겠지."


"맞아. 하지만 우리가 잘 못 살펴줘서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가 일부러 미꾸라지를 힘들게 했던 건 아니었잖아."


"우리가 구피와 거북이들을 잘 돌봐줄 수 있을까?"


"그럼. 구피는 정말 많이 컸어. 거북이는 작년부터 우리와 너무 잘 지내고 있잖아. 귀요미 너무 건강해."


귀요미는 미끄럼틀 다리를 본인의 몸으로 굳이 밀고 나오는 참이었다.


"엄마 사진 찍자... 사진이라도 남겨두게."


나는 남겨두고 싶지 않았지만 별이는 울면서도 빨라의 마지막을 담고 싶어 했다.


"죽음이 이렇게 슬픈 일이었다니..." 별이는 또 한 번 크게 목놓아 슬퍼하였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나의 평소 철학을 이때만큼은 내세우지 않았다. 내 생각이 늘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별이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신경을 많이 못 써준 빨라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기도 하였다. 


 "별아, 빨라를 땅에 묻어줄까."


 "좋아. 빨라가 흙이 되면 식물에게 도움을 줄 수 있잖아."


 "우리 집 화분에 묻어줄까? 어느 화분에 묻어주지?"


 "제일 예쁜 화분에 묻어주자."

 그리고 별이는 반짝이는 비닐 안에 담긴 흙을 가리켰다.


 죽은 빨라를 여러 번 만지고도 손을 씻지 않았던 별이는 나의 채근에 손을 씻었고 빨라의 흙을 덮어주기 위해서 비닐장갑을 끼었다. 비닐 속의 흙은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아 굳어서 딱딱해졌는데 별이는 장갑 낀 손으로 조금씩 부수어 빨라의 몸 위를 정성스럽게 덮어주었다.


 "바람도 우리의 마음을 알아. 슬퍼해."


 별이의 말에 베란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찬 바람에 나무는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별이는 언니 놀이를 하자고 하였지만 나는 아침도 거른 별이의 점심을 챙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에 갑자기 비가 내렸고 나는 별이에게 그것을 전해주었다.


 곤충 놀이를 하던 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구름이 운다."


 오늘 일을 전해 들은 신랑은 물을 너무 자주 갈아주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미안해하였다.


 별이는 온라인 수업을 마저 끝내고 조금 이른 시간에 유튜브를 보았고 나는 그 사이 빨라를 기억하자는 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을 적었다.


 그리고 별이는 밤이 되자 빨라를 생각하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도 그 눈물은 처음보다는 조금 더 차분해 보였다. 보이는 만큼 그 사이 별이의 슬픔이 덜해졌는지 나는 모르겠다, 평소 별이의 말처럼 나는 별이가 아니었으므로.



미꾸라지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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