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나무 Aug 19. 2024

4. 이제 그만, 내려가세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내게서 앗아간 것처럼 보이는, 비록 그게 말도 안 되고 설사 눈썹가닥 하나만큼이라도 원망했다. 그래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아프게 했던 통증들도, 아픈 그를 낯설게 바라보던 사람들도, 지나가던 바람도, 거미도, 개미도. 가장 커다란 분노의 대상은 물론 나였다.

아직도 이 원망과 분노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해서 암병원의 치료과정이 엉망이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아무리 객관화하려고 해도 참 자신이 없다. 그러니,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수술 후 주치의는 항암을 하자고 했다. "육종암엔 항암 효과가 30% 밖에 안된다고 하던데요" 라고 물었지만, 100% 안 듣는 것도 아니고 30% 안에 들 수도 있다고 운이 좋다면 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개발된 표적항암제도 있으니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항암담당 의사는 공포의 빨간약 아드리아마이신과 당시 기대받던 표적항암제인 라트루보를 병행해서 6차로 진행하자고 했다. 먹는 게 힘든 건 기본이고, 머리와 눈썹이 빠지는 건 필수품이다. 매번 백혈구 수치 줄어들까 봐 몰래 닭발을 우려 미역국에 넣어서 먹게 했다. 항암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실은 닭발을 우려 육수로 썼다고 고백했다. 호스피스병원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게 만들었던 주사 바늘 트라우마는 이때 생겼다. 간호사실에 가서, 제발, 보기보다 혈관이 약하니 혈관 잘 찾는 분이 좀 해달라고, 지금 몇 번째나 넣었다 뺐다 하고 있다고 애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에이, 다들 그러면 초보간호사는 어떻게 경험이 쌓여" 하며 괜찮다고 실실 웃어대서 속을 상하게 했었다. 결국은 혈관이 다 터져서 오른쪽 가운데 팔뚝의 혈관들이 시꺼멓게 괴사 했다. 나중에야 중심정맥관 삽입술 같은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암병동에서 설명과 선택은 없다. 환자 특성에 대한 배려, 당연히 없다. 그냥 한다. 환자도 보호자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두 번째 뇌리에 새겨진 기억은 항암담당의의 태도. 항암 몇 차인가를 하고 나서 면담을 하는데, 너무나 일상적인 어투로 “라트루보가 3상에서 실패했네요. 그래도 맞던 거니까 그냥 맞으시죠”라고 했다. 항암제를 여러 차례하고 나면 환자는 판단력이 상실된다. 절대 환자를 혼자 면담하게 보내면 안 되는 이유이다. 멍하게 있던 그는 너무나 착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내가 “아니, 선생님, 효과가 없다고 결론이 나온 거라면 왜 계속하자고 하세요, 하나 맞기도 얼마나 힘든데요”라고 했더니,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설명도 없이 간단하게 답했다. “네, 그럼 맞지 마세요”. 너무나 훌륭한 전문가로서의 자신있는 태도 아닌가. 나중에 요양병원에서 생활할 때, 암병동 분노게이지 2위로 꼽던 사건이다.

언젠가 항암담당의 선생님, 당신도 꼭 비슷한 경험을 해볼 수 있기를.  


항암 이후부터 한쪽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주치의도, 항암담당의도, 항암제와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방사선과 담당의가 항암후유증일 수 있다고 이비인후과로 조치를 취해 줬다. 이비인후과에서 좀 늦은 것 같다고, 나을 확률이 높지 않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보자며 몇 번의 치료를 했다. 불행히도, 잃어버린 청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 더 꼬치꼬치 물었어야 했다. 30%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라고 보나요, 몸 전체에 독성을 쏟아부을 가치가 있을 만큼인가요? 그렇게 하면 전이가 안 될 확률이 몇% 나 될까요? 우리는, 아니 나는, 바보같이 그런 질문을 하나도 못했다.


항암을 3개월 넘게 했는데, 항암이 끝나고 4개월 만에 오른쪽 폐로 또 전이되었다. 항암이 효과가 없는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주치의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항암 덕분에 늦게 전이된 거로도 볼 수 있죠”라고 답했다. 비전문가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답변 아닌가. 물론 육종암이 원체 변이도 많고 양태가 다양해고 축적된 케이스도 적으니 잘 몰랐을 수 있다. 그러면, 그렇다고 말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케이스가 없어서 효과를 모르지만, 이런저런 폐해가 있지만, 할 수 있는 건 항암밖에 없다. 고민해 보고 정해라’고 말해줬다면, 만약 이런 상황 설명과 선택권을 줬다면, 설사 똑같이 항암을 했어도 절대 주치의를 원망하진 않았을 거다.

아니면 암병원의 한계를 조금은 더 빨리 인지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봤을지도 모른다. 그럴까 봐 이렇게 말해주지 않는 걸까? 아니면, 우리는 그냥... 수많은 샘플 중 하나였을까.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주치의의 지시대로 또다시 오른쪽 폐에 전이된 암세포를 없애기 위한 외과 수술을 했다. 겨우 11미리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독한 항암에도 다시 살아난 이 불꽃을 빨리 꺼야만 한다는 흐름에 밀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상하다. 왜 이때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고 수술을 했을까. 겨우 11미리인데. 위험 부위라면 수술도 못했을 텐데. 그래서 또 오른쪽 페 1/4을 잘라냈다. 이제 목소리도 변하고, 숨쉬기도 불편해지고, 목소리가 조금만 커지면 쇳소리가 났다 .


수술 후 5개월까진 괜찮았다. 3개월 뒤에 갔을 때, 다시 왼쪽 폐에 거대한, 48미리 암세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주치의는 수술하자고 했고 외과의는 반대했다. 수술하면 왼쪽 폐를 모두 절제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오른쪽 폐에 약간의 문제만 생기면 그대로 사망이라고. 항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효과가 없다는 걸 이제는 알았던 걸까? 방사선으로 크기를 줄여보자는 게 유일한 대안이었다. 주치의는 우리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방사선과에 가서 상담하라며 미닫이문을 열고 옆방으로 갔다.


아... 저 문의 제일 큰 용도가 이것이었구나. 설명하기 힘들 때 탈출하는 용도. 멍한 머리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주치의의 방에서 쫓겨난 우리는, 백척간두 위에 서있는 것 같았다. 어이가 없었다. 이게 뭐지? 할 수 있는 게 없다? 크기만 줄이자? 그럼 처음엔 왜 그렇게 많은 걸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 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죽으라는 건가? 어떻게 뭘 해야 하는 거지? 머리와 마음은 다 굳어버렸는데, 다리는 우리를 그나마 인간미를 느끼고 있던 방사선과 담당의에게로 이끌었다. 방사선으로 크기라도 줄여보자고 했다. 방사선 4주, 20회를 말씀하셨고, 일정을 잡아두고 일단 병원을 나왔다.      


우리는 4년간, 다른 대학병원에서 등수술을 하고, 이 대학병원에서 방사선 35회를 받고 난 뒤, 4기 암환자가 되어 왼쪽 폐 1/2 절단 수술, 항암 6차, 오른쪽 폐 1/4 절단 수술을 받았다. 결국 완치는커녕, 너덜 해진 핏줄들, 잘 들리지 않는 귀, 화상흔적처럼 남은 흉터를 지닌 등, 힘든 호흡,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방사선 20회를 끝으로, 크기만 좀 줄이는 것 이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진단과 함께  3종 세트 컨베이어벨트에서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병원은, 의사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해주지 못하며, 해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여러분은 절대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말기를.      


----------     


우리도 싸우고, 투닥거렸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 그런데 왜 자기가 떠나고 나니,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세계가 완벽했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제 그런 완벽함은 결코 가질 수 없을 거라는 비관이 나를 원망과 분노에 머무르게 하는 걸까. 절대 스스로를 가두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던 자기의 말만 없었다면, 여기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지도 않았겠지.


멀리 미래를 생각하면 안 돼. 그러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으니까. 꼭 생각해야 한다면 오늘만, 지금만, 이 순간만.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평온해지기를.   


*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당연히 우리의 목숨을 보장하지 못한다.  

* 암병원 치료 방법인 수술, 항암, 방사선 삼종셋트가 몸을 망가트리기도 하고, 더이상 이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병원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주거나 호스피스 병원을 갈 수 있는 진단서를 써줄 수 있을 뿐. 그것마저도 정확한 지침이 아니라는 건 정말 아쉽다. 

* 그러니 암병원의 치료에만 모든 걸 맡기지 말고,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전 03화 3. 암치료 컨베이어벨트에 올라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