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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나무 Aug 26. 2024

5. 육종암을 선고받았을 때
알았더라면

-   요양병원에서의 새로운 희망

충격에만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여명 3개월을 선고받았던 후배가 가평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잘 살아있다고, 아주 잘 지낸다는 말을 들었다. 곧바로 만나러 갔고 후배의 얼굴을 말랐지만 좋아 보였다. 자기도 암병원에서 아무것도 못해준다는 말을 듣고 이 병원에 찾아왔었다고. 병원들에 대한 적대감이 극도로 높았던 때라 자연치유라는 이름의 사기 아닌가, 의심과 화만 가득 찼었다고 했다.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너무 다르다고, 어서 입원하고 같이 지내자고 헸다.


이런저런 생생한 설명을 듣다가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후배도 병원 운영진도 절대 그냥 입원만 하지 말고, 꼭 이 병원의 대표 프로그램, 심신통합수련 프로그램을 수강하라고 추천했다. 암병원에서 하기로 했던 방사선치료는 요양병원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하니 별 무리가 없다고 했다. 접근성도 좋고, 본격적으로 자연치유 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런 프로그램도 있고, 무엇보다 비슷한 상황을 겪어왔던 친한 후배가 있는 곳이라 이 요양병원으로 하자고 결정했다.  


자연치유를 위해 입원한다고 해도 커진 암세포는 방사선 치료로 좀 줄이는 게 부담이 덜할 것 같다고. 그래, 그러자. 쉽게 합의. 하지만 언제 입원할까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나는 암이 크고 있는데 뭘 기다리냐며 당장 짐 싸서 출발하자고 했고, 그는 1주일이라도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입원하자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 그가 이겼고, 지나고 보면 대부분 그렇듯이 그가 옮았다.


사실 그가 고집을 부렸던 이유는 집을 오래 떠나 있어야 하니 내가 혼자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최대한 자신이 해둘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신기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하는 병뚜껑 열기 도구는 오늘도 혼자 병을 열 수 없을 때 요긴하게 사용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체 생각이 깊었던 그는, 혹시나 이렇게 될 수도 있으니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쓸 때마다 콧등이 시큰해지는 게 문제지만.


요양병원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이 병원의 지향은 단지 지친 암환자의 상태를 돌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발과 전이 환자를 대상으로 자연치유를 통한 암의 해소, 완전 관해였다. 다스리기도 힘든 암의 관해? 좀 과하지 않나 싶었다.


혹시나 싶어 미리 말해두지만, 이 병원이 모두 훌륭했다거나 자연치유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암병원의 치료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처음 암이 발병했을 때, 자연치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더라면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데 있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게 실지로 그의 수명을 얼마만큼 연장시킬 수 있었을까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겠지만.


자연치유의 가장 큰 전제는 인간에게 스스로 몸을 치유할 힘이 있다는 믿음이다. 알다시피 암은 정상세포가 변이 되어 주변 정상조직까지 침투하여 파괴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면역기능을 높여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최소한 공격적인 암세포의 활동을 조금씩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암을 관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나 육종암처럼 항암제도 듣지 않고 수술로 제거해도 금방 전이될 만큼 파괴력이 강한, 방사선으로 치료해도 또 전이되는, 이미 온몸에 뿌리를 내린 것 같은 이런 암은, 사실 없앨 수도 없지만 없애려고 해서도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방향 설정부터 틀렸던 것이다. 


성격과 삶의 방식을 모두 바꾼다... 세상에 이처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이게 바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암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상태라면, 유일한 대안은 이 일을 해내는 것밖에 없었다. 몸에 암이 생겼다는 것은, 특정한 사고에 의한 게 아니라면 당연히 우리의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요양병원에 가기 전에,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항암과 수술과 방사선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제대로 식음료를 섭취하고 좋은 산소를 마시고 적절한 운동을 해서 몸의 힘을 키우고,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고 마음을 관리하고, 몸과 마음 전체를 편안하게 평온하게 만들어갔다면, 비록 암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끔찍한 전이의 속도는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다른 후회의 지점이다.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일, 그는 용감하게 이 일에 도전했다. 균형 잡힌 채식 위주의 식단, 그 외 면역력을 높이려는 한방 및 양방의 다양한 투약 및 치료 프로그램, 굳은 몸을 풀어주는 마사지 등의 시스템을 보며 좀 더 일찍 알았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병원이 제공하는 것만 누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원래 새벽 2시에나 잠을 자는 야행성에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그걸 해내다 보니 또 일을 더하는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었지만, 입원 후에는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고 저녁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나중에는 5시에 일어나고 9시에 자기도 했지만. 특히 밤 11시 반부터 새벽 2시까지는 일반인에게도 그렇지만 암환자에게 너무도 소중한 호르몬이 배출되는 시간이라며 깊은 수면 상태에 있게끔 노력했다.


일어나면 아침 식사 이전에 북한강변으로 내려가 산책과 운동을 했고, 식후에는 병원의 각종 치료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점심 이후엔 그렇게 좋아하는 산을 매일 올랐다. 이전의 등산과는 달리, 천천히 음미하며 걸으려고 했다. 저녁 후에도 강변을 걸었다. 자연의 강변, 자연의 산이 주는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이 게으름에서 벗어나 병원문을 나서게 했다고 말해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여유로움을, 자연 속에서의 편안함을 오랫동안 느껴봤다고 했다. 이 브런치에 곁들이는 대부분의 사진은 이 시기 그가 찍은 것이다. 나중에 명상수련을 배우면서부터는 호흡 수련을 하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 첫 번째 정기검진의 결과가 나왔다. 왼쪽 폐에 있었던 48mm 암은 8mm 정도가 줄어서 40mm가 되었고, 왼쪽 폐 위쪽에 18mm 정도의 새로운 암이 생겼다. 방사선 치료 20회를 끝낸 후 나름 1달여의 자연치유 과정에 들어선 이후의 결과인데, 큰 암은 줄었지만 새 작은 암이 생겼으니 우리 암에는 방사선 치료가 큰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정한 암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새로운 암이 생기는 건 막을 수가 없다고. 생길 때마다 방사선을 쬘 수도 없는 일이고. 오히려 새로운 암이 생겼지만 자연치유 덕분에 성장속도가 좀 느린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매진하겠다고 말했고, 당연히 동의했다. 어차피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오히려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치유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좋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 것도 행복했고, 동병상련 같이 암 때문에 고생하는 암환우들과의 교류도 큰 도움이 되어 여러모로 만족도가 높았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웠다는 것. 처음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면회를 가면, 병원 안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외출증을 끊고 와서 근처에서 종일 시간을 보냈다. 매일 가는 북한강가를 함께 걷고, 상대적으로 몸에 좋다는 암환자들이 선호하는 음식들을 같이 먹었다. 그러다 보면 그는 병원에 들어가야 했고, 나는 불편해하는 밤 운전으로 집에 돌아와야 했다.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짧고 불편하다고 투덜거리던 우리는 결국 근처의 호텔이나 펜션을 잡기 시작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환자용 침대가 너무 좁고 불편하다던 그는 조금이나마 욕실에서 편하게 몸의 긴장을 풀었고, 넓은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병원으로 들어갔지만 다음날 아침 식사 후에 다시 나와서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일주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들었고, 자기가 적은 매일의 생각이나 몸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자 일기를 내게 보여주었지만 충분하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겨울이 오면 1달이라도 자기가 1인실로 옮길 테니 보호자로 들어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때쯤이면 너무 유효했던 심신통합수련 프로그램 새 시즌이 시작한다며, 자기가 볼 때 미래의 암환자인 나와 함께 꼭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미래의 암환자인 이유는 자기와 라이프스타일이 똑같기 때문이라나. 그리고 꼭 암이 아니더라도, 나 같은 워커홀릭은 한 번쯤 들었으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했고, 무엇보다도 1달간 같이 있으면 암이나 자연치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거라고, 보호자인 나의 지식과 식견은 자기에게도 너무 필요한 일이라며 주장했다. 시간을 빼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 말을 듣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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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이면 달을 찾아 말을 건다. 이제 내게 ‘세월’은, 달을 세는 시간이다.

해도 아니고 별도 아니고 꼭 달이어야만 한다. 달은 차고 이지러질 뿐. 항상 거기에 있으니까.

설사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렇게 계속 말을 걸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던 말들이 달에게는 쉽게 던져진다.

아마도 지구상의 수많은 헤어진 생명들이 이런 일들을 되풀이했겠지.

그래서 달빛이 저리도, 자기처럼, 다정한 걸 거야.   


잘 지내고 있지?

난 괜찮고, 또 괜찮아야 하지만 사실 그리 괜찮지는 않아.

그래도 괜찮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니까.



* 실손보험이 있으면, 표준치료를 받는 과정이라도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고,  다양한 치유프로그램에서 도움을 받고 몸상태를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할 수 있다.  

* 자연치유를 지향하는 요양병원들에선 자연치유에 대한 정보들이 많지만 너무 많아서 어렵기도 하고, 종종 비싼 물품 마케팅도 있고, 유행처럼 돌아다니는 방법들이 있어서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한다.   

* 삶의 방식을 바꾸면 암 '관리'에 도움이 된다. 몸과 마음, 양자 모두 편안한 상태로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호흡과 명상, 과하지 않은 운동, 양질의 식사, 좋은 산소... 모두 적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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