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나무 Aug 05. 2024

2. 육종암, 우리 죽어요?

- 잘 떠나보내고, 덜 후회하며 살아가기 위하여

시작은 등의 물혹이었다.

작았던 게 더 커지기도 해서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했지만 별 문제가 없었다. 도려내 봐야 또 생긴다고 더 불편해지면 그때 수술하면 된다고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 옷 위로도 너무 눈에 드러나자 이제 제거하자고 어렵게 짬을 내서 직장 근처 대학병원에서 수술일정을 잡고 입원했다.      


간단한 수술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길어졌다. 담당의사는 물혹을 도려내려고 수술하다 아랫부분에서 암을 발견, 일단 광범위절제를 했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육종암. 육종 중에서도 연조직 육종, 그중에서도 섬유육종(Fibrosarcoma). 육종 자체가 전체 암 발생의 0.2% 정도에 속하는 희귀 암이라고 했다. 암 선고를 받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엔 멍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기만 했다. 담당의는 아주 긴 입원 방사선치료를 권했고, 정신이 혼미했던 우리는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육종암. 전이되지 않으면 5년 생존율이 60-80%지만, 전이되면 10~30%로 낮아진다고.  정신을 차리고 약간씩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고, 병원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수술했던 대학병원은 육종암 전문가가 없어 보였고, 육종암 전문가를 보유한 암병원이 있는 종합병원들을 알아보고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그 대학병원을 택했다.

      

처음 그를 떠나보냈을 때, 이 병원을 선택한 것부터 후회했다. 나는 다른 병원을 더 마음에 들어 했고, 그가 이 병원을 원했으므로, 내 고집을 피우지 않은 것도 자학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른 어느 병원에 가도 이런 위중한 암은 똑같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암치료에 대해 무지한 환자와 보호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한번 암병원을 선택해서 치료에 들어가면 다른 암병원으로 옮기기 어렵다. 나중에 다른 병원으로 가보려고 시도했지만, 거절당했다. 어려운 암을 지닌 환자들은 한 병원 밖에 경험하지 못하니 비교평가가 어렵고, 같은 병원이라도 만나게 될 의사에 따라 다를 것이며, 환자와 보호자의 성향에 따라 다를 테니 어느 병원이 더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겠구나 싶다.      


한 달 정도 대기해서 처음 암병원에 갔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나 큰 암병동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이들이 모두 암환자라니, 우리만 암환자가 아니니 힘내자고, 긴장을 풀려고 애썼다. 예약시간보다 좀 더 일찍 간 걸 후회할 정도로 40분 정도 더 기다렸다. 꼭 잡고 있던 그의 손은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대기실 의자엔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빽빽했고,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했다.


기나긴 기다림 후 담당의를 처음 만났을 때, 얼굴이 밝고 환하고, 인상이 참  좋아 보였다. 후광이 있다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절대적인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아마 모든 암환자들에게 그렇겠지. 이미 다른 병원에서 광범위 절제를 했다고는 하나, 혹시 남아있는 암세포들이 있는지 검사들을 먼저 하자고 했고, 그 결과를 보고 어떤 치료를 해야 할지 결정하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달여간 밤잠을 설치게 하던 질문을 겨우 밖으로 꺼냈다.     

  

“우리, 살 수 있나요?”

담당의는 환한 얼굴로 친절하게 답해줬다.  

완치될 수 있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육종암 5년 생존율이 그리 낮은 편이 아닙니다.


“전이가 잘 되는 암이라고 하던데요?”

그렇긴 하지만 전이가 되면 수술하면 되고, 혹시 또 전이되면 또 잘라내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먹는 거나 다른 건 어떤 걸 신경 써야 할까요?”

술은 안 좋지만, 다른 건 특별히 가릴 거 없어요, 음식이 암에 영향을 끼친다는 확실한 물증은 없어요.


“직장을 관두고 쉬는 게 좋을까요?”

그냥 편하게, 하던 대로 하시는 게 제일 좋습니다.            


나중에 이 첫 만남을 몇 번이나 되새겼는지 모른다. 어차피 죽을 거니까 살아있을 때라도 마음 졸이며 살지 말라는 배려심이었을까도 생각했다. 아니면 의사라는 직업상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걸 수도 있다. 5년 생존율이 0%가 아닌 이상, 살 수 있는 확률에 당신도 들어간다고 희망을 줘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죽을 수 있다고 무서워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것보다는, 마음 편히 있는 게 훨씬 더 스트레스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 같은 상황의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살 수 있는 확률이 결코 높지 않습니다. 조심하세요”라는 경고가 훨씬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래 같은 말이 우리를 좀 더 살게 만들어줬을지도 모른다.      


“연조직 육종은 (...) '희귀 암'이다. 진단 시 이미 질환이 진행된 경우가 많으며, 원격 전이가 일어난 4기 연조직 육종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0% 미만에 불과할 만큼 위중도가 높다"

(https://www.medipana.com/article/view.php?news_idx=295574)


왜냐하면 완치할 수 있다는 전제냐,  죽을 확률이 높다는 전제냐에 따라 삶의 방식을 재조직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종암 5년 생존율이 높아지는데 기여했다. 암 진단하고 치료한 지 5년은 지나서 세상을 떠났으니까. 5년 생존율이 아니라 육종암을 가지고도 계속 살아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너무 궁금하지만, 정보를 얻을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진단 시 이미 질환이 진행된, 즉 전이될 확률이 높은 암이라면, 죽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처음부터 경고를 받았더라면, 지금 정도의 경험과 지식만 있었더라면, 당장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던 직장부터  그만두게 하고 오로지 자신의 몸만 생각하도록 했을 것 같다. 삶을 가르는 분기점이 아닌 이상,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쉽게 직장을 놓지 못한다.   


결국 2년 뒤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작 2년의 직장생활을 더 유지하고, 암이 발생하기 전과 거의 똑같은 생활의 패턴이, 내게서 그를 20년은 빨리 앗아가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그 바보스러움을 여전히 용서하기 힘들다.       


병원이나 의사 탓하는 시기도 지나갔다. 우리 잘못이고, 특히 보호자였던 내 잘못이 훨씬 더 컸으니까. 보호자인 내가 더 많이 찾고 알아봤어야 했는데. 한 명의 의사 말만 절대적으로 믿는 게 아니라, 다른 의사들은 어떤지, 다른 육종암 환자들은 어떤지, 조금 더 열심히 뒤져보고 찾아봤어야 하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우리는 당연히 의사가 우리를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읽은 책에서야 발견한 내용이 있다.

자동차나 집을 구입할 때도 단 한 명의 딜러나 중개업자의 말만 믿고 판단하지 않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에 대한 판단과 결정권을 그냥 의사에게 모두 맡겨 버린다고. 우리가 그랬다.


모든 전문직종이 그런 것처럼, 의사도 신(神)이 아닌 사람이며, 그러다 보니 역량이 뛰어난 사람과 닦아가는 중인 사람이 있고, 직업윤리를 지키는 사람도 안 지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텐데. 신도 아닌데, 하루에 몇 십 명씩을 상대하는 의사가 단지 몇 개월마다 십여분의 진료만을 보면서 어떻게, 각자 성향과 처지가 다른 환자에게 일반적인 방안 이외의 특수한 방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몰론, 신뢰 없이 치료는 불가능하다. 의사의 일반적인 방안을 신뢰해선 안되었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처지에 맞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방안에 대해 더 적극적인 공부를 했어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꽤 삐딱하게 보는 스타일이었는데도 병원과 의사에 대해서만은, 끝까지 책임을 져줄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이 기대는 무너졌지만.    


우리의 몸과 생명을 잘 지키려면, 주인장인 우리도 더 공부하고  알아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야 알았다. 물론 그랬어도 그가 내게서 떠났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바보 같았다는 자책을 좀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 평온할 수 있기를.


이전 01화 1. 그날 밤의 초조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