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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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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Graph Sep 09. 2015

어린 시절

일상문학 열세 번째 








서양 영화를 보면 밤에 이불을 덮고 자는 아이의 모습 위로 가녀린 달빛이 내려오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혹은 잠들기 전 아이가 창밖의 달을 한번 쳐다보고는 싱긋 웃고 자는 장면이라던지요. 

하지만 이 좁디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사는 한국에서 밤에 잠들기 전 달님을 보고 잘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Moon in the Window 


by Dorianne Laux


I wish I could say I was the kind of child
who watched the moon from her window,
would turn toward it and wonder.
I never wondered. I read. Dark signs
that crawled toward the edge of the page.
It took me years to grow a heart
from paper and glue. All I had
was a flashlight, bright as the moon,
a white hole blazing beneath the sheets.






시의 화자도 그런 이유에서였을까요? 혹은 달을 보고 느끼는 감수성이 메말랐기 때문인 걸까요?

달을 보며 사색하는 아이이고 싶었던 화자는, 단 한 번도 wonder 해본 적이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신에 읽었대요. 어두운 신호들, 기호들, 혹은 페이지를 기어가는 책 위의 검은 글자들. 종이와 풀, 책으로부터 마음을 기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답니다. 달 대신에 달 만큼이나 밝은 손전등이 있었다고 화자는 이야기합니다. 너무 밝아서 선명한 흰 구멍이 종이 너머로 생겼다고요. 




제가 어렸을 적 동경하던 것은 빨간 머리 앤이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마음껏 상상하던 앤이 부러웠죠. 제 머릿속에 있는 어린 시절은 드넓은 초원, 마구 자란듯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커다란 나무 밑에 누워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역시 말했듯, 이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캐나다에 버금가는 드넓은 초원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더욱이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 말이죠. 


그래서 고백하자면 제 어린 시절은 빨간 머리 앤이 뛰놀던 들판이 아니라, 잠자리에 누워서 깜깜한 천장을 쳐다보면서 까무룩 줄을 놓으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아 상상을 하게끔 강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초원 대신 저에겐 이불이 있었고, 조그만 방이 있었어요.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집어넣어진 어린 시절이 아니라 

진짜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도록요. 

내 방 창문에서는 보이지 않던 달이 아니라 손전등이 나에겐 빛이었다는 것을요. 




일상문학 숙제


1. 나의 솔직한 어린 시절을 써보자.

2. 나의 달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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