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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나 Aug 30. 2020

민원을 받은 다음날, 교무실에 불려 갔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1/3




  며칠 전, 옆 반 학부모로부터 민원이 들어왔다.



  우리 학년의 온라인 학습 자료 배부 장소를 학부모회실로 잡은 게 발단이었다. 해당 학부모가 옆 반 선생님에게 도난이 우려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학부모회실을 지키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학부모는 교무실에 다시 전화를 해서 허락 없이 학부모회실을 쓰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사과도 조율도 가능한 문제였는데 왜 담임교사에게 처음부터 원하는 바를 말하지 않았을까 씁쓸했다. 급작스럽게 등교가 중지되자마자 수십 개의 학습 꾸러미들을 정성 들여 만든 일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를 비롯한 우리 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교무실에 불려 갔다. 회의는 어제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설명이 끝나면 교감선생님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 상황에 대한 현명한 조언을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감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지금 나한테는 그 학부모가 어떤 민원을 넣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학년에서 학습 꾸러미가 언제 어떻게 배부되는지를 학년 부장인 연구 부장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위로는커녕, 훈계와 꾸지람이 30분 넘게 이어졌다. 요점은 조직에는 체계가 있고, 보고를 통해 상부로 의사결정의 결과가 전달되지 않으면 조직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방역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학교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일을 부장과 관리자인 교감이 사전에 알고 대비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처음에는 관료제에 찌든 듯한 문장들이 답답하게 들렸다.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맞는 말이었다. 조직 운영에서 소통은 핵심적인 것이고, 소통을 소홀히 한 우리 때문에 학교의 방역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학습 꾸러미 배부 일시와 방법 등을 당연히 부장님께 먼저 말씀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 준비물들을 당장 오늘 안에 준비해서 내일부터 나눠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 것이다. 듣고 있기에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한 마디라도 하면 핑계를 대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후 교실로 올라왔고, 꾸러미 문제는 1층 복도에서 교사들이 돌아가며 배부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여느 때처럼 아침 루틴을 시작했다. 명상을 했고, 가벼운 요가를 마친 뒤, 일기를 썼다. 6시 10분, 루틴이 다 끝나갈 때까지도 나는 평소와 달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으나, 그 외의 부분들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 학년은 담임 선생님이 5명이다. 그중 김 00 선생님을 제외한 4명은 2년째 동학년을 하고 있기에 사이가 무척 돈독하다. 교감선생님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식으로 부장을 빼놓고 선생님 네 명이서 마음대로 의사결정을 하는 게 올해만의 일인지 아니면 작년에도 이렇게 해왔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그 말에는 김 00 선생님이 이번 의사결정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는 가정이 깔려 있었고, ‘너희들 이 버르장머리 어디서 배워먹었니’라는 태도가 녹아 있었다.



  가슴 위에 큰 돌이 얹혀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답답하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이 돌을 내 손으로 내려놓지 않는다면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주차장에 도착할 때 차에서 내리는 교감선생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학교가 더 북적이기 전에 빨리 끝내는 게 나았다. 교실에 짐을 두고 곧바로 교무실로 내려갔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나를 바라보시던 연구 부장님과 실무사님들의 표정도 보지 못했다. 난 그저 교감선생님께 뚜벅뚜벅 걸어가 면담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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