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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May 15. 2024

당신이 짊어진 현실의 무게는 몇 kg인가요

제 근심걱정의 무게는 고작 50kg인데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겸 웹디자이너인 내가

어느날 갑자기 비키니 선수가 되겠다고 PT를 등록했다.





나는 헬스 3년차지만 운동은 여전히 서툴다.

한때 트레이너를 하기도 했었지만 스쿼트를 하는 정확한 방법도 모른다.


하지만, 운동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인게 분명했고

더이상 달라지지 않는 몸이 실망스러워서 피트니스 대회 준비를 결심했다.

비키니 선수 양성으로 유명한 헬스장에 찾아갔고, 프로 선수이신 선생님께 레슨을 받고 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운동은 혼자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숨이 너무 차 토할 것 같은 것은 물론, 근육은 춤을 추듯 덜덜덜 떨렸다.

하지만 그만큼 몸이 달라지는 속도 또한 신기할 정도로 빨랐다.


나는 하체 운동을 두려워한다.

힘들어하는 것을 넘어, 두려워한다.


특히 스쿼트.

내 몸을 짓누르는 중력을 온 힘으로 거스르는 운동.

20kg도 힘든데 자세가 잘 잡혔다싶으면 중량은 계속 추가된다.

어떤 날은 내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승모근 위에 얹기도 한다.


호흡은 또 어떠랴.

뱃속에 한가득 숨을 채웠다가 숨을 흡 참고 천천히 앉는다.

중력을 거스르고 일어나서야 참았던 숨을 뱉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중량 스쿼트를 한 세트 하면 땀으로 샤워하는 것은 물론,

너무 가쁜 호흡 때문에 목에서는 피맛이 나기도 한다.

숨이 돌아오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선생님을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면서도

은근슬쩍 원판을 하나씩 더 끼우신다.



바로 다음 세트 시작.


그 순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60kg의 무게에 깔려 죽겠다 싶었던 딱 그 순간,

내가 했던 모든 고민의 무게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 이번달 일이 많이 없어도 살아는 있잖아."

"진상 고객이 아무리 괴롭혀도 죽는 건 아니잖아."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내 볼테니 제발 깔리지만 않게 해주세요."

 ...


내일 당장 굶어 죽을수도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스쿼트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 모든 걱정들이 다 작아진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퇴사 괜히했나, 난 왜 이정도로밖에 못 살고 있을까...

나의 하루를 가득 채우던 모든 고민들이 20kg짜리 원판 4개 끼워진 바벨 앞에서

한없이 가볍고 하찮아진다.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숨만 잘 쉬고 있잖아?

아무리 일 없다 일 없다 해도 누군가 한명은 나를 찾아주잖아?



그래서 계속 운동을 했나보다.

일이 잘 안풀릴 때일 수록 더.


몸 만드는 게 좋아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삶의 고민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60kg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를 짓눌렀던 현실의 무게는 60kg까지는 안나가나보다.

50kg 남짓이었을까?


더 강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어느 날 80kg, 100kg 짜리 현실이 나를 짓눌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코어 단단히 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외로움과 막막함 속에 사는 나 같은 개인사업자분들.

어차피 계속 할 거면 잘 버텨봅시다.


깔리지 않고 지금까지 숨 쉬고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버틸 만하다는 겁니다.


우리 너무 무겁게 느끼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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