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혼자 묵독하는 것보다 소리내어 읽는 편이 훨씬 좋다. 그 보다 더 좋은 건 글을 다른 사람이 읽어주고 나는 그림만 감상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기억은 불행히도 없다. 내가 처음 책을 접했던 시기는 9살이었다. 당시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책을 파는 판매원들이 있었다. 젊은 나의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책을 사주고 싶어서였는지, 책을 사면 선물로 주는 서예도구 모음이 마음에 들었는지 100권의 소년소녀문고를 구입해 주셨다. 내 인생의 첫 책이었던 그 100권은 B5크기의 작은 문고판이었고, 그림은 당연히 거의 없었다. 빼곡한 글자들만 가득 했는데도 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소공녀, 비밀의 정원, 선녀와 나무꾼 등 당시에 읽었던 소년소녀명작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사고 읽는 이유는 어쩌면 젊은 나의 아버지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집에 있는 그림책은 순전히 엄마의 취향이다. 그림체가 내용이 엄마 마음에 쏙 드는 책만 구매했더랬다. 꼬마 건축가 이기펙도 그렇게 엄마가 좋아해서 구입한 많은 책 중에 하나인데 두 아이 마저도 좋아해 주어서 첫째가 5살 때쯤 구입하여 끊임없이 읽혀지고 있다. 내가 좋아해서 읽은 그림책이라도 아이들에게 선택되어져 많이 읽어 준 책들은 더 특별해진다. 책의 내용에 아이들과의 대화와 읽고 있던 장소, 위치 등이 자연스럽게 추억이 된다. 7살 둘째가 글씨를 몰라 읽어주는데 10살 첫째도 나도나도 읽어달라고 떼를 쓴다. 이미 글을 읽을 수 있고 내용을 다 이해하는 10살 아이가 '나도나도'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엄마와의 추억을 더 많이 공유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꼬마 건축가 이기펙'의 책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기저귀나 사과 등으로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글쓴이와 그린이가 다른데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재료로 만든 건축물들은 색감과 디자인이 감각적이다. 거기에 글자들 마저도 하나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그림책 한 장 한장은 마치 건축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보는 느낌을 자아낸다.
또 다른 매력은 이기펙의 이야기이면서 이기펙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기펙은 어렸을때부터 건축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아이였다. 이기펙의 부모님 또한 아이의 재능을 지지해주는 분들이셨다. 이기펙은 학교에 입학해서도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면서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서 이기펙은 좌절한다. 수업시간에 건축을 배우지 않음은 물론 건축과 관련된 어떤 것도 하지 못하도록 선언한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기펙은 실의에 빠져 재미없는 학교를 억지로 다니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반 전체가 강 한복판으로 소풍을 가게 된다. 즐겁게 소풍을 마치고 다시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다리가 무너져 버린다. 이에 선생님이 기절한 사이 이기펙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다리 문제를 해결한다. 그 뒤로 이기펙은 다시 학교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기펙의 이야기는 이 정도의 기승전결로 마무리가 된다. 이렇게만 보면 재능을 가진 아이의 재능발현, 시련, 그리고 인정으로 마무리 되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여상한 그림체가 아름다운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또다른 주인공이 있다. 바로 이기펙의 자유로운 건축 놀이를 차단하는 선생님의 사연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흔히 어린이 그림책에는 무섭고 강압적이어서 아이의 꿈을 방해하는 선생님이나, 한없이 온화하고 절제를 갖추어 아이의 꿈을 응원하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말그대로 선생님은 주인공 아이의 기승전결의 양념같은 존재인 것이다. '꼬마 건축가 이기펙'에 등장하는 선생님으 그렇지 않다. 선생님도 처음부터 선생님은 아니었다. 선생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고, 아픔도 있고, 이를 극복하게 되는 사연이 있을 수 있다. 선생님이 왜 건축은 쓸모없다고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건축 수업을 하지 않는지 나온다. 선생님은 어린시절 아주 멋지고 높은 건축물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이기펙이 멋지게 건축물을 만들고 설명하는 모습도 모습이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이기펙이 임시로 지은 다리를 멋지고 튼튼한 다리 같다고 생각하며 웃으며 걸어 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가 좋아 한 일을 했지만, 선생님의 트라우마를 드라마틱하게 극복해 주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건축물을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 내 삶의 주인공이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타인과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영향을 주고 받는다. 타인이 주는 크고 작은 영향은 내가 손쓸 새도 없이 때로 마음의 집에 구멍을 만들기도 하고, 더 단단해지게 하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젊은 나의 아버지의 입장에선 어쩌다가 사주신 소년소녀 명작이 내 마음의 집을 단단하게 하는 재료가 되었다. 나의 아이들에게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이 삶을 살아가는데 단단한 재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살아가다 집에 작은 구멍들이 생겼을 때 무너지지 않는 지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