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판다

오쓰카 켄타 글

by 릴리안

매주 수요일 저녁은 아이가 학교 숙제로 독후감을 쓰는 날이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학기 초에 월요일은 영어 노트와 일기, 목요일은 독후감, 금요일은 음악 공책과 리코더를 공지하셨다. 그렇지만 매일 저녁 무슨 숙제가 있는지 잊어버리는 아이와 그만큼이나 잘 잊어버리는 엄마이기에 저녁 8시 알람을 맞춰두었다. 어제도 어김없이 모두 잊어버리고 있을 때쯤 엄마의 알람이 울렸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첫째 아이는 글밥이 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읽다 보면 앞의 내용을 잊어버린다며 아직도 그림책을 읽고 있다. 조금 더 강하게 초등 중학년 책을 권해 볼까 싶다가도 나의 '국민학교'시절을 돌이키며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는 마음이 되어 버린다. 학교 다닐 때 억지로 쓰고 검사받아야만 했던 일기들을 생각하면 아이에게 어차피 해야 하는 독후감과 일기 숙제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싶어 진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읽고 싶고 쓰고 싶어 지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아이가 ‘오늘 하루 판다’라는 그림책을 펼쳐놓고 독후감을 쓰고 있길래, 뭘 하나 봤더니 책의 글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베끼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던 부분을 몇 줄 적는구나 했는데 공책 한 장 가득 그 내용 다 쓰고 있었다. 조금 웃기면서도 스스로 재미있는 문장을 옮겨 쓰는 일을 하다니 기특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역시 엄마 눈에는 아이가 무엇을 해도 대단해 보일 뿐이다.


'오늘 하루 판다'는 재주가 많아서 동물원에서 인기가 많은 판다가 감기에 걸려 보러 오는 손님이 없어 빈둥거리던 호랑이가 판다 가면을 쓰고 판다 대신 연기를 하게 되는 내용이다. 판다 대신 재주도 넘고 미끄럼틀도 타다가 그만 판다 가면이 벗겨진다. 그러자 실망하는 사람들, 생애 처음 받아보는 환호에 행복했던 호랑이는 순간 외면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해서 ‘왜! 뭐! 호랑이인 게 어때서!.’라며 발로 판다 가면을 툭 찬다. 그 가면이 슝 날아가서 청소하시는 분의 머리에 착 들어간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그 뒤로 호랑이는 그 동물원에 또 다른 인기 동물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귀여운 하마의 등장으로 끝이 난다.


이 그림책의 백미는 호랑이의 눈물이다. 그동안 한가롭게 있을 때는 별 불만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를 받는 순간 호랑이는 좋았고,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은 호랑이로서 받은 애정이 아니었다. 관심이 사라지고 오히려 실망한 사람들의 표정에 "나도 좀 좋아해 달라' 떼를 쓰지 못한다. 그러나 곰이 아니라서 실망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호랑이에게 당연히 상처이다. 드러내 놓고 아파하지 못하는 호랑이의 마음이 한 장의 그림에 모두 들어 있다. 귀여우면서 웃픈 모습. 나도 우리 아이들 만큼 그림책을 좋아한다. 이해하기 쉬운 글들과 그림으로 읽는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준다. 어떤 글과 그림은 위로가 된다. 질끈 감은 눈 아래 맺혀 있는 눈물 한 방울은 호랑이의 마음을 토닥토닥해주고 싶게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인가 겉으로는 쿨한 척하며 마음을 다쳤던 날의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왜 이 이야기를 다 옮겨 쓰고 있었냐고 했더니 봐도 봐도 재미있어서란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두고 싶지만 엄마는 또 참견하게 된다.

"옮겨 쓰기만 하면 안 되고 느낀 점도 적어야 해."

"응. 적을 거야."

"그래 뭘 적을 건데."

"동물원에 가서 판다를 보고 싶다. "

아이고야. 우리 딸 역시 천재는 아녔구나. 다시 한번 객관적인 엄마가 되어본다.


'오늘 하루 판다'를 읽고 딸아이처럼 느낀 점 한 줄을 기록하자면 "눈에 띄고 싶은 동물도 있고 여전히 한가함을 즐기는 동물도 있다."이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른 동물들은 여전히 한가지요."라는 문장이 참 마음에 든다. 판다는 원래 동물원 최고 인기 동물이었고, 호랑이는 가면을 청소부 아저씨에게 멋지게 씌우면서 급부상하는 인기 동물이 된다. 그렇지만 다른 동물들은 여전히 인기가 없다. 그렇다고 그 동물들이 슬퍼하느냐. 그렇지 않다. 그림 속 동물들은 그 한가로운 순간들을 즐기고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세상 살아가면서 다 눈에 띄면서 살 순 없지 않은가. 한가롭게 그러나 즐겁게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많은 동물, 사람들도 여전히 아름답다. 그렇게 나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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