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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민 Sep 08. 2020

1989년 6월 22일 목요일 맑음

너무나도 멋진 국어 선생님

우리 국어 선생님은 확실히 멋진 분이시다. 아이들한테 인기도 많으시다. 나 같은 애는 있는 줄도 모르시겠지.

저번에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선생님은 눈빛만 보면 그 학생이 선생님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단번에 아실 수 있다고 한다. 혹시 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걸 아실까?

오늘 7반  마지막 시간이 국어였는데 아이들이 다 같이 짜고 책상에 엎드려 있으니까  선생님께서는 너희들 피곤한데

그냥 자라고 하시며 칠판 가득히 자작시를  쓰셨다고 했다.

나는 주번이라서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그 얘기를 듣고 7반에 가서  얼른 그 시를 베껴왔다.


친구야

우리는 하루에 몇 번쯤 하늘을 보니?

저 넓은 운동장에 누워 하늘을 보며

흙냄새를 맡아본 적은 있니?

정말 맑은 꿈속에서 커나가야 할

너희들의 열다섯은 어떠하니?

벌써 사랑을 느끼지 못할

무미건조한 가슴은 분명히 아닌데

어리다고 철이 없다고

아냐! 결코 너희들은 어리지도 철이 없지도 않아

단지 사랑하는 법이 서툴기 때문이겠지

사랑

참 좋은 단어지

하지만 내가 그것을 할 때 더욱 그 가치가 빛나겠지

한번 우리 생각해 보자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

나 자신이 참으로 사랑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너희가 조금 더 커서

아니 내일 당장이라도

사랑 그 비슷한 것을 할 때에

기쁨이나 웃음보다는 슬픔이 더 많다는 것을

노래 가사에도 있잖아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던가

허나 친구야

그래도 우리에게 사랑은 꼭 필요하다

왜냐구?

우리는 바로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것은 살아있음이라더라

뭐라구?

사랑을 하기 어렵다구

성적이 앞을 가리고 시험이 뒤를 막고

교과서는 전혀 꿈이 없다구

바보야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야

사랑은 결코 좋은 상황에서만 가능한

솜사탕은 아닌거야

이런것을 깨치고 일어날 때만

의미있는거야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란다

친구야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미치면 미친다는 말이 있다

말이 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강조한 말이겠지

변진섭과 장국영이 둘러싼 너희의 꿈도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 없겠지

허나 정말 너희들이 꾸어야 할 꿈이 과연 그것일까

보다 자기 삶과 관련된 꿈이 꾸어지길 바라

꿈이 없는 교과서지만

참된 꿈을 배울 수 있는

그런 살아있는 수업을

너희와 함께 하고 싶다

완전 정복이나 필승에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런 시간 말이야

'원술랑'은 끝나지만 거기서 바라보는

여성은 정말 개판이다

잘못된 편견의 확산이더군

대등한 인격체로서의 한 인간이 아닌

남자의 부속적인 존재로서만 그려져 있는 모습은

정말 잘못된 모습 같다

옛날이야기 하나 할까

옛날 일제시대  우리 독립군 아내의 차림새가

어떠했는지 아니?

등에 아이를 업고 옆에 장총을 차고

뒤에는 싸리비를 달았단다

웬 싸리비냐구?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서라나?

이렇듯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빼앗긴 조국의 백성으로서

어느모에도 뒤지지 않았다

우리 여성상은 잘 나타나 지지 않는구나

그저 '유산'이나 '사랑의 굴레'에서

눈물을 짜내게 하는 허약한 모습으로나 보이는구나

여하튼 친구여

큰 꿈을 갖자꾸나

나만을 위하는 그런 사랑 말고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는 그런 꿈 말이야

사랑이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큰 사랑 한번 해보렴

우리 땅이 아직 밝은 것은 결코 잘난 어른들 때문이 아니라

바르게 배우려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너희들 때문이니까

너희의 밝음 속에서 함께 한다면

그것은 참 행복일 거다

이 땅을 푸르고 맑게 한다


P.S 꿈이 없는 수업시간에 꿈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결코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시를 쓰셨지? 우리 국어 선생님은 정말 멋진 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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