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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ana Feb 03. 2022

귀주머니

 무슨 하루하루가 이렇게 바쁜지 새해 맞은 지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음력설 연휴도 벌써 마지막 날이다. 가끔은 아이들 손톱 발톱도 깎아줄 여유도 없이 한 주를 넘기면 어느 틈에 자랐는지 길어져있다. 이번 명절 연휴는 토요일 일요일이 연달아 붙어있어 쉬는 날도 제법 되었고, 명절이라고 특별히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이들 손톱 발톱을 깎아줄 잠깐의 시간도 못 내었다. 겨울방학 시작할 때는 초등학교 방학은 왜 이리 길게 한 달씩이나 되나 싶고 언제 지나가나 했는데 내일이면 개학이라고 선생님 공지가 학교 어플 알람으로 뜬다.

 

 개학일 앞두고 아이들 손톱 발톱을 오늘은 꼭 깎아줘야겠다 싶어 손톱깎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첫째가 후다닥 방으로 달려가 손톱깎기를 챙겨 오는 김에 귀도 파달라며 면봉도 들고 온다. 첫째는 항상 손톱 손질할 때면 귀도 해달라고 한다. 엄마 무릎 앞에 배게를 두고 옆으로 누워 귀를 살살 간질여주는 게 편안한지 자주 그러곤 한다.


 나 어릴 때 생각해보면 나도 엄마 아빠 품에서 귀이개로 살살 귀를 긁어주면 솔솔 잠이 오던 게 기억이 난다. 중, 고등학생만큼 커서도 그 느낌이 좋았는지 한 번씩 엄마한테 귀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인다고 하셔도 귀지 빼는 것보다는 그런 편안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지 않았나 싶다.


 사는 게 뭐가 그렇게 쉴 틈 없는지 하루 일분일초 멍 때릴 여유도 체력도 용납이 안 되어서 밤 시간이 늦으면 아이들 오늘 할 일 마무리시키고 재우기 바쁘다고 아이가 귀 해달라고 하는 것도 '내일 하자'라며 미루기 일쑤다. 별 거 아닌 일도 미루다 보면 어느새 손톱 자란 것만큼 쌓여있다.


 직장 업무와 가사, 육아일에 치이고, 사는 걱정하다 보니 요즘 괜스레 여기저기 몸도 아픈 것 같아 우울했던 요 몇일인데 아이들 개학은 챙겨야겠다 싶어 새 마음 다지려고 손톱을 깎아주고 덤으로 귀도 파주었다.


 귀 파줄 때 살짝살짝 아프면 아이들이 움찔움찔하거나 어깨를 움츠리면서 '아파 아파' 하면 '귀 다 됐다. 그만하고 자자.' 한다. 첫째는 귀를 해주니 소로록 잠이 오는지 들어가서 자라니 그대로 침대로 직행이다.


 언니 해주는 모습에 둘째도 자기도 해달란다. 방에 가서 면봉 가져오라고 하니 서랍에서 면봉 하나를 꺼내온다. 바닥에 옆으로 뉘이고 면봉으로 살살 귀를 파니 첫째보다 귀지가 제법 나온다. 면봉이 조금 깊이 들어가 살짝 아팠는지 몸을 옴질대길래 '아파?' 물으니 아프단다.


 '00아, 아픈데 귀는 왜 해달래?'  하고 물어봤다.


 내심 엄마 무릎에 누워서 엄마가 귀 해주면 기분이 좋아서라고 말하길 기대한 물음이었다. 나름의 엄마로서의 뿌듯함도 느껴보려나 싶었는데

 

 "그거야 귀주머니가 무거워서 그러지 왜 그렇겠어."


 둘째답다. 쿨하게 본인 귀주머니 비우려고 했다는 말에 한바탕 크게 웃었다.


 가끔은 단순하게 대단한 의미부여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같다. 오늘은 이렇게 웃고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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