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핫도그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에게 학교 점심 급식에 좋아하는 음식이 나왔는지 물었다. 핫도그가 나왔다고 한다. 갑자기 첫째가 눈물을 보이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본인은 핫도그 막대기의 나무가시가 소시지를 씹으면서 같이 목으로 넘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어서 핫도그 먹기가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 먹고 싶었는데 선생님께서 알레르기 같은 특별한 질환이 없으면 반찬은 다 받아가서 먹으라고 하셨단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편식 없이 골고루 먹으라는 급식지도를 하셨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나 보다.
엄마에게 말하듯이 선생님께도 너의 마음을 말씀드려 보면 어땠을까 물었더니 오래전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일인데 오늘 처음 꺼내어 말하는 거라고.
6살 유치원에 다닐 때 본인 자를 잃어버렸었는데 며칠 후에 그 자를 선생님께서 쓰고 계신 것을 보았다고 한다. 선생님께 ‘제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막상 선생님 앞에 가서 말하려니 말보다 눈물이 먼저 쏟아졌다고 한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걱정 때문인지 솔직한 자기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게 그 이후로 아이는 쉽지 않다고 했다. 말을 하려고 하면 눈물부터 나온단다. 그 기억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누구나 본인만이 기억하는 특별한 감정 사건이 있다. 어찌 보면 참 별 거 아닌 일인데 그 기억들이 두려움으로 남아 자신의 한계를 규정 지어버리곤 한다.
나는 아이에게 속 마음을 털어놔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런 속사정이 있었느냐고. 엄마는 전혀 몰랐다고.
마음이 여린 아이에게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ADHD여서 평소에는 정말 수다스럽고 엉뚱한 행동으로 나이에 맞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아이의 모습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속마음은 나름 깊은 생각이나 고민이 있다. 아이로써 그 부끄러운 기억은 5년이나 말도 못 하고 숨기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저 아이의 마음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속마음을 표현했을 때는 어떤 해결책을 바라고 꺼내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 좀 알아줘라는 신호다. 나는 그 신호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냥 그렇게 오래 마음에 담아둬서 얼마나 힘들었냐고 받아들여줬다.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자신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