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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15. 2023

6. 아들이 주는 퇴직선물

여름 이야기

그이는 방학 때마다 아이들과 나를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고등학교 교사인 그이의 방학은 무척 짧았다. 짧은 기간 동안을 꽉 채워서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타고 오갔던 일은 아이들 고3 방학 때까지도 이어졌다. 고3에 여행을 가자니 말이 되느냐고 하는 아이들에게 남편은 머리를 식히고 돌아오면 공부가 더 잘될 거라며 설득했다.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이고 세계의 각국을 돌아다닐 때마다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마지못해 따라다녔다. 아이들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우리 부부를 따라 여행하는 것을 그다지 썩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려는 그이의 뜻이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나는 남편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이를 따라나선 이곳저곳의 여행지에서 아이들과 나는 서서히 여행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나 아이들은 여행을 통해 세계관이 넓어지고 통 큰 아이들로 자라났다. 아이들 둘 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시점에서 아이들은 마치 서로 여행 배틀을 하는 커플들처럼 기회만 되면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을 다니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일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90년생인 아들은 아빠가 재직하던 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어서 그이의 제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녀를 직접 가르칠 수 없었기에 아빠의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단지 아빠의 교육철학에 따라 어려서부터 과외수업과 학원수업은 한 시간도  받지 않았다. 놀기도 많이 했고 자기주도학습으로 공부했다.   


학교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스카이 반을 운영했다. 아들은 스카이반에 들어갈 대상이 되었지만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배우는 것보다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한 명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보내 학교 성적을 올리고 싶었던 교장선생님과 자기주도학습을 주장하던 그이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혼자서 공부하겠다는 아들의 뜻이 너무나 확고했고 이를 지지해 준 아빠의 뒷받침에 의해 교장선생님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스카이 반에서 강의를 받았던 29명의 학생들보다 혼자서 공부한 아들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  그런 아들은 어려서부터 가고 싶어 했던 의대에 진학했다. 그것도 재수하지 않고 현역으로 들어갔고 과락 한번 없이 빠른 코스로 젊은 나이에 의사가 되었다.






아들은 아빠의 퇴직 선물로 무엇을 드리면 좋을까 내내 고민하다가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아빠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여름휴가 스케줄이 늦게 나왔고 딸 내외는 진즉부터 프랑스 여행을 계획해서 떠났기 때문에 우리 부부와 아들 부부 이렇게 넷이서 아들의 휴가 기간에 맞춰 여행을 떠났다.


모든 것을 아들이 알아서 하는 여행이었다. 비행기 좌석도 숙소도 자동차 렌트도 운전도 여행 코스도. 나와 남편 그리고 며느리는 아주 유능하고 멋진 가이드인 아들을 따라 잘 먹고 잘 구경만 하면 되었다. 아들이 원래 아빠에게 구경시켜주려고 했던 곳은  대만의 동쪽 화련 협곡이었다. 그런데 렌터카 대여소에서 그곳에 태풍이 오고 있기에 화련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극구 말렸다.


이미 숙소 예약이 된 상황이었지만 숙소비를 과감히 포기하고 타이난과 가오슝 쪽에 급하게 숙소를 예약하고 내려갔다. 대만의 남쪽은 한번 가본 곳이라 익숙했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서 여행지의 느낌이 사뭇 달라지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더위에 괜찮냐고 묻는 아들 부부에게 "나는 우리 아들하고라면 지옥에 간다 해도 즐거울 거야"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 활짝 웃는 아들 부부의 모습을 보며 남편도 많이 행복해했다.


아들이 아빠에게 선물한 퇴직선물 덕분에 너무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비록 숙소비는 손해를 봤지만 여행 마지막날까지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아들 내외와 함께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아들은 우리 가족이 믿는 것은 사필귀정인데 진짜 이번에도 그랬다며 좋아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이끄는 고객들이 흡족해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이제껏 앞에서 주도해 왔던 여행을 이번에는 뒤에서 따라다니는 여행으로 아들에게 선물 받았다. 아직은 많이 늙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따라다니는 여행이 불편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참 의미를 가르치며 키워낸 자식의 선물을 오롯이 받았다. 그러기 위해 여행을 시작하기 전 마음을 비우고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이의 고백을 들으며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모습이 곱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 세상은 참으로 살맛 나는 광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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