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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바다, 나만의 리듬

30화 에필로그

by 김경희

‘돈은 얼마나 있어야 만족할까?’

누구는 많을수록 좋다고 하고, 누구는 적당히 있어야 좋다고 말할 것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살고 싶은 수준에서 약간 부족한 듯한 재산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조금 부족한 상태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언제나 조금 모자란 상태에서 더 깊은 열정을 발견한다. 배부른 마음에서는 꿈이 자라지 않는다. 부족함이란, 단지 결핍이 아니라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는 에너지다. 오늘보다 내일을 더 나아지게 하고 싶은 마음, 그 작은 갈증이 삶을 움직인다.


주린이인 지금이 좋다. 어리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과정인가. 아직 모른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고, 넘어질 수 있다는 건 다시 일어설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아직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두려움 덕분에 배운다. 익숙하지 않음이 깨어 있게 하고, 서툶이 겸손하게 만든다. 언젠가 조금 더 자라서 수익의 기쁨을 맛보게 되더라도, 오늘의 이 서툰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진짜 배움은 돈을 버는 법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깨닫는 데서 시작되니까.


주식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단 한 장의 도표도 그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릴 능력이 없다. 주식 차트 보는 눈이 아직도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을 시작한 이후, 하루가 조금씩 달라졌다. 재택 근무하는 직장인처럼 집 안에서 시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침대를 정리하고 몸 풀며 하루를 맞이한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거실 바닥에 부드럽게 내려앉으면, 그 빛에 얼굴을 살짝 비추며 오늘 하루의 속도를 가늠한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설거지와 청소를 마친 후 샤워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장이 열리는 아침 8시 전, 이렇게 하루의 작은 의례를 마친다. 주식시장은 마치 살아 있는 바다와 같다. 어떤 날은 잔잔하고, 어떤 날은 파도가 거세다. 오늘은 어떤 물고기가 튀어 오를지, 어떤 물결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8시에 프리 장이 열리면 노트북과 핸드폰을 앞에 두고 세력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장이 시작되는 9시, 눈앞에 펼쳐진 차트와 숫자의 향연 속에서 조용히 호흡한다. 관심 종목의 흐름을 살피고, 수급 동향과 테마 관련 주식의 살풀이를 바라보다가, 마음에 드는 종목이 보이면 매수 버튼을 누른다. 그 순간은 마치 작은 파도 위에 낚시 바늘을 던지는 것 같다. 연한 커피 향이 코끝을 스치고, 노트북 화면에 반사된 눈빛이 잠시 흔들린다. 그 짧은 순간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선명하게 받는다.


점심 먹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뒤, 글쓰기 작업에 몰두한다. 오후가 되면 장 마감 전 목표 수익을 확인하고, 조건이 맞으면 매도한다. 마감 이후에도 애프터 마켓의 흐름을 살피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판단은 오전에 이루어진다. 저녁에는 산책하며 오늘의 주식 활동을 되돌아보고 자기 전 수익 노트와 종목 노트를 펼쳐놓고 기록한다. 손끝으로 써 내려간 숫자와 메모 속에는 호흡과 마음 떨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게 주식하며 지내는 하루가 마무리된다.






주식 덕분에 여행 다닐 때도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화려한 장비는 필요 없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주식 매수와 매도는 충분히 가능해서 돈을 벌 수 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주식시장 시간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 요즘은 남편과 함께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생선 냄새와 바닷물의 짭조름한 향이 어우러진 도시 보령에서 반년 살이 하고 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생활비와 경비는 연금으로 충당하며, 주식으로 얻는 수익은 온전히 경험과 기록, 그리고 작은 즐거움에 쓰고 있다.


‘주린이 탈출기’라는 책의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주린이다. 주린이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거대한 돈 버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주린이라는 상태가 주는 설렘과 배움, 그리고 작은 성취를 즐길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내가 필요한 만큼의 수익을 매달, 꾸준히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요즘은 수십억을 움직이는 슈퍼 개미들이 많아졌다.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개미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부럽지 않다. 그들의 그릇에 돈을 채우는 일은 그들의 몫이고, 나는 내 그릇에 필요한 만큼만 채우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주식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삶의 리듬과 관찰의 즐거움, 그리고 기록의 습관을 선물한다. 숫자의 오르내림 속에서 마음의 파도를 배우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삶은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은 기쁨과 꾸준한 습관 속에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 진정한 풍요일 것이다.


나에게는 주식도, 글쓰기도, 여행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욕심내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누리고,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소액 투자로 수익을 냈다는 이야기가 어쩐지 가볍게 들릴 수도 있겠다. 어떤 기록이든 과정보다 결과가 더 눈에 띄기 마련이고, 독자 역시 결과에 더 관심 두고 읽어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식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덜컥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손실을 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투자하면서 손실을 보지 않겠다는 마음은 잘못된 것이지만, 무모한 손실은 삶을 망가뜨린다. 큰 손실은 무지 때문이기도 하고,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나 또한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았다. 주식시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공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시험하는 곳이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내가 얻은 결과는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운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의 공부 덕분이었다. 마치 수능을 앞둔 고3 학생처럼, 밤낮으로 차트 보고, 뉴스의 흐름 읽고, 기업의 재무제표를 뜯어보았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내 눈을 조금씩 밝게 만들어 주었다.


요즘은 시장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숨은 의도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남들이 보지 못한 타이밍에서 매매하는 힘이 생겼다. 그건 단순히 숫자를 읽는 눈이 아니라, 시장의 심리를 읽는 감각이었다. 결국, 주식의 수익은 ‘준비된 행운’에서 비롯된다.


주식시장은 언제나 변화한다. 변화 속에서 때로 흔들리기도 하지만, 또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밖의 활동이 없는 날, 핸드폰 하나와 노트북 하나를 곁에 두고, 주식과 글쓰기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살아낸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주린이와 주생아들에게 말하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실행하라. 완벽해지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나만의 속도로 이어가는 삶이 아름답다. 많이 있는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조금씩 성장하며, 스스로 마음에 필요한 만큼의 빛을 채워나가길 바란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나만의 바다 위에서 작은 배 띄우고 나만의 리듬으로 노 저어 가면서.


주생아와 주린이들을 응원하는

K 주린이 김경희



*이상으로 'K아줌마의 주린이 탈출기' 브런치북을 마칩니다.

브런치 북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이 몇 편 더 남았는데 차차 열외 편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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