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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의 심리를 알면 털리지 않는다

29화

by 김경희

이쯤 해서, 세력의 심리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세력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거대한 자금을 움직이는 손이다. 그들은 차트 속 그림자처럼 조용히 흐름을 바꾸고, 파도를 일으킨다. 시장을 흔드는 힘의 근원에는 언제나 그들의 심리가 있다.


그들의 심리를 읽지 못하면, 늘 흔들리고 당하는 쪽이 된다. 세력은 대부분 주식의 종목을 저가에서 천천히 매집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때, 외로운 골짜기에서 씨앗을 뿌리듯 주식을 모은다. 그러다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개미들이 뒤늦게 몰려든다. 그때부터 세력은 계산하기 시작한다.


주식 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어느 한쪽이 더 많이 가지려면 누군가는 내놔야 한다. 그래서 세력들은 주가를 흔든다. 호가창의 숫자를 교묘히 바꾸고, 의도적으로 거래량을 줄이며, 공포와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때 개미들은 흔들린다. ‘이 종목은 위험하다’, ‘이제 끝이다’라는 말에 마음을 내어주고, 결국 물량을 내던진다. 세력은 그 물량을 조용히 받아 담는다. 몸이 가벼워진 다음은 주가를 급격하게 올린다. 주가를 끌어올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장대 음봉으로 떨어뜨려 공포를 만들고, 이내 호재 뉴스를 흘려 희망을 심는다. 상승과 하락의 파도 속에서 개미들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세력들은 결코 개미들과 이익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없다. 그들은 개미들을 함께 오르는 동반자가 아니라, 반드시 털어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다. 자신의 몸통을 키우는 것.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냉정하고 잔혹한 곳, 그런 곳이 주식시장이다.


누군가는 희망을 품고 매수 버튼을 누르고, 누군가는 절망 속에 매도 버튼을 누른다. 세력은 그 모든 장면을 계산한다. 그들은 개미들의 눈빛 속에서 두려움을 읽고, 손끝의 떨림에서 욕심을 읽는다. 이런 감정을 이용해 차트의 움직임을 만든다.

개미들이 들고 있는 돈이 어디서 왔는지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아들 장가갈 때 주려고 꼬깃꼬깃 모아둔 돈이든, 평생 일한 노동의 대가로 쌓은 노후 자금이든, 조금이라도 가난의 벽을 넘고자 발버둥 치는 희망의 돈이든, 자식에게 받은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산 첫 주식이든... 세력은 개미들의 사연을 모른다. 아니, 알아도 관심 없다. 그들에게 돈은 단지 ‘시장에 흘러나온 유동성’ 일뿐이다. 이렇게 비정한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세력처럼 냉정해져야 한다. 감정으로는 이길 수 없고, 동정으로는 버틸 수 없다. 시장에서는 그저 강한 자와 준비된 자만이 웃는다.


세력들은 하나도 급하지 않다. 그들은 돈이 많고, 시간이 있고, 무엇보다 개미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 나도 이런 시장의 파도 속에서 수없이 흔들렸다. 뉴스 하나에도, 유튜브 영상 하나에도 마음이 휩쓸렸다. ‘지금 아니면 늦는다.’라는 말을 듣고 사면 떨어지고, ‘이제 끝이다.’ 싶어 팔면 금세 반등했다. 어느 날부터 차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숫자보다 흐름을, 가격보다 의도를 읽으려 했다. 거래량의 숨결, 캔들의 길이, 짧은 눌림과 반등의 리듬 속에서 세력의 손길을 느꼈다. 그들의 심리는 일정한 파도를 가지고 있었다. 공포를 만들고, 인내를 시험하며, 욕심을 자극하는 리듬. 그 리듬을 감지하고 나니, 시장이 비로소 하나의 생명처럼 보였다. 이런 감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많은 시간의 경험과 실수를 통해서만 쌍아 갈 수 있다.






7개월 전, 나는 원전 대장 주를 샀다. 실적도 기술력도 단단한 회사였다. 하지만 매수 직후 주가는 두 달 가까이 파랗게 식어갔다. 하락의 터널 속에서 매도 버튼 위에 손이 머물렀다. 그때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하락은 세력의 의도일까, 내 불안의 그림자일까?”


이 질문 하나가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조용히 기다렸다. 세상이 시끄러워도, 차트가 흔들려도. 기다림의 끝이 된 어느 날, 거래량이 터지며 주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원전 수출 관련 기사가 터진 날이었다. 세력은 이미 그전에 매집을 끝냈고, 시장의 바람을 준비해 두었다.


다행히 흔들리지 않고 기다려서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결국, 세력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던 건 인내심 덕분이었다.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세력의 심리를 읽는다는 건, 곧 내 마음을 읽는 일이라는 것을. 세력은 내 손가락을 건드리지 않는다. 대신 마음을 건드린다. 조급함, 불안, 욕심, 확신... 이 모든 감정이 세력의 도구다.


세력의 움직임을 살피며 매매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감정, 판단의 이유, 흔들림의 순간을 기록했다. 감정의 온도를 기록하다 보면, 시장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세력은 개미들의 심리를 이용해 파동을 만들고, 개미가 흔들릴 때 수익을 챙긴다. 개미가 털리지 않으려면, 차트를 읽기 전에 자기 마음부터 읽어야 한다. 그다음엔 차트를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세력의 움직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아침 공기가 선선한 시간이면, 나는 커피를 내리며 여전히 주식시장으로 향한다. 붉은 봉과 푸른 봉이 깨어나고, 차트가 하루의 첫 숨을 쉰다. 서서히 차트 봉이 움직이고 붉은색이 푸른색으로, 푸른색이 붉은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제는 색이 바뀌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의 맷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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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