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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해 Aug 28. 2020

 걷는 방법을 아세요?

안하느니만 못한 걸음 

 "야 니 똑바로 걸어라. 허리 다 베린다"

 엄마는 항상 몇 걸음 뒤에서 나의 걸음걸이를 확인했다. 그럴 때면 나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걷는데 온 신경을 쏟는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걷는 것이 ‘똑바로’ 걷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신발장에서 내 신발을 찾아내는 것은 쉽다. 왼쪽 신발 밑창이 유난히 닳아져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 나는 팔자걸음이 매우 심하고 -무용을 하지 않았는데도- 서있을 때 왼쪽으로 치우쳐 서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걸음 걸이를 보며 몇 년이고 단속해왔지만 그 것은 쉽게 고쳐질 줄 모른다.

 엄마는 오빠와 나를 낳고 허리 통증에 시달려야했다. 엄마의 허리춤에는 항상 복대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스트레칭과 운동을 병행하며 몸을 관리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 허리 건강에 유난히 신경을 쓴다. 한 번은 내게 자세 교정 학원을 다녀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 학원은 집에서 2시간 거리였고, 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비싼 가격이었다.

 “걷는거 배우는데 100만원이 넘게 든다고? 차라리 그 돈 나 줘. 내가 혼자 고쳐볼게”

  그만큼 걸음걸이와 자세를 고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28년동안 무의식 중에 습관처럼 이렇게 걸어왔다.  

 “처음 걸음마 배울 때 잘 알려주지 그랬어. 평생 이렇게 걸으면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이제와 고치라면 고쳐지나”

 엄마의 잔소리는 내가 걸어온 시간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애초에 내 걸음이 올바르지 못한 거였다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올바른 곳일 수 있는걸까? 걸음에 대한 의심은 내가 걸어온 행적에 대한 의심으로 커져갔다.    


 “자세가 잘못 되면 운동의 효과가 없어.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해”


 내게 스쿼트 자세를 가르쳐주던 들개는 운동의 횟수보다 올바른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들개는 천천히 올바르게 하면 운동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들개는 언제나 '천천히'를 강조했는데, 참을성이 없는 내겐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스쿼트 자세를 거울로 확인하며 천천히 갯수를 늘려나갔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는데 허벅지에 살들은 그대로지만 어쨌든 근육이 붙긴 했다. 

 어린시절에 누군가 내게 그걸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자세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빨리 가야한다는 재촉을 들으며 달려 나가기 바빴다. 나는 힘만 잔뜩 빠진 채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안고 터덜터덜 돌아 오곤 했다. 내게 남은 건 닳아버린 내 왼쪽 신발 같은, 내 것이 분명한 못난 흔적뿐이다. 한 쪽이 닳아버린 밑창은 내가 한 쪽으로 치우쳐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여전히 기댈 곳을 찾고 있다.


 “들개야 엄마가 나보고 걸음걸이가 이상하대. 나는 걷는 것도 잘 못하나봐”

 “아주 개성 있는 걸음이지. 아이덴티티가 가득 해”

 들개는 이상한 말로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 위로가 썩 마음에 들었다. 나다운 걸음으로 걸어왔다면, 적어도 잘못된 곳에 도착한 것은 아니겠지. 때때로 모든게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나를 위로하곤 한다. 

 

 잠들기 전 명상 어플을 켰다. 매일은 아니고 잡생각이 많아 잠이 오지 않을 때 가끔 명상을 한다.

 "눈을 감고 숨을 쉬는 것을 느껴보세요"

나는 어플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안내를 따라 내 호흡에 집중해본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배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숨이 지나가는 길을 느껴본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볼게요"

 숨을 들이쉬려고 하는 순간, 어떤 것이 들이쉬는 것인지 헤깔리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숨을 들이쉬고 있나? 내쉬고 있나? 혼란스러워 하는 동안 목소리는 다음 차례의 호흡을 언급한다. 무의식중에도 끊임 없이 숨을 쉴텐데 숨 쉬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숨쉬는 것이 어려워졌다. 엄마의 잔소리에 걸음 하나 하나 의식할 때마다 되려 더 이상하게 걷게 되는 것 처럼.

 나도 모르는 새 터득하는 바람에 방법을 알 수 없게 된 것들.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면서 하는 것들. 숨쉬기, 걷기, 말하기, 손가락 움직이기 같은 것들을 생각하자.........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을 무방비 상태로 맞이해 얼떨결에 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또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 그런 생각이 내 숨 길을 통과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명상 어플을 멈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제야 숨이 잘 쉬어졌다.  


"몸이 아프면 그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야. 아프지 않은지 꼭 확인해야 해. 아프면 멈추고 다시 자세를 확인해야 돼."

 자극과 고통은 다른거라고 들개가 말했다. 

 자세를 잘 익히지 못하는 나에게는 고통만이 그 기준이 되어줄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늘도 걸었고 이따 퇴근 길에도 걸을 것이며 내일도 걸을 것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걷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저 아프지는 않은지 확인하면서 걷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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