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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해 Aug 20. 2020

친절한 들개씨

내겐 친절하지 않은 웃음을 지어줘.



"어제 시킨 택배 방금 왔대. 진짜 개 빠름"

인터넷 쇼핑 중독자인 나는 '당일 배송'이라는 단어만 봐도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어제 주문한 물건을 오늘 받아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택배 도착 문자를 받고 들떠 들개에게 말했다.

"그런 거 너무 속상해"

들개는 내 예상과는 다른 말을 해왔다.

우리가 편한 만큼 누군가가 고생하는 거잖아"

"그러네..."

"택배 기사님들 진짜 힘들 것 같아. 고객이 빨리 받아야 해서 밤낮없이 일하시잖아. 너무 쓸데없이 친절해졌어"

"누군가 친절을 강요해서 친절해진 거네. 나 그런 거 잘해. 알바할 때 친절하단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 방긋방긋 잘 웃는다고. 근데 사실 나 안 친절해. 그냥 웃으라 해서 웃었지."


 입맛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는 서브웨이에서 일할 때였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샌드위치를 만드는 데만 (메뉴, 빵, 사이즈, 치즈, 굽기, 야채, 소스) 7가지의 질문을 해야 했다. 덕분에 샌드위치 하나를 만드는데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기 손님이 늘어나면 마음은 점점 초조해진다. 손님들은 오래 기다리면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내 얼굴에서는 점점 웃음기가 사라지고 질문도 빨리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매장에는 컴플레인이 많았다.


-직원들이 불친절해요.


사장님은 컴플레인 글을 프린트해서 게시판에 붙여두었다. 그 종이 위에 펜으로 "항상 친절하게"라고 크게 쓰여있었다. 나는 짜증이 나고 힘들었지만 고분고분하게 웃어야 했다. 그 무렵 인스타그램에서 한 게시물을 발견했다. 그녀는 서브웨이에서 산 샌드위치 사진을 찍고 그 밑에 이런 글을 써두었다.


-5900원 주고 이렇게 내 말 잘 들어주는 데는 여기밖에 없음. 해달라는 데로 다 해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서브웨이는 5900원만 내면 요구대로 다 해준다니! (굽기 시간, 재료의 양 등이 있음. 사실 이 것보다 더 다양한 요구들이 있는데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다른 매장 가서 요구할까 봐 생략함) 나는 이 글을 읽고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 5900원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좋은 서비스를 대접하고, 나는 갈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최저 시급에 사람들의 모든 말을 다 들어주는 사람이 돼야 했다. 고분고분한 웃음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나는 너무 친절한 곳에 가면 오히려 부담스러워"

 너무 많은 요구와 강요에 그들이 웃게 된 건 아닐까. 그들의 웃음 뒤에 상처가 있을 것만 같다. 우리에게 꼭 이렇게까지 친절한 대접이 필요할까?

 

 친절한 웃음이 습관이 되었는지, 나는 화나고 기분 나쁜 순간에도 곧잘 웃음으로 무마하곤 한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분위기를 망치지 않도록 애쓴 것이다. 들개도 그랬다고? 아차차, 우리 또 친절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웃음이 필요하다. 요구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웃음이 있다. 사람들이 내게 자신의 성질을 드러낸, 고분고분하지 않은 웃음을 지어주면 좋겠다. 친절하지 않은 웃음을 짓고, 친절하지 않은 웃음을 받고 싶다.


내겐 친절하지 않은 웃음을 지어줘. 우리 친절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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