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장애인복지법이 개정・확대됨에 따라 장애인 인식개선 의무교육이 초・중・고 및 대학교 등 전 교육기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장애인식 개선 교육 대상이 공공기관,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 대학교 등 총 6만 4천여개 기관으로 대폭 확대된 것입니다.
또한 각급 학교의 장 및 교육기관의 장, 공공단체의 장은 소속 직원·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애인식 개선 교육 결과를 30일 이내에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편,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더욱 개선하기 위해 소속 학생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연 2회 이상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장애 및 장애인에 대한 특성과 올바른 이해, 그들이 처한 생활환경, 상호작용하는 방법, 졸업후 진로 등을 다각적으로 탐색하고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의 중요성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연2회 시행되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으로 지역 사회에 만연된 님비현상이 극복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유아기부터 체계화된 장애이해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를 실천하는 노력이 꾸준히 더해진다면 장애 편견 극복이 장기적으로 가능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할 때 설문조사로 학생들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질문은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였습니다.
대부분은 “편견을 없애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장애인 입장에서 좀 더 배려해야 한다,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 등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잊혀지지 않는 대답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이미 부정적이라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장애에 대한 인식이 이미 부정적이므로 그러한 장애 인식을 개선 하는 교육이라는 뜻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의 종류가 나올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몇몇 학생들은 ‘장애인식 개선 교육‘이라는 명칭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인식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장애라는 단어에서 벌써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별 생각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써 온 용어였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람들에게 ‘장애 인식이 이미 부정적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식 개선’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장애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만연해 있으므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장애 인식이 긍정적인 사람들도 저 말을 계속 들으면 일반 대중의 장애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스스로 장애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느끼는 학생들은 5% 정도에 불과합니다. 거의 대부분은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뜻이지요.
일반인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장애에 대한 인식이 보통 또는 긍정적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이 거의 90%에 이르렀습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스스로는 장애 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지 않다고 대답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장애인식 개선 교육’이라는 용어 자체가 정해져 있으니 이를 듣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니 이를 개선하는 교육’이라는 느낌이 당연히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대부분의 학생들조차도 장애인식 개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듣다보면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까지 부정적이다.’ 라는 생각이 고착화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어쩌면 ‘장애’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부터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장애’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뉘앙스를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식 개선 교육’이라는 용어가 주는 ‘장애에 대한 인식은 이미 부정적이므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라는 느낌을 고칠 수 있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ICF에서는 장애의 개념을 세 개의 차원으로 분류합니다.
제1차 장애는 impairment로 신체의 생리학적인 ‘결함’ 내지는 ‘손상’입니다.
제2차 장애는 disability로 제1차 장애(impairment)가 직접/간접적인 원인이 되어 심리적 문제가 직접/간접적 발생할 경우의 ‘인간적 능력이 약화 또는 손실’된 상태입니다.
제3차 장애는 handicap으로 제1차 장애와 제2차 장애가 통합된 형태에 다시 사회/환경적 장애가 통합된 형태로 ‘사회적 불리’를 의미합니다.
즉, ‘장애’라는 말은 단순히 신체나 정신능력의 결함 또는 손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애요인이 중층적으로 통합되어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불리한 입장에 처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보통 평생 불구자 또는 모자란 사람이라는 인식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장애라는 단어에서 벌써 부정적 인식이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학교에서 복도를 지나다가 학생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난을 치다가 한 학생이 불쑥 내뱉습니다.
“너 장애냐?”
“이게 그냥”
장애라는 말을 욕처럼 혐오스러운 말로 쓰고 있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바르게 형성되지 않으면, 장애를 비하하고 욕 대신해서 쓰는 단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ICF의 장애 개념에 따르면 장애는 단순히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결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모든 환경적,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여 평가해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다리가 부러진 사람이 의족을 사용하여 비장애인과 똑같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닙니다. 팔이 없어도 보조도구를 사용하여 똑같이 필기를 할 수 있고 물건을 들 수 있다면 역시 지체장애가 아닙니다.
만약 처음 가보는 건물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깜깜하여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출구를 찾아 나가는데 많은 애를 먹을 것입니다.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겠지요.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그 상황에서도 평소 다니던 대로 지팡이를 두드리면서 능숙하게 건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즉,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이고, 시각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장애는 단순히 신체적/정신적 결함 또는 손상 만을 가지고 평가하면 안 되고, 그 사람이 속해있는 여러 환경적, 문화적, 맥락적 요소들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함이 있어도 보조 도구, 보조공학기기 등을 이용하여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면 더 이상 장애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상황에 따라 비장애인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상황과 환경에 따라 바뀌는 것이지요.
‘장애’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뉘앙스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장애 대신에 새로운 용어가 쓰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와는 반대의 흐름이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예전에는 ‘지체부자유’라고 부르던 것을 오늘날에는 지체장애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정신지체’라고 부르던 것을 오늘날에는 지적장애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체장애, 지적장애라고 이름을 붙이면 회복되지 않고 평생 안고 가야하는 불구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사람이 일상생활을 불편함 없이 영위할 수 있을지라도 말이지요.
이것은 ‘장애’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 느낌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지체부자유, 정신지체라고 표현하면 평생 불구라는 느낌보다, 몸이 조금 불편한 정도, 정신연령이 조금 늦게 발달하는 정도라는 인식으로 다가옵니다.
따라서 굳이 ‘~장애’를 붙여서 용어를 통일하는 것보다, 예전 명칭인 지체부자유, 정신지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몸이 좀 불편하구나.’, ‘정신적으로 연령이 조금 늦는 거구나.’란 인식을 심어주어 일반 사람들에게 훨씬 긍정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자폐성 장애의 경우에도 자폐(自斃)라는 단어가 ‘스스로 갇혀있다.’라는 아주 폐쇄적인 느낌을 줍니다.
자폐성장애 아동의 경우 워낙 특성이 다양하고 수준이 뛰어난 아동도 많은데 이들을 모두 자폐라고 표현함으로써 부정적인 선입견이 생기게 만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서구에서는 ‘자폐 권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폐 권리 운동은 이미 서구에서는 하나의 큰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폐 권리 운동가들은 자폐성 장애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를 반대하고 자폐를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 또는 장애로 보는 시각을 거부하고 다양성으로 정의합니다.
또한 자폐 권리 운동가들은 비장애인들이 자폐성 장애 아동의 도전적 행동을 고치기 위해 행하는 행동수정 요법들이 너무 비인격적이고 과도한 행동통제를 한다고 하여 반대합니다.
자폐성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비장애인의 행동이 이상한 것이고, 자폐성 장애인은 장애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장애라는 명칭은 비장애인이 비장애인 입장에서 편의적으로 정한 단어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애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공론화를 통해 변화된 장애의 의미를 포함할 수 있는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새로운 단어가 제정되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장애인식 개선 교육의 명칭도 바뀌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식이 이미 부정적이므로 이러한 교육을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적어도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잘 살기 위한 교육 명칭으로 바뀌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식 개선 교육과 비슷한 정도로 많이 쓰이는 ‘장애이해교육’은 그나마 괜찮아 보입니다.
더 나아가 장애인식 개선 교육의 명칭을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교육’,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행복한 교육’ 등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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