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6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다 보니, 한컴오피스의 ‘한글’이나 MS 오피스의 ‘워드’를 주로 사용하면서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사실 PPT도 별로 사용할 일이 없었어요. 보는 경우는 있어도 만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사양의 노트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워드 작업과 인터넷 서핑, 이메일 주고받기 정도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죠. 그렇게 십여 년이 흘러도 별로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았어요. 소통은 문자나 전화로 했고, 카카오톡이 생긴 이후로는 카카오톡으로 하면 되었으니까요.
처음으로 들어간 스타트업에서 ‘슬랙’이라는 걸 처음 써보게 된 후 진짜 컬처 쇼크라고 부를 만큼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이메일을 쓰지 않는 거예요. 게다가 단 둘이 소통해야 할 부분까지도 공개적으로 소통해야 했죠. 또 지난 히스토리까지 다 볼 수 있어서 알고 싶은 정보를 굳이 누군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답니다.
저와 함께 기자생활 하던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슬랙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때 슬랙을 표현한 방법은 이거였습니다.
“트위터 같이 공개적으로, 둘 만 소통해도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메신저야!”
제가 처음에 들어간 스타트업에서 슬랙을 사용하는 방법은 오직 공개적인 채널만 활용해야 하고 DM을 지양하는 문화였기 때문에 더 이상하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진짜 한 사람에게만 말해도 되는 내용을 100명이 넘는 사람이 보는데서 소통해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답글이라는 의미인 스레드니, 채널이니 하는 단어들도 무척이나 생소했습니다.
처음에는 ‘스레드를 달아주세요’라고 하는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저렇게까지 채널에서 소통하라고 계속 강조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DM으로 소통한 내용은 다른 사람들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당사자가 사라지면 그 내용도 사라지니 프로젝트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죠. 이는 인수인계 절차를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채널에서 이미 대화를 나눈 내용이 다 남아있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 어떤 결정이 이뤄졌는지도 다 알게 되죠. 전 구성원이 어떤 프로젝트가 어떤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지 동시에 알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그런 이유들에서 공개적으로 소통하라고 한 거죠. 그게 슬랙을 쓰는 이유이자 잘 쓰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정보의 비대칭을 없애자는 거죠.
익숙해지니까, 오히려 저렇게 공개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훨씬 편하더군요. 기록이 공개적으로 다 남으니까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좋았죠. 대화 내용을 현재로 불러오는 기능도 있기 때문이거든요. 누가 맞냐 틀리냐 하며 동료와 신경전을 벌이다가도 슬랙 내용을 불러와 시시비비를 가린 적도 있습니다.
새로운 툴을 만나서 일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서 내 태도나 행동 등이 변하는 것처럼요. 저는 스타트업에 와서 다양한 협업툴을 만나면서 미묘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저는 슬랙을 사용하면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모든 사람이 내 의견을 보아도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남긴 대화까지 전부 검색할 수 있는 툴을 쓰면서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습니다. 공개적으로 글을 남기는 건 부담감이 좀 사라졌지만, 제대로 남겨야 한다는 부담감은 더 커진거죠. 구글 워크 스페이스를 사용하면서도 누가 언제 무엇을 수정했는지를 다 볼 수 있는 워드, 엑셀 파일 등을 만드는데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제 작업물에 실시간으로 달리는 코멘트를 두려워하기도 했죠.
다음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노션과 피그마라는 협업툴을 더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공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데 의의가 있는 협업툴인데요. 노션은 전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주 작은 단위의 프로젝트까지 진행상황이나 기록을 다 볼 수 있고, 피그마는 디자인 작업물을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코멘트를 남기고 볼 수 있게 만든 툴입니다. 제 생각엔 슬랙과 노션, 피그마 등은 모든 정보를 구성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노션과 피그마는 지금 누가 어느 부분을 보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는 툴이라 작업물을 만들고 있으면서 지켜보는 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채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툴만 사용하다 보니, 두려움이 크던 처음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개의치 않아 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롯이 혼자만 작업해, 그 결과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곧 나라는 인간에 관한 피드백을 받는 것처럼 느껴져서 두렵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성원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피드백을 주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제 자신과 제 작업물을 구분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혼자 자신의 기사를 쓰면 되는 기자 시절과 달리, 스타트업에 와서 다양한 협업툴을 쓰면서 저는 다른 사람과 일을 함께 나눠서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 작업물에 접근해 실시간으로 코멘트를 다는 것을 관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협업툴을 사용하면서,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일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건, 비단 스타트업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슴속 슬픔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의 씩씩함이자 아름다움 아닐까.”
고민을 혼자만 안고 끙끙대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듯, 일에서 역시 혼자 끙끙대면서 하는 것보다 동료에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스타트업 구성원의 씩씩함이자 아름다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