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심리 상담

by 무아

주치의는 나에게 상담 치료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입원 기간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거절했지만, 상담 치료와 입원 기간은 무관하다는 답변을 듣고 고민 끝에 상담을 받겠다고 했다.


사회복지사 한 분이 나를 전담해 한 달가량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여러 회차에 걸쳐 나는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내 삶을 토해내듯 고백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상담 치료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의 성장 배경을 되짚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가족들과 또래 친구들로부터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말을 하다 보니 스스로 깨닫게 된 부분도 있었다.

나는 자기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불편한 것보다 남이 불편한 게 더 싫었다. 그래서 늘 눈치를 보고 살았다.


가족 눈치, 친구 눈치, 생판 모르는 남 눈치.

항상 상대방이 나보다 우선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싫으면서 겉으로는 좋다고 말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항상 어디론가 끌려갔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누군가 끌고 가는 내 삶을 열심히 쫓아갔다. 그 배경에는 내 성장 과정이 있었다.


나는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과 언니 2명. 위로 4명이나 있다는 게 나에게는 큰 압박이었다. 가족을 가족이라 편하게 생각지 못하고, 상전 모시듯 늘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엄하고 감정적이신 아버지. 자애롭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어머니. 개성 강하고 불같은 성격의 언니 두 명.


나는 꽤 오랫동안 가족들을 싫어했던 것 같다.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내 삶을 통제하려는 어머니가 싫었다.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 언니들이 싫었다.


맞벌이이신 부모님을 대신해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해야 하는 환경이 싫었고, 돈돈 거리는 부모님이 싫었다.


하지만 차마 가족을 싫어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싫어하는 마음보다 조금 더 많이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착한 아이가 되기로 했다. 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언니들과 부딪히지 않는 아이. 나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서 사는 것이 익숙해지게 되었다. 좋고 싫음의 기준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둔 순간부터, 나는 나를 잃어갔다. 그 스트레스들이 점점 쌓이고 쌓여 마음속 깊은 응어리로 남게 되었고, 조증 시기에 가족들에게 참아왔던 감정들이 폭발하게 된 것이었다.


상담을 통해 내가 왜 그동안 자기표현을 하는 것에 서툴렀는지 알게 되었다. 나도 잊을 만큼 깊은 지하에 있던 모든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소속된 집단들, 또래 친구들, 성취했던 것들 등 나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되짚어갔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나를 공부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이고 어떤 것을 우선하는지. 복잡 다양한 나라는 존재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외부 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상태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믿지만,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나를 잃어버렸을 때에는 상담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keyword
이전 06화슬기로운 폐쇄병동 재입원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