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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준

by 무아

나는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맞벌이셨는데, 주중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바쁜 부모님 밑에서 언니들은 곧 경쟁의 대상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경쟁자. 나는 특별해지고 싶었다. 내 존재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칭찬받고자 노력했다. 칭찬은 곧 나의 행복의 기준이 되었다. 세 자매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나의 원동력이 되어 공부도, 교우관계도 모두 ’ 만족할 만한 ‘ 수준에 이르게 했다. 학교에서는 바르고 인기 많은 아이였고, 집에서는 착한 아이였다. 상장을 받을 때마다, 시험에서 높은 석차를 거둘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칭찬에는 강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칭찬이라는 모래성을 열심히 쌓아나갔다.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갈 모래성을 열심히도 쌓았다.


성인이 되자 나의 모래성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성인으로서 주어진 자유는 나를 더 방황하게 했다. 인정욕구에 따라 길을 걸었을 뿐이었으니 무엇이 하고 싶은 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 나의 상태를 모르는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계신 듯했다. 부모님은 내게 전문직 공부를 제안하셨다. 또다시 인정을 받을 기회였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나에게 이정표가 생긴 기분이었다. 흔쾌히 제안에 응했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문직 공부란 내 적성에도, 역량에도 맞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못 가 우울이 찾아왔다. 이때 내 행복의 기준은 도파민이었다. 폭식을 하고, 하루 종일 휴대폰을 하고, 누워 있고... 그게 나에게 행복인 줄 알았다. 행복이라는 가면을 쓴 고통이었지만 이미 병들대로 병든 나에게는 그 도파민만이 유일한 행복의 순간이었다.


살아보니 타인의 인정도, 나를 좀먹는 쾌락도 행복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 행복의 기준은 없다. 행복에 기준이 있으면 그 기준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건 곧 불행의 기준이 된다.


나는 어떤 기준도 없이 다가오는 행복에 저항하지 않고 두 팔 벌려 행복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행복은 좇는다고 오지 않는다. 행복이 내 곁에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보고 싶던 사람과의 연락, 맛있고 건강한 한 끼, 산뜻하게 내딛는 산책, 귓가에 퍼지는 기분 좋은 음악소리... 일상의 모든 것이 행복한 일 투성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쉽게 지나치며 살아간다.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이 내 안에 있는 행복을 그저 알아차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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