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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먹의 쌀과 두 그릇의 죽

by 산예

한 주먹 쌀로 만든 죽


그날은 산꼭대기에서의 저녁거리가 걱정이었다. 20km 이상을 이미 걸은 상태라 몸은 고단했지만 며칠 전부터 식량이 거의 바닥난 걸 알고 있었기에 오늘 저녁이 '배부른 축제'가 될 리 없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가방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건 그저 한 줌의 쌀.


평소에야 하루 세끼가 기본이지만, 트레킹 중 점심은 에너지바나 간식으로 때우기 일쑤라 두 끼 반 정도면 충분했다. 가끔씩은, 예정된 것보다 조금 더 혹은 덜 먹게 되는 날도 있었다. 그렇기에 항상 여유분의 음식을 좀 더 챙기는 편인데 그때는 며칠전날의 폭식 덕분에 우리의 음식 계획이 살짝 뒤틀렸고, 이제 남은 식량으로는 고작 이 한 줌의 쌀로 저녁과 내일 아침을 해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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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짓고 밥은 다음날 아침 식사로 남겨두고 냄비에 붙은 밥으로 숭늉을 만들어 때운 그 날의 저녁



육포 찌꺼기 몇 조각을 반찬 삼아 밥을 만들었다. 밥을 지었지만 2인이 먹기엔 턱 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대부분은 내일 아침을 위해 따로 보관했고, 나머지는 최대한 양을 늘리기 위해 죽을 끓였다. 죽이라기보다 거의 쌀 냄새나는 물에 가까웠다. 이윽고 해가 지고, 광활한 산꼭대기엔 영하에 가까운 추위가 찾아왔다. 손을 덜덜 떨며 죽을 한 모금, 두 모금 들이켰지만, 물로 채운 배는 금세 허기를 잊게 하진 못했다. 꼬르륵, 꼬르륵.... 배에서 울리는 소리가 산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밤이 깊어가자, 텐트 안 대화는 자연스럽게 먹을거리 이야기로 흘러갔다.


"따끈한 삼겹살... 오우... 그 맛 생각나지?"


"난 갓 튀겨낸 프렌치프라이가 간절해. 눅눅한 건 안돼. 바삭한 거 말이야. 산에서 내려가면 맥도널드에서 프렌치프라이 꼭 먹어야 해. 약속해. 알았지? 프렌치프라이다."


프렌치프라이... 프렌치프라이... 나는 마치 주문이라도 외우듯 프렌치프라이를 반복하며, 머릿속에 완벽한 그 바삭함을 상상했다. 그날 밤, 광활한 자연 속에 지어진 텐트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오락은 허기진 배를 달래며 그리운 음식을 떠올리고 꿈꾸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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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캠핑존. JMT는 허가증이 있는 하이커에 한하여 트레일과 물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어디서든 캠핑이 가능했다. 이 날은 우리를 포함해 세개의 텐트가 이 곳에 있었다.



다음날 음식을 픽업하러 갔던 렌치에서 우리는 허덕였던 전날밤을 생각하며 준비한 음식 외에 하이커박스에서 음식을 좀 더 보충하고 산행을 이어갔지만,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프렌치프라이를 입에 넣는 날은 10일이 훨씬 더 지나서야 찾아왔다. 콩한쪽도 나눠먹어야 한다는 속담처럼 흰 죽을 나눠 먹으며 서로를 토닥였던 그날의 순간은 백패킹음식 중 단연 가장 깊게 기억에 남는 한 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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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는 졌지만 감성만은 풍족했던 그 날 해질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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