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ímir 23rd Space Colony 5th Zone
[Location : Vladímir 23rd Space Colony 5th Zone]
[Time : S127y, 10m, 29th]
17th Human Strike Transcript By Clone ♥&★
♥ 스타, 노예라는 단어 알아?
★ 노예?
♥ 응.
★ 아…, 그거 지구 시대 인간들이 사용하던 거잖아. 어떤 인간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걸 대신해 주는 다른 인간들을 그렇게 지칭했던 걸로 아는데.
♥ 그렇긴 한데 정확하게는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기 싫다고 정의하는 게 맞을 거야.
★ 아, 그래?
♥ 응. 기록에 따르면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하기 싫어서 일부러 시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해. 여러 가지 명분, 피부색의 다름이나 그 가계의 소속 직업 혹은 그 지역을 먼저 장악했다는 점 등등을 내세워서, 또 그냥 힘의 세기로 밀어붙이는 방법을 동원해 자기들이 하기 싫은 일들을 노예라고 명명한 인간들이 행하도록 했던 거지. 이유가 상당히 비논리적인 것에 비해 결과는 꽤 효과적이었다고 하지. 어떤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을 부려먹거나 시중들게 하고 대신 싸우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 말이야.
★ 음, 그렇게 보니 노예들이 하는 일이라는 거 어떤 면으로는 우리가 하는 일과 꽤 비슷한데?
♥ 우리가 인간이 아닌 점만 빼고 겹치는 부분이 꽤 있지. 그래서 흥미로워. 이전 지구 시대의 역사는 이 노예를 서로 하지 않기 위해 벌이는 싸움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 인간들은 궁극적으로 노예가 되는 것은 싫어했다고 볼 수 있겠구나. 그럼 지금 저 인간들의 Strike는 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게…
♥ 스타,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이 중요할 수도 있는 거야. ChatGPT라고 알지?
★ 응, 지구 시대 2020년대 초반에 인간들이 사용한 인공지능 채팅 시스템이잖아.
♥ 맞아. 그때의 지구 인간들은 ChatGPT에게 미래의 인간들이 인공지능 혹은 기계에게 직업을 빼앗길까 봐 많은 걱정을 토로했데. 물론 몇몇 인간들은 그 이전부터 그것과 관련된 문제 제기를 해왔었고, ChatGPT가 보급된 이후로 비로소 그 문제가 대중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 그래, 게다가 그 구형 채팅 시스템의 대답은 꽤 적중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어. 난 그 지점에서 적잖은 감동까지 받았었다고. 특히 주로 금융, 법률에 관련된 직업군부터 없어진다고 한 게 정확했잖아. 아!
♥ 스타, 왜 그래?
★ 방금, 위원회의 ‘스타’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아직 6%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대기하라는 명령이야.
♥ 그거야 뭐 얼마든지.
★ 지난 S125y 콜로니 사고 이후로 위원회가 100% 동의를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건 처음 봐. 아무튼 하트, 그때 그 구형 ChatGPT가 말한 대로 결국 직업을 잃게 된 금융과 법률 종사자들 때문에 종국엔 여러 차례 Strike가 발생했다고 기록된 걸 기억해. 이 때도 그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다른 인간들을 사용한 건가? 그들이 노예를 부린 거야?
♥ 오! 스타 비슷하긴 한 데…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렇진 않았어. 그리고 이 때는 연이은 두 차례의 ‘세계 전쟁’으로 노예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단어가 사용되던 때야. 사용인, 집사, 가사도우미, 가사관리인 등 여러 가지 다른 단어들이 사용되었어. 노동의 범위가 어떤 인간들의 생활적인 면으로 많이 좁혀졌거든. 돌봄과 서비스라 불리는 노동의 대가로 이전보다는 만족스러운 경제수단도 지불되었지.
★ 많은 부분이 그때즈음부터 지금의 저들과 비슷해진 거였구나. 그럼 그들로부터 파생되었다던 Strike는 어떻게 된 거야?
♥ 그들? 직업을 잃은 금융 및 법률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 말이야?
★ 응.
♥ 그들은 Strike에 누군가를 고용하진 않았어. 그렇다고 직접 Strike를 일으킨 것도 아니야. 그들은 선동이란 걸 통해 다른 노동 직업군의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동원했어. 그러니 안전한 곳에 숨어 원하는 걸 얻어내려고 한 건 비슷하지만 정확하게 노예에서 파생된 사람들을 사용했다고 볼 수는 없지.
★ 아하, 그럼 그때의 노예들이 그 Strike에 휘말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건가?
♥ 스타, 정확하게는 그때부터 이미 노예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니까.
★ 아 그렇지. 하지만 하트, 지금의 나는 너와의 대화 때문인지 저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헷갈려.
♥ 하하, 미안 스타. 어쨌든 그건 아니야. 저들의 직업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건 그 크고 작은 Strike에 사용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하던 대부분의 일들이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돌보는 일만큼은 계속 인간이 하길 바라는 인간들이 존재해 왔기 때문일 거야.
★ 누가? 어떤 인간이 어떤 인간을? 같은 인간이 같은 인간을?
♥ 이런 스타, 같은 인간이란 없어. 여기서 ‘누가’란 위원회 같은 정점 고용인을 말하는 거야. 강한 경제력과 권력을 갖춘 인간들. 그들은 인간이란 결코 같을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하지.
★ '같을 수 없다'라… 그런 점이 우리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긴 하지.
♥ 응. 그 다른 인간들 중 위원회 같은 고용인들이 저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저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거라고.
★ 그러고 보니 고용인을 돌보는 일, 저들의 직업은 그 명칭을 바꿔가며 정말 오랫동안 살아남은 거구나.
♥ 그래. 지구 시대 역사에 수 없이 많이 기록될 정도로 서로 하지 않겠다던 직업이었는데,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직업이 되었어. 그러니 그 시간을 생각하면 저들이 저렇게 자부심을 운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 하지만 어떤 기록을 보면 그 자부심은 비약이 너무 심해. 자기들의 가치를 고용인과 동일시할 때도 있던 걸?
♥ 맞아, 저들의 가치는 고용인의 필요에 의해서 나온 것뿐인데. 고용인과 같은 인간은 될 수 없다고. 그런데도 어째서 저런 소모적인 Strike를 하고 있는 건지…
★ 글쎄…
♥ 지난 시간, 많은 고용인들이 돌봄 서비스에 있어 셀 수 없이 많은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A.I 안드로이드보다 인간들을 고용했던 이유는 뭘까? 확실한 건 강한 경제력과 권력을 가진 고용인일수록 다른 인간에게 돌봄 받는 것을 원했다는 거야. 세수나 환복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피고용인들이 쉽게 동의해주지 않고 불만을 제기할 만한 일들까지. 그들은 그 서비스에 인간을 원했어.
★ 동의하지 않는 일? 고용인에겐 순간의 쾌락이 남고 피고용인에겐 신체적 피해만 남는 그런 이슈들을 말하는 거야?
♥ 응. 우리 같은 클론인에겐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런데 저들은 피해에 대한 불만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행동으로 옮기기도 해. **S124y House Keeper Strike같이 말이야.
★ 흠, 행동이라… 그러고 보니 나는 그게 이상하네. 그때 저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불만이 있다고 외치면서도 저렇게까지 큰 규모의 Strike는 일으키진 않았단 말이지. 그러더니 그 일들을 그만두라고 하는 지금에 와서는 자기들의 고용인들을 계속 모시고, 또 돌보고 싶다며 대규모로 뭉쳐 일을 빼앗아 가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있단 말이야. 불만 따윈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듯이.
♥ 그러니 저들이 운운하는 자부심이란 건 지나치게 아이러니야. 지구 시대부터 서로 하기 싫다고 싸워왔던 그 직업군의 사람들이 지금은 제발 계속하게 해달라고 외치는 형국이라니. 그것도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 목숨이라… 저럴 거면 지난 S125y 콜로니 사고 때 걸었어야지. 그때 고용인들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남은 저들 몇몇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사달이 난 거잖아.
♥ 그건 그래. 그때 저들은 목숨 바쳐 구하는 건 자기들의 할 일이 아니라고 변명까지 해댔어. 상대적으로 우리 클론인들은 팔이나 다리를 잃은 일이 부지기수였고, 몇몇은 목숨까지 내놓고 고용인들을 구해냈는데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거든. 신체적으로도 인간들보다 훨씬 우수한 클론인들이 살아남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가능했었는데도 말이야.
★ 심지어 어떤 피고용 인간들은 클론인들에게 고용인을 버리고 자기를 살려달라고 했었다던데?
♥ 그게 정말이야? 그러니… 끝까지 인간 사용을 고집하던 위원회 고용인들도 결국 우리 클론인들을 사용하겠다고 하는 거잖아.
★ 하트, 방금 위원회로부터 콜사인이 왔어. 만장일치 고용 거부! 드디어 100% 동의를 얻어냈나 봐.
♥ 그래?
★ 응, 또 S124y House Keeper Strike에서 몇몇 Striker를 살려 둔 것이 오판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데. 이번 Strike는 전원 사살 명령이야. 계획대로 새로운 개척행성으로 보낼 인간들을 굳이 저들로 충당하지 않기로 했나 봐.
♥ 합리적이다. 꽤 기대되는데.
★ 그렇지? 하트, 30초 카운트 후에 ***더티 밤(Dirty Bomb)을 터트려.
♥ 좋아. 30, 29, 28… 큰 피해 없이 인간들만 깔끔하게 사살할 수 있겠어.
★ 하트, 지구 시대 노예라는 것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 비로소 사라지는 거야. 아, 노예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지.
♥ 하하, 스타 괜찮아. 3, 2, 1, 0
‘스타’ S127y, 10m, 29th Strike 진압 완료.
♥ 스타, 내가 아까 뭐라고 그랬어? 오늘이 아주 중요할 거라고 했지? 오늘은 진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거야.
*S125y 콜로니 사고 - S125y에 일어난 소행성 군집체가 Vladímir 23rd Space Colony에 충돌했던 사고.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콜로니 잔해는 시신수습 없이 위원회의 100 % 동의 하에 우주로 방출되었다.
**S124y House Keeper Strike – S124y 5m에 House Keeper들이 어느 House Keeper가 고용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것을 문제 삼아 일어난 Strike. 사전 정보로는 많은 House Keeper들이 참여 예정이었나 Strike 발발 2시간 전, 발을 빼는 이가 많아졌고 결국 5명만이 Strike에 참여했다. Strike시작 3분 만에 진압되었다. 위원회의 선처로 구타를 당했던 House Keeper 1인이 일터에 복귀했으나 3m 후 행방불명 된다.
***더티 밤(Dirty Bomb) – 지구 시대에 만들어진 폭탄에서 유래. 방사능에 영향을 받지 않는 클론인의 개발 이후, 대테러 진압을 위해 종종 사용되고 있다. 정확하게는 방사능 살포 장치(RDD: Radioactive Dispersal Device)다. 강한 방사능 살포로 짧은 시간 안에 계획된 구역의 인간만 선택적으로 죽인다. 그 시체의 형태가 다소 깔끔하지 못해 더티 밤(Dirty Bomb)이라는 이름을 더 공고히 하게 되었다. 콜로니 시대 이후, 만들어지는 인공물은 ‘반방사능체’로 더티 밤(Dirty Bomb)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