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 (1)

황여사와 임할머니

by 옥광



황여사는 4인실이었던 걸 2인실로 개조한 이곳 병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전 일터보다 시설이 더 넓었기 때문이다. 비좁은 병실은 간병인으로 작업하기엔 최악의 환경이다.

간병인은 가만히 앉아서 일하지 않는다. 환자를 옮기고 뒤집고 움직여줘야 한다. 더불어 여기저기 약도 타다 줘야 하고 환자 먹을 거, 나 먹을 것도 챙겨야 하니 기민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니 새로 출근한 병원의 여유 있는 병실은 최고의 이직 조건이었다. 게다가 병실 입구에는 간병인용 개인 사물함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요즘 같은 때에 자기 이름이 붙어 있는 사물함을 가질 수 있다니. 황여사는 이 점도 마음에 쏙 들었다. 더 이상 퇴근할 때마다 없는 눈치를 봐 가며 환자가 사용하지도 않는 수납장 안 물건들 사이에서 자신의 가방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된다.


[다음은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이틀 전, 경기도 소향시 외곽에 소재한 한 종합병원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를 보도했었죠. 피해자 A 씨는 발견 당시 이미 의식이 없었는데요. 이 A 씨가 오늘 새벽 5시 32분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에 경찰은…]


“아휴, 엄마는 아침부터 뭘 저런 걸 봐. 딴 거 봐, 딴 거.”


췌장암 4기 판정을 받고 입원한 임할머니의 40대 딸은 임할머니가 보던 뉴스를 끊고 다른 채널을 탭 했다. 하필이면 저런 뉴스를, 재미없게. 임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자신의 소변통부터 확인해 보라 독촉했고 느릿느릿 일어난 딸은 소변통 대신 개인 스크린 채널부터 바꿨다.

바꾼 예능 채널에선 일찌감치 결혼한 지인들의 자식의 자식 같은 애들이 춤추며 놀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 단정한 간병인 조끼로 환복 후 등장한 황여사님이 더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어머, 여사님 오셨어요?”


황여사는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다. 항상 약속한 출근시간보다 20분에서 30분 일찍 온다.


“응, 자네는? 자네도 밤 새 잘 잤는가?”

“네, 엄마도 잘 주무시고 저도 뭐… 그럭저럭…”


딸이 하품 한 번 안 하고 대답했다. 웬일로 딸의 얼굴이 진짜 그럭저럭 잘 잔 얼굴이다.

황여사는 능숙하게 임할머니의 눅진한 기저귀 안, 소변줄을 교체하며 보호자 침대 쪽을 슬쩍 봤다. 딸내미는 옆 보호자 침대를 자신에게 배정된 보호자 침대와 나란히 붙이고 잠을 청했나 보다. 폭이 두배로 넓어진 데다 푹신한 침구까지 제대로 깔려 있으니 웬만한 호텔 침대보다 훨씬 아늑해 보였다.


‘워메, 자는 참 속도 좋네, 좋아. 나같으믄 저리 못 할 낀데.’


임할머니의 옆자리는 어제부터 비어 있었다. 덕분에 딸은 편안하게 팔, 다리를 뻗어내고 거침없이 코를 골았을 것이다. 밤새 딸의 코골이에 시달렸을 임할머니 눈은 아침인 데도 가물가물하다.


“흐아암, 황여사님 드디어 HANA가 방송에 복귀했어요.” 임할머니가 하품을 참으려 콧구멍을 벌룸거리며 말했다.

“아이고 진짜? 그람 그 꽃사슴 같은 아 다시 볼 수 있는 거네요?”

“그럼, 그럼. 황여사님 나 너무 좋다.” 임할머니의 눈에서 잠이 달아나고 웃음꽃이 피었다.

“복귀? 왜? HANA가 언제 안 나왔었어? 무슨 일 있었데?” 딸이 침구를 정리해 수납장에 넣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물어봤다.

“아니 너는 어떻게 나보다도 모르니? 누가 HANA를 데리고 몰폰에 합성했던 거 몰라?”

“으이고… 추잡시러라….” 몰폰이라는 소리에 황여사는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뭐? HANA 몰카 포르노? 그거야 잘 알지, 아주 난리도 아니었잖아. 그런데 그게 어디 한 두 번도 아니고… 그렇다고 걔가 무슨 상처라도 받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고 있어.”

“왜 말이 안 돼? 너는, 너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니? 하물며 HANA는 어린애잖아! 그 어린애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꽁!]


“뭐야, 엄마 왜 때려? 아니 그리고 어떻게 거기다 나를 갖다 붙여? 나 엄마 딸이야!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


딸이 수납장 문을 세게 닫으며 역정을 냈다. 그래봤자 소음방지장치로 원하는 큰소리는 안 났지만… 아침부터 적당히 요란스러운 게 평상시와 다름이 없구나.

황여사는 아웅다웅하는 임할머니와 딸 사이로 요령껏 끼어들어 붙어 있던 옆자리 보호자 침대를 슬쩍 밀어냈다. 침대 바퀴가 도로록 굴러가더니 아무도 없는 환자 침대에 작은 소리로 통 부딪혔다. 황여사는 얼마 전까지 그 침대에 누워 있던 미홍이 생각이 났다.


‘갸도 참… 갸가 저 꽃사슴 같은 거랑 많이 닮았었는디.’


저 꽃사슴 같은 거랑 많이 닮았던 미홍이는 항상 자고 있었다. 그리고 미홍이의 보호자는 그녀를 돌보는데 참 열심이었다.






“미홍아 봐, 봐. 좀 있다가 TV에 HANA가 나올 거야. HANA가 이번에 신곡을 발매했는데 말이야.”


재훈은 어제, 그리고 그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어김없이 말없는 미홍이에게 열심히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정성이다. 정성이 지극이야. 사랑이 꽃피우네, 활짝 꽃 피워.”

“아… 여사님 오셨어요?”


황여사는 지금껏 재훈 같은 환자 보호자를 본 적이 없었다.


“아이고야, 어떻게 매일 이라노. 씻겨줘, 뒤집어줘, 말려줘, 먹여… 아 이건 못 허지. 암튼 대단타, 대단해.”

“여사님, 자꾸 왜 그러세요. 다 제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예요. 미홍이한테는 저밖에 없으니까요.” 재훈은 황여사가 칭찬할 때마다 항상 쑥스러워했다.

“또, 또 더운밥 먹고 쉰소리해 싼다. 세상천지 자네 같은 남자가 어딨어? 나는 못 봤다, 나는 못 봤어!”

“에이, 여사님이 저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하시잖아요.”

“나랑 자네랑 같나? 나는 먹고살라고 하는 프로고. 자네는 정말 그 뭐냐, 박애주의적으로다가 열정적 사랑으로 해내는 그런 거. 라부잖아, 라부!”


임할머니의 딸도 처음엔 열심이었을 거다. 효녀도 그런 효녀가 없었겠지. 문제는… 그게 며칠 안 간다는 거다. 임할머니는 ‘AI 무인 케어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에서 굳이 사람 간병인을 쓰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딸은 병원에서 출퇴근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딸이 없는 낮타임이었다. 임할머니는 이 시간 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스트레스를 밤이 되면 딸에게 퍼부었다.


젊은 시절, 간병인으로 일했던 황여사는 병원들이 ‘AI 무인 케어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자 다른 일터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간 곳이 제약 회사에 패키지 상자를 납품하는, 모든 공정을 ‘무인 로봇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없었던 어느 영세한 하청업체의 공장이었다.

황여사는 QR기기 사용을 못 하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종이로 된 사용설명서를 상자 안에 접지해 넣는 일을 했는데 그곳은 닭장이었다. 작업장의 천장 높이는 다른 공정의 로봇 높이에 맞춰져 있어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황여사인데도 앉은 채 허리를 곧게 펴면 정수리가 천장에 꿍 닿았다. 다행히 이전 공정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려니 머리 찧을 틈은 없없고 곧 손이 로봇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적응을 하고 나니 작업장을 청소하는 ‘청소 로봇 사용료’를 급여에서 얼마씩 떼 가는 것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황여사의 작업장은 작업자가 스스로 청소를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딱 그 맘 때, 다시 간병인 일을 제안받았다. 황여사는 덜컥 겁이 났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사람 간병인을 고용하겠다니. 얼마나 까탈스러울까.


“저희 엄마, 췌장암이세요”

“아… 그럼 몇 기실랑가요?”

“3긴가? 아니다, 4기예요. 그래서 크게 신경 쓰실 건 없으세요. 일 하다가 힘드시면 적당히 ‘케어 로봇’ 부르셔도 되고요.”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다. 암 발생률은 꾸준히 높아졌고 암 완치율은 그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높아졌다. 항암 기간 동안 거동이 불편하지 않게 눈치껏 돕기만 하면 된다. 딸은 출근하는 순간 없는 사람 되었고 황여사는 이런 감감무소식에 익숙했다.

허리도 맘껏 필수 있고 두 팔도 양껏 휘두를 수 있으며 급여에서 쓸데없이 떼가는 것도 없었다. 자연스레 시야가 넓어졌다. 이내 옆자리 미홍에게 관심이 쏠렸다. 어느 밤, 6살 손녀가 유치원에서 들었다며 이야기해 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나오는 예쁜 공주님 같았다. 그녀는 “미홍아~”라고 속삭이면 “네~”하고 짜증 하나 없이 잠에서 깰 것 같은 미소진 얼굴로 항상 잠만 잤다.


황여사는 미홍이의 컨디션을 한결같이 유지시켜 주는 보호자이자 간병인 재훈이 너무 신기했다. 재훈은 ‘AI 간병’을 사양하고 스스로 모든 걸 해내고 있는데, 임할머니의 딸은 사람 간병인을 고집하는 자신의 엄마도 저 옆침대 환자분 간병인도 둘 다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말이야, 나가 쪼까 개인적 호기심으로다가 궁금해서 그란디… 자네는 회사가 없는가?”

“네?”

“회사, 회사 말이여, 일 하러 가는 데가 없냐고. 백수야? 집은? 설마… 집은 있지?”

“아! 아니요. 백수 아니고요 집도 있습니다.”

“아니 그럼, 뭘 해서 여 병원비에, 생활비에 먹고사는 겨? 얼굴은 허애 가지고 키만 억수로 크고 삐쩍 마른 것이 어디 험한 일 할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디?”


재훈은 갑자기 나타난 황여사와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불편했다. 갑자기 자기 신상에 대해 변명하듯 대답해야 하는 게 싫었다. 그러나 한 번 말이 트인 황여사는 재훈을 쉽게 놔주질 않았다.


“아니야? 백수가 아니야? 그럼 뭐야? 가진 돈이 많아?”

“그게 돈이 없진 않은데… 저기 그런데,”


황여사는 듣고 싶은 대답을 들으면 바로 자기 할 말만 이어 말했다.


“오! 그렇구나. 그러니 이렇게 밤낮으로 여서 사는구나. 그래서 무슨 일 해? 일을 하긴 하는겨?”

“제가 그런 건 말씀드리가…”

“왜? 무슨 뭐 좀 챙피한 일을 하는가? 아니믄 법적으로다 뭐가 껄쩍스러운게 있는 일을 하는가?”

“아니요!” 재훈이 발끈했다.

“아… 그렇구먼. 괜찮아, 괜찮아. 요새 같은 시상에 어디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딨 는가.”


황여사는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재훈은 달랐다. ‘이러면 내가 뭐가 되는가.’


“그런 거 아니고요. 저는… Artificial Intelligent programmer…”

“뭐? 아토실 인텔리프로?”

“아니… Artificial Intelli… 아휴, 아닙니다. 아마 말씀드려도 잘 모르실 거예요.” 차라리 뭐가 되는 게 낫지.

“뭐를? 내가 뭐를 모를 거란 겨?” 황여사는 어이없게 억울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재훈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성심성의껏 설명한다 한들 황여사는 절대 이해 못 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 이와 다른 견해를 가진 황여사와의 대화가 매우 피곤했다.


“아휴, 여사님. 인공 지능 프로그래머래요.” 자는 줄 알았던 임할머니가 갑자기 작은 소리로 끼어들었다. 잘못 들었으면 흔한 잠꼬대로 들렸을지도.

“아이고, 저희 땜시 깨셨어요?”

“여사님, 저 보호자분 직업이 AI 프로그래머래요. Artificial Intelligent이 인공 지능이란 뜻이고요.”

“아, 아? 오… 그 짝이 발음을 너무 굴렸네. 나도 인공 지능은 좀 알지. 내가 그것 땜시…”

“여사님… 황여사님 나 물 한 잔만 부탁합시다.”


재훈을 거든 임할머니는 목이 말랐는지 황여사에게 물을 부탁했다. 임할머니가 먹는 물은 따로 챙겨 와야 한다. 황여사는 서둘러 나갔고 임할머니는 천천히 눈을 다시 감았다.


“고맙습니다.” 재훈이 감사 인사를 건넸다. 눈을 감고 있는 임할머니는 대답이 없었고 재훈은 뻘쭘해져서 말을 더 보탰다. “저… 할머님? 고맙습니다. 좀 아시는 걸 보니 할머님께서도 이쪽 계통에서 일하셨나 봐요?”


“이… 쪽… 계통?” 임할머니가 눈알을 몇 번 굴리고선 천천히 눈을 떴다. “흠… 나는 그냥 영어만 알아들었을 뿐인데?”

“아… 네… 그, 그렇죠. 그럼 영어를? 영문학을 전공하셨을까요?”

“뭐요?” 임할머니가 자세를 고쳐 잡고 바르게 앉아 재훈을 쳐다봤다. 갑자기 척추가 길어진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눈길에 재훈은 괜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봐요. 양미홍 씨 보호자님. 그 정도 영어를 알아듣는데 왜 영문학까지 필요한가요?”

재훈은 입술을 몇 번 움찔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임여사님은 아무 말도 못 하는 재훈을 미동도 없이 계속 내려다봤다. 황여사가 물을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임할머니는 그 물로 입가만 적시고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팽팽했던 척추엔 긴장감이 풀렸고 다시 편하게 침대에 기대어 황여사에게 본인의 스크린을 가리켰다. 황여사는 능숙하게 임할머니의 스크린을 탭 했다. 곧 HANA가 나온다는 자막이 흐르고 있다. 재훈은 이때다 싶어 사생활 보호 스크린을 둘렀다.


비로소 조용해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미홍의 숨소리와 심전도계의 규칙적인 ‘삐’ 소리만 들린다. 재훈은 이 간결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좋다. 이제야 미홍이와 둘이서만 스크린 속 HANA에 집중할 수 있었다.


HANA는 4인조 여아이돌 그룹 ‘포켓걸즈’의 멤버로 ‘넷’에서만 활동하는 디지털 기반 '인공지능 가상인간’이다. 데뷔 초, 포켓걸즈의 다른 세 멤버들도 넷상에서 활동할 ‘아바타’를 만들어 HANA와 활동하려 했으나 인공 지능 HANA의 의견을 적극 반영, 현실 인간 멤버들은 아바타 없이 현실만 아우르는 활동을 공략했다.


HANA의 차별성은 바로 부각됐다. HANA는 음악방송을 하면서 동시에 ‘아인스타그램 라방’을 할 수 있었다. HANA의 라이브 무대는 언제나 완벽했고 어느 누구도 이 완벽함을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리얼하고 호불호 없이 예쁘면서도 친근한 외모와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부담스럽지 않게 할 줄 아는 센스 때문이다. 팬들과의 1대 1 DM에도 적극적이었다. 당연히 DM을 원하는 팬들의 숫자는 문제 되지 않았다. 밤시간대 시간제한이 있었지만 이것도 하나가 프로모션 한 관련 제품 PPL영수증만 증빙하면 바로 해결되었다.


효과는 폭발적이었다. HANA의 대중적 인지도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HANA의 아인스타그램 팔로워수는 4억 8천여 명, 세계에서 가장 높은 팔로워수를 자랑한다. 제2의 HANA를 꿈꾸는 다른 가상인간들도 종종 등장했지만 아직까진 HANA의 반에 반만큼도 성공한 이는 없었다. HANA는 유일무이 자신의 이름 그대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정말 대단했다.


그런 HANA가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한 첫 솔로곡 ‘Who’s real?’을 발표했다.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고 이와 더불어 HANA가 지난 시즌 작사, 작곡에 참여했던 포켓걸즈의 ‘Your lovely face♥’까지 역주행. HANA의 솔로 기간 동안 잠시 휴식을 가지기로 한 다른 포켓걸즈 멤버까지 컴백 무대에 소환하고야 말았다.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요즘 가장 핫 한, 화제의 중심 싱어송라이터 HANA의 ‘Who’s real?’이 몸 담고 있는 그룹 ‘포켓걸즈’의 역주행 곡 ‘lovely Your face♥’와 1,2위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미홍아, HANA야. 예쁘지? 이 노래들이 다 HANA가 만든 거야. 역시 우리 HANA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었어, 그치?”


재훈은 미홍이 누워 있는 침대의 각도를 조절했다. 덕분에 잠자는 얼굴의 미홍은 눈만 뜬다면 스크린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자세로 앉아있다. 그뿐이었다. 10여 년 전 의사도 오늘 아침에 진단한 의사도 미홍이는 볼 수도 듣지도 못하는 그저 숨만 쉬는 PVS, 지속적 식물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재훈은 개의치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미홍의 곁을 지켰다. 재훈은 기다렸다.


[오늘 이 자리에 포켓 걸즈가… 왔습니다!] 포켓이라는 단어만 나왔는데도 팬들의 함성은 폭발한다.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안녕하세요, 포켓걸즈입니다.]


사생활 스크린을 뚫고 똑같은 함성이 임할머니 쪽에서도 들려왔다. 옆의 두 어른들도 HANA를 좋아한다. 열심히 치는 그들의 박수 소리가 재훈의 귀를 때렸다. 역시 1인실이었을 때가 좋았는데.


[와… 이 함성소리. 정말 대단합니다, 포켓걸즈.]

[고맙습니다!!]

[포켓걸즈 대답해 주세요. 이번 역주행,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죠?]


MC의 질문에 포켓걸즈의 맏언니 시아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저희 네 번째 멤버 'HANA'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이렇게 금방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아, 지금 세 분은 잠시 휴식 중이었죠? 그러고 보니… 우리 시아씨, 부쩍 건강해 보이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밤마다 야식 좀 즐기시나 봐요. 치킨? 피자?] 사람들이 웃는다.

[네… 아무래도…] 시아가 머뭇거리는 사이 MC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앗! 여러분, 지금 화면을 봐주십시오.]


갑자기 폭죽이 터졌다. 화학적 폭죽은 아니고 폭죽 홀로그램이다. 무대 위로는 계산된 홀로그램 연기가 자욱하게 메워졌다. 실체감을 위한 4D 화약냄새도 동시에 풍겼다. 몇 초 후, 연기가 조심스레 사라지자 듣고 싶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HANA입니다.]


난리가 났다. 사라진 연기 속에서 거짓말처럼 HANA가 서 있었다. HANA 또한 정교한 홀로그램이지만 현장에 있는 관객들, MC까지 그 누구도 아무런 이질감 없이 HANA를 바라보았다. 두 눈에 똑똑히 보이는 진짜 HANA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여러분!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Who’s real?’의 공식적인 첫 무대가 펼쳐질 참이다. HANA 등장과 동시에 HANA가 입고 나온 모든 의상 및 구두, 액세서리들이 바로 품절되었다는 알람이 스크린에 방울방울 울렸다. 터치 한 번만 하면 되는 손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구매에 실패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그들을 위한 웨이팅 시스템도 매우 친절하고 간편했다.


“재수 없어!” 시아가 속삭였다.

“언니! 왜 그래요?” 포켓 걸즈의 막내 음율은 누가 시아의 입모양이라도 읽어냈을 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 저 재수 없는 MC새끼 방금 나 살쪘다고 뭐라고 한 거지?”

“언니, 누가 듣는다니까요.” 음율은 한껏 올라간 입꼬리를 떨어트리지 않고 입술을 최소한만 움직여 시아를 말렸다.

“야! 솔직히 안 그러냐? 우리 지금 저거 들러리 스러 온 거잖아. 진짜 데뷔하고 간만에 쉬는 건데 이게 뭐냐고.”

“그만해, 언니. 솔직히 HANA, 쟤 때문에 우리가 꿀 빠는 거잖아.” 또 다른 막내 아이싱은 시아의 열폭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적당히 묻어만 가도 된다. 그러나… 그래서,


“자, 그럼 포켓걸즈 여러분은 다음 무대 준비해 주시고요. 먼저 HANA의…”

“잠깐만요!” 아이싱이 MC의 말을 끊었다.

“잠깐만요. 지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평소 아이싱은 과묵했다. 자기 파트가 아니면 춤도 대충 추는 아이돌로도 유명했다. 그런 아이싱이 먼저 나서서 할 말이 있다고 하니 MC는 순간 당황했고 아이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홍 언니 기억나? 나 다영이야. 언니, 지금 병원에서 나 보고 있는 거지? 내가 꼬꼬마 아기 연습생일 때 언니가 많이 챙겨준 거 나는 잊지 못해. 이번에 쉬는 동안 언니 생각이 많이 났어.”

“아, 아이싱?” MC가 아이싱의 말을 끊어보려 했지만 아이싱은 더 큰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아니 외쳤다.

“언니, 미홍 언니!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 꼭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해! 언니!!” 아련한 표정까지 보여주던 아이싱은 어금니를 물고 애써 웃는 표정을 유지하는 다른 멤버들에 의해 끌려가다시피 무대에서 내려갔다.


“다영. 포켓 걸즈 아이싱의 본명이 다영이었죠. 병원에 있는 미홍 언니, 우리 귀요미 아이싱을 위해서라도 꼭 건강을 되찾기 바랍니다. 방송 보시면 안부 전해주시구요. 그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HANA의 Who’s real?”


시아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아이싱의 등짝을 세게 후드려 쳤다. “아…” 아이싱은 아픈데 참는 건지 아니면 진짜 아프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알 수 없는 건조한 소리로 화답했다. 방금 전 미홍이란 언니를 찾을 때 나타났던 눈가의 촉촉함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너 뭐야! 도대체 미홍이가 누군데 보고 싶다고 난리야?” 열 오른 시아가 다그쳤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야.” 돌아오는 저 건조한 대답.

“뭐? 누가? 누가 시킨 건데?!” 시아는 더 흥분했지만 아이싱은 심드렁했다.

“아… 몰라. 궁금하면 매니저 오빠한테 물어봐.”

“뭐?! 왜? 야!”


음율은 아무 문제없는 척 잔뜩 올라간 입꼬리를 떨어트리지 않고 투닥거리는 두 사람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저 두 사람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 시아 언니는 한 번 열받으면 주변 사람들이 탈탈 털릴 때까지 지랄하는데. 매니저 오빠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강민이 오빠는 도대체 어딜 간 거야?






___ “재훈이 형, 나 형이 시키는 데로 다 했잖아.”

“그래 알아. 강민아,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하잖아.”

___ “뭐? 고마워? 형 잘 들어. 진짜 이제 나한테 뭘 더 부탁하면 안 돼. 나 이러는 거 사장한테 걸리면 짤려, 아니 죽어! 사장님 성격 형이 제일 잘 알잖아!”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지. 강민아 우리 얼굴 본 지도 오래다. 내가 밥 한 번 살 테니까 형 있는 데로 놀러 오라니까.”


강민이는 뭐가 무서운지 영상통화도 화면은 끄고 통화한다. 옛날의 강민이는 안 그랬는데… 재훈은 예전 같지 않은 강민을 보며 새삼 지나버린 시간을 느꼈다. 미홍이는 이렇게 변한 게 없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___ “재훈이 형, 몇 번을 말해. 내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니까.”

“그래, 강민아 알았어. 그래, 애들 케어 잘하고… 형님 아니 사장님한테는 내가 따로 연락할게….”

___ “형 말로만 그러지 말고. 어! 잠깐만, 시아랑 아이싱 쟤네 왜 저래? 형, 나 가봐야겠다.”

“알았어. 지금 HANA 무대도 끝나간다. 빨리 가 봐. 응, 그래. 또 연락할게.”

___ “아니야, 형! 연락하지 마! 절대 하지 마! 나 끊는다.”


통화를 끝낸 재훈이 미홍의 얼굴을 봤다. 오늘은 오랜만에 웃는 것 같다. 아이싱이 미홍이란 이름을 방송에서 불러줘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당하게 홀로 선 HANA 때문일 것이다.


나의 HANA. 아름다운, 미홍이의 분신.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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