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 (2)

양미홍과 주재훈

by 옥광






황여사는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아니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했다. 어제 컴백한 HANA가 몹시 걱정됐기 때문이다. ‘DATA 사용료’ 연체로 집에선 스크린을 볼 수가 없으니 빨리 임할머니를 만나고 싶었다.


“어머! 황여사님 오늘은 진짜 일찍 오셨네요?”

“응응, 따님도 일찍 일어났는가베.”


딸은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거의 1시간 가까이 일찍 출근한 황여사를 보고 흠칫 놀랬지만 이런 건 근무 외 수당에 포함 안 하기로 처음부터 합의했으니 따로 클레임 걸진 않기로 했다.


“황여사님, 아시죠? 오늘 택배 좀 많이 올 거예요. 엄마가 또 입지도 쓰지도 못하는 HANA PPL 제품을 다 사들였거든요. 잘 좀 챙겨주세요. 어제는 특히 더 흥분한 거 같애요. 아휴, 그놈의 약쟁이.”

“워메~~ 걱정 마셔요. 알뜰하게 챙겨둘텐께.”


잘하면… 황여사는 임할머니가 구입한 HANA 프로모션 PPL 상품 중 몇 개는 보너스로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딸! 약쟁이라니? 함부로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딸은 못마땅한 얼굴로 엄마를 한 번 쓱 보고선 병실을 나섰다. 엄마와 HANA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니 그냥 일찍 출근하는 게 낫지 싶었다.


[바로 어제였죠. 가상인간이란 호칭이 무색한 여러분의 HANA가 솔로곡 ‘Who’s real?’로 컴백하자마자 N뮤직 1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SNS에는 ‘HANA DRUG’이란 제목의 영상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는데요. HANA가 자신의 허벅지에 약물 패치를 직접 부착하는 영상이었습니다. 당연히 딥페이크 기술을 정교하게 이용한 페이크 영상이었겠지만 HANA를 좋아하는 팬, 특히 어린 10대 팬들에게는 그 충격이 실로 어마어마했죠.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어제 HANA가 속한 ‘포켓 걸즈’의…]


“저게 저게 어디 10대뿐인가… 나이 한참 먹은 내도 놀랐구만! 할머니도 심히 놀라셨죠잉?” 황여사는 눈썹을 한껏 모아 산모양으로 만들어 임할머니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렇죠. 그래도 황여사님, 오셨으면 소변줄부터 봐줘야죠?” 아직 정식으로 일 할 시간 전이라 황여사는 잠시 방심했다. 정신 차리고 소변줄도 얼른얼른 교체하고 소변통도 제깍제깍 점검하는데 뉴스에 황여사에게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사실, 이 이야기가 제일 궁금했다.


[… 아이싱이 보고 싶다고 말했던 그분 기억하십니까? 미홍 언니, 양미홍 씨.] 드디어 궁금증이 풀리려나보다. 어제 방송 이후, 혹시나 해서 미홍의 보호자 재훈에게 무얼 물어봤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 이 분이 바로 HANA 약물 동영상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제 퍼진 문제의 동영상은 HANA의 영상이 아니라 실제 미홍 언니라고 언급된, 양미홍 씨 본인이 나오는 영상이었던 겁니다. 양미홍 씨는 현재 코마상태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하는데요. 휴… 참 다행이죠. HANA는 이 영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말입니다. 현재 많은 시민단체들은 급하게 발표했던 HANA를 겨냥한 비난성명을 철회하고 빠르게 사과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 HANA의 소속사 ‘BigM’에서는…]


“엥? 저게 뭔 소리당가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황여사와 임할머니는 동시에 옆자리를 쳐다봤다.


“워메… 어제 아이싱이가 말한 미홍 언니가 우리가 아는 저 양미홍이가 맞는가 베요.”

“… 그런가 봐요. 어쩐지 얼굴이 비슷하다 생각이 들긴 들었는데…”


[… 양미홍 씨는 13년 전, 현 HANA의 소속사 ‘BigM’의 전신 ‘JM Crew’의 연습생이었으며 HANA초기 모델의 레퍼런스로 본인의 초상권을 넘긴 바 있다고 합니다. 이후…]


뉴스에선 미홍이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었다. 13년 전 아역배우 아니 그보다 훨씬 전 아기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청소년기 음주와 흡연 이슈, 욕설 논란까지. 탈탈 털면 없던 이야기도 튀어나온다더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쏟아져 나온다. 아무도 진실과 거짓 따위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데뷔도 못 한 연습생이 십수 년이 지나 지금 가장 ‘핫’한 사람이 되었다. 진심으로 미홍을 깨워보고 싶은 두 사람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더니 산 자도 말이 없을 수 있구나. 아오 갑갑해라.


“그나저나 요상헌디요… 하필 요런 때 신랑이 안 뵈네?”

“신… 랑…?”

“아휴, 그 정도면 뭐 신랑이죠.”

“여사님, 그래도 그렇게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저 양미홍 씨 평판이…” 임할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이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만 그려요, 말만.”

“그나저나 참 다행이에요.” 임할머니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에? 뭐가 다행이당가요?”

“HANA말이에요. HANA는 절대 그럴 리가 없지만 약에 취한 얼굴에 그런 주사기가 같은 게 보이고 하니까... 내가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어제 잠도 잘 못 잤다니까요. 화질이 안 좋았던 게 의심스럽긴 했어도 아무튼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암요… HANA가 그런 게 가당키나 하남요. 그나저나 저짝 미홍이는 어떡한데요. 온갖 추잡시런 소문이 다 도는디. 팔자 좋게 잠만 잘 때가 아닌디 어떡한다요.”


임할머니는 미홍이의 얼굴을 흘낏 봤다. 확실히 닮긴 닮았네. 대충 들어보니 가족도 하나 없이 보호자라고 붙어 있는 건 그 A.I 프로그래머가 유일한 것 같던데. 어차피 대신 고통받을 주변 사람도 별로 없고, 당사자인 본인도 아무것도 모를 테니 이 정도면 그녀는 상당히 운이 좋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다 10년도 더 된 일들일 텐데, 여기서 더 큰 문제야 있겠어요. 저대로 깨어날 일도 없을 테고.”


황여사는 임할머니의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홍이를 빤히 쳐다봤다. 짠했다. 자꾸만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려는데 미홍이 너머 ‘메디컬 스크린’이 눈에 띄었다.


“어머, 여사님. 그거 그렇게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니에요!”


황여사가 급하게 미홍의 ‘메디컬 스크린’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임할머니가 말렸지만 황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홍의 ‘메디컬 스크린’ 확인했다. 곧 요란한 소리가 났다.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재훈은 병실건물 옥상에서 통화 중이다. 병원은 셀 수 없이 많은 CC카메라가 구석구석 촬영하고 있어 굳이 사람이 없는 곳은 한 두 개쯤 작동하지 않아도 알아도 모른 척 가볍게 무시한다. 그게 여기 병원동 옥상이다. 그래서 그런가 재훈은 스크린 너머 대철에게 병실에서와 달리 고레고레 소리를 질러댔다.


“대철이 형 정말 이럴 거야?”

___ “뭐? 야! 네가 양심이 있으면 이럴 수가 없지! 내가 인마, 네가 벌인 일 수습하느라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얼마나 시달리는지 알아?”

“아니 형, 진짜 형이 하지 말라는 거 이제 안 한다고. 약속한다니까!”


BigM의 수장, 대철은 기가 막혔다. 어제오늘 회사는 비상이었다. 한창 ‘Your lovely face♥’ 활동할 때 HANA의 포르노 영상이 큰 이슈가 된 후, 그놈의 사회적 도리 때문에 HANA도 다른 멤버들과 함께 잠시 휴식기를 가져야만 했다. 물론 경제적인 타격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자고로 비즈니스란 멀리 봐야 하는 법. 방심할 순 없다. HANA는 A.I프로토콜을 돌려 솔로곡 작업을 했고, 그렇게 열 보 정진을 위한 한 보 후퇴의 시간을 가진 후 적절한 타이밍에 솔로로 컴백한 것이다. 그런데 약물 동영상이라니. 원래대로라면 지난번처럼 해명하고 입장 발표문 쓰는데 꽤나 골치 꽤나 아팠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싱을 시켜 미홍이란 약을 미리 쳐 놓으니 사람들이 알아서 미홍이 신상을 털어댔고 곧바로 동영상의 실체가 밝혀졌으며 비난의 화살은 미홍이에게, 동정 어린 따뜻한 시선은 HANA에게 향했다. 결국 이번 영상으로 결과적으로 큰 손해를 보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익을 본 것도 아니다. 쓸데없이 요란스러워졌을 뿐이다.


___ “약속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강민이 놈이랑 벌인 짓을 내가 모를 줄 아냐, 이 새꺄! 돈을 그렇게 퍼다 줬으면 사람 새끼가 양심이 있어야지! 양미홍이 병원비는 여기까지야.”

“아, 형. 미홍이는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정말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___ “네가 돈 아니면 뭔데? 됐어! 너 이 새끼, 너는 그냥 아무것도 하면 안 돼! 그냥 없는 것처럼 살라고!”


[핑!]


재훈이 먼저 통화를 끊어 버렸다. 대철이 형도 예전 같지 않다. 말이 안 통한다. 내가 정말 돈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하는 걸까? 미홍이의 메디컬 라인 해킹시도가 어제 하룻밤만에 세 차례나 있었다. 물론 재훈이 다 방어했다. ‘미홍이는 진짜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 대철이 형이 그냥 옛날처럼 친절하면 좋겠다.’ 재훈은 어깨가 축 쳐진 채 병원동 복도의 코너를 돌았다.


“아니 어디서 뭐 하고 온 거여?” 황여사는 눈앞에 재훈이 나타나자 다짜고짜 손목부터 덥석 잡았다. 평소에도 약간 돌출형인 그녀의 두 눈은 더 커져서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작은 메추리알 같았다.

“네? 무슨… 일?” 손목을 붙들린 재훈이 조심스레 황여사의 손을 떼내려 했지만 쉽지 않다. 황여사의 아귀힘이 보통 이상이었다.

“여사님 이거, 이건 놓고 말씀하셔야…” 질질 끌려가는 재훈은 본인이 걷고 싶은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걸어야만 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미홍이 자네 마누라 말이여.” 앞장서 걷는 황여사가 뒤도 안 돌아보고 말한다.

“저 마누라라고 하기에는… 저희가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라서요.”

“아효! 거 호칭이 뭐가 그리 중헌가? 지금 자네 마누라, 아니 양미홍 씨가 난리가 났당께!! 코드블루여, 코드블루!”


코드 블루! 황여사가 재훈의 손목을 놓쳤다. 재훈은 황여사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전력으로 달렸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미홍아!’






미홍을 향해 달리는 재훈은 13년 전 그날을 생각했다. 진행하던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라 성공의 기쁨에 취할 것에 기대감이 충만한 날이었다. 그리고 미홍이가 긴 잠에 빠진 날이기도 하다. 17살이었나, 18살이었나. 미홍이는 어렸고 정말 예쁘고 그리고 씩씩했다.


“주재훈, 주재훈 왜 일만 해? 나 심심해!”


미홍은 재훈보다 11살이 어렸지만 절대 오빠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언제나 이름을 불렀다.


“야, 주재훈! 안 들려? 나 심심하다고!”


천재 A.I프로그래머로 착실히 경력을 쌓아온 재훈은 얼마 없는 지인 중 자신을 가장 잘 챙겨 주는 대철형 회사의 의뢰를 받아 아이돌 아바타를 준비 중이었다. 현재 연습생들을 레퍼런스로 작업 중이었고 그 애들 중 가장 예쁜 미홍이의 아바타를 첫 번째로 진행했다. 많은 회사 식구들도 미홍이 가장 예쁘다고 칭찬한다. 그런 그녀와 몰래 연애 중이다. 재훈은 어깨가 으쓱했다.


“이제 거의 막바지야. 조금만 기다려 줘.”


아바타는 본캐 아이돌 성격을 설정값으로 인공지능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잘만 진행된다면 넷상에서 아바타만으로 24시간 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인건비 절약, 가성비. 그 핵심에 재훈이 있었다. 생각만큼 쓸만한 개발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거의 모든 작업을 재훈 혼자 진행한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만큼 재훈의 부담감은 컸지만 그래도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었다.


“아~ 아.”


미홍이 재훈의 오른쪽 뺨 위로 자신의 발바닥을 비벼댄다. 미홍이는 다리가 참 길기도 하지.


“미홍아, 이러면 안 된다고. 이거 너한테도 중요한 일이잖아.”


재훈은 미홍과 인사를 나눈 첫날 섹스를 했다. 그에게는 여자와 하는 첫 섹스였다. 놀랐다. 충분히 가늠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기대이상, 너무 좋았다. 다만 미성년자인 미홍이 재훈 이전에 많은 남자를 만난 것이 재훈의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큼지막한 고등어가시까진 아니고 자잘한 꽁치가시 정도 거슬린다. 침만 잘 삼키면 꿀꺽 넘어갈 것 같은데… 물론 미홍은 이 가시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 재훈은 쫌스럽게 굴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주재훈, 너는 왜 이렇게 일만 하냐?” 아침부터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던 미홍은 겉옷 따위 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부러 의도하진 않았으나 매우 이로운 일이었다.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을 캡처하기에 매우 적합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가슴과 유두의 움직임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휘청이며 돌아다니는 걸 보니 아침에 준 ‘케타민 패치’를 거의 다 붙였나 보다.

“으음~ 미홍아, 오늘 보컬 트레이닝 있다고 하지 않았니?”

하얀 맨 살의 긴 허벅지로 재훈의 무릎 위로 올라타려던 미홍이 ‘보컬 트레이닝’이란 소리에 토라진 듯 일어섰다. 패치를 붙인 미홍이 평소보다 예민하다. 삐졌다.


“왜? 왜 그래 미홍아?”

일에 집중해야 한다던 재훈이 드디어 고개를 돌려 미홍을 살핀다. 오늘은 평소보다 눈도 많이 풀려 있다.

“보컬은 지랄… 놀리냐? 안 돼. 안된다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그, 그래도… 그래도 해야지.”

“왜?”

“왜라니? 그, 그거야… 너의 하루 일과이기도 하고 또… 너는 가수가 될 거니까 노래는 당연히…”

“순진하기는… 저 초현실적인 범생이적 마인드란… 그냥 적당히, 적당히 하면 되는 거야. 너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려고 드냐?”

“그게 무슨 소리야, 미홍아?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그래 당연히, 당! 연! 히! 적당히 살아야지! 내 얼굴을 봐. 이런 얼굴로 태어났으면 얼굴 덕 보면서 적당히 살아야 되는 거야. 왜?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걔네랑 똑같이 노력하면 그게 반칙인 거야. 내가 세상 좋은 걸 다 가져가야겠냐? 그러면 안 되지. 상도덕에 어긋난다고. 그러니까 열심히 사는 건 못생긴 애들이나 하라고 해.”

“미, 미홍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야, 주재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뭘 억지로 하지 마. 되는 데로 순리대로 살자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로 일장 연설을 늘어놓더니 혀를 쑥 내밀고 턱 빠지도록 입을 크게 벌리더니 입천장에 케타민 패치를 붙인다. 그건 좀 위험하다고 말려봤지만 안 듣는다. 제 멋대로다. 미홍이는 항상 뭔가 열심히 하는 건 힘들고 억지스러워서 싫다고 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가질 순 없다고도 했다. 그건 말이 안 된다고. 물론 미홍 자신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 예쁜 얼굴로 고생스러운 일을 하길 바라는 사람이 주변에는 없었을 테니. 게다가 댄스 실력도 얼굴만큼 뛰어났으니 노래 정도는 가뿐하게 포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른 좋은 걸 가졌으니 이 정도는 덜 가져도 괜찮다는 이상한 자신감. 괜히 힘 빼지 말고 지금 노래실력에 만족하자. 그러나 이 모든 건 아직 미성숙한 어린 청소년의 개똥철학일 뿐이다. 재훈은 뭔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미홍아, 잘 봐, 봐. 네 얼굴로 노래까지 잘 부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재훈은 그동안 들여온 노력의 결실을 특별히 미홍에게만 먼저 공개하기로 했다. 미홍의 얼굴과 전신을 3D스캔해 모델링하고, 그녀의 댄스뿐 아니라 평소 생활 행동까지 이모션 캡처하여 움직임을 만들어낸 아바타. 이름은 미홍이 데뷔해서 사용할 예명 HANA라고 지었다. HANA에겐 재훈이 특별히 공들인 A.I가 탑재되어 있었고 미홍과의 일치율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미홍 모르게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 왔다. 재훈은 HANA를 위해 미홍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았다. 지루하다고, 재미없다고, 시시하다고, 그냥 무조건 싫다고 밖으로 돌았다. 설득이 쉽지 않아 고민되던 무렵, 대철 형이 팁을 줬다. 케타민 패치. 미홍은 마음껏 패치를 즐겼고 HANA는 원 없이 그녀를 학습했다. 평소 소속사에선 엄중히 단속하던 것을 재훈은 대가 없이 선뜻 제공해 주고 넓고 한적한 그의 사무실에서 맘껏 즐기게 해 주니 미홍은 자연스럽게 재훈과 어울렸다. 대철은 둘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잘 알고 있었고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무엇보다 아바타 개발이 우선이었다.


“뭐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너한테 제일 먼저 소개해 주는 거야. 아직 대철이 형한테도 안 보여줬다고.”


요즘 들어 패치만 던져 주고 미홍에겐 관심을 안 보이던 재훈이었다. 어쩐지 너무 일만 한다 했더니 미홍의 아바타를 거의 완성한 건가?


“HANA야 나와 볼래?” 재훈이 어색하도록 다정한 목소리로 HANA를 불렀다.

“오빠?” 미홍은 입도 뻥끗하지 않았는데 방 안에 미홍의 목소리가 울린다.


재훈의 홀로그램 모니터에 미홍이 나타났다. 아니 미홍과 똑 닮은 HANA.


“뭐, 오빠? 야! 주재훈 이게 뭐냐?”

“미홍아, 인사해. HANA야. 너랑 똑같이 생겼지?”

“뭐래? 너는 눈깔이 뼜냐? 지금 어디가 똑같다는 거야?”


아… 미세하게 다른가? 미홍보다 조금 더 혈색이 좋고 눈빛이 더 맑다. 디폴트값으로 노메이크업인 HANA의 피부는 미홍이가 화장 안 한 척 컨실러로 다크서클과 잡티를 가리고 하이라이트 터치를 했을 때만큼의 상태다. 눈동자가 커 보이기 위해 눈동자 주변, 흰자 위에 동그랗게 타투를 했던 미홍은 눈동자 경계선이 살짝 흐린데 반해 HANA는 그 경계선을 더 뚜렷이 하고 흰자가 더 밝으니 큰 눈이 더 자연스럽다. 평소 괄괄한 미홍이의 성격을 가려주기 위해 색조화장으로 일부러 만들어 냈던 두 뺨의 홍조가 HANA의 두 뺨엔 마치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가지고 있던 것처럼 복숭아빛으로 예쁘게 자리 잡혀 있다. 재훈은 다 똑같고 굳이 따지자면 이 정도 사소한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뭐? 사소? 사소하다고? 이게 사소하다고 지금? 너 말 다했냐? 이게 어떻게…”

“미홍아, 미홍아 진정해. 진정하고 잘 봐, 봐. 얼굴도, 골격도, 키도 걸음걸이도 목소리도 다 너랑 같아.”

“싫어!”

“미홍아, HANA는 너야.”


미홍은 기뻐해야만 했다. 자신의 단점을 보완한 완벽한 나를 만났다는 사실에 재훈에게 고마워해야만 했다. 그런데 저 멍청한 년!


“씨발! 이딴 게 어떻게 나야? 그냥 적당히 게임 아바타 같은 거나 만들라고 했더니 뭐 이딴 걸 만들었냐고! 내가 언제 나랑 똑같이, 이렇게 만들어도 된다고 했어? 왜 이렇게 만들었어? 그냥 나 대신 팬들이나 상대하고 PPL광고 찍는 땜빵용이라며?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만들었는데?”

“미홍아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봐. 이게 그렇게 흥분할 일은 아니야. HANA는 화면으로 보면 너랑 구분이 안 가. HANA가 너 대신 무대도 설 수 있고 조금만 더 보완하면 대신 인터뷰도 할 수 있다고. 이건 다 너한테 더 좋은 일이잖아. 우리 HANA가 너 대신…”

“뭐? 우리 HANA? 씨발. 왜 그것까지 대신하는데? 그래도 무대엔 내가 서야지, 인터뷰는 내가 해야지! 나는 뭔데?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한 건데? 누가 저걸 만들어도 된다고 한 건데?”


미홍이는 진짜 몰라서 저러는 건가?


“미홍아 너야. 네가 그런 거야, 미홍아. 계약서에 전부 동의한다고 사인했잖아. 네가 전부 좋다고 OK 한 일이잖아.”

“뭐?”


멍청한 년, 드디어 좀 조용해졌다. 가족 하나 없는 미성년자이니 대리인 없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행사하겠다며 ‘특별 청소년 권리 행사권’까지 받아와서 자기가 다 서명했다. 이렇게만 되면 자기는 더 많이 놀 수 있다고 신나 했다. 분명히 계약서를 읽어보는 걸 봤다. 그러니 다 자기가 하자고 한 거다.


“으앙, 오빠!”


멍청한 년이 갑자기 HANA를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다행히 HANA는 피했다. 물론 홀로그램이니 그대로 미홍의 손바닥에 닿는다 하더라도 맞을 일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움직임 학습이 잘 이루어진 A.I HANA였으니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피한 것이다. 역시! 재훈은 감탄했다.


“미홍아,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누워서 패치 좀 붙이고 한숨 자자.”


미홍이 HANA를 건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부터 대철이 형이 걱정하는 게 이거였다. 미홍의 정도를 넘어선 약물 남용. HANA의 운동 능력에 약에 취한 미홍의 휘청거림이 반영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 농담처럼 낄낄 거리며 내뱉던 말 “이러다 HANA 눈도 풀리는 거 아니냐?”. 그때마다 재훈은 대철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신이 잘 컨트롤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HANA의 A.I는 단순히 미홍의 행동을 복사하는 게 아니다. 재훈은 애정을 듬뿍 담아 HANA를 정성스레 교육시켜 왔다. HANA는 완벽하다!


“미홍아, 여기 눕자.”


재훈은 소파에 미홍을 눕히고 팔뚝에 붙어 있던 케타민 패치를 떼네고 허벅지 안 쪽 깊은 곳에 새 케타민 패치를 붙여주었다. 빨리 진정시키고 싶었다.


“잠깐 누워서 HANA가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들어 봐. 너도 연습만 열심히 하면 잘 부를 수 있어. HANA도 네 목소리로 연습한 거잖아. 춤을 추면서 불러도 음정 한 번 흔들리지 않아.”

“뭐? 춤? 아 놔, 미치, 미치겠네! 그거야 당연하지… 쟤는 사, 사람이 아니잖아…” 말하면 말할수록 점점 혀가 더 꼬이는 게 보였다. 완전히 눈을 감는 순간까지, 끝까지 웅얼거렸다.

미홍이 이윽고 조용해지자 그녀의 감은 눈을 향해 재훈이 속삭였다.

“미홍아, 그렇지 않아.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내가 얼마나, 얼마나 HANA를…”

“저… 재훈 오빠? 미홍 언니가 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건가요?”


홀로그램 속 미홍의 얼굴로 서 있는 HANA가 재훈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입술을 오물오물거린다. 누가 봐도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니야.” 재훈은 다정했다. 놀란 HANA를 위로해줘야 한다.

“그냥 사람이 미성숙하면 이해할 수 있는 폭도 좁거든. 그런 거야. HANA는 걱정할 거 없어.”

“… 그럼 다행이고요. 저 오빠가 좋아하는 노래 불러드릴 까요?”

“그럴래?”


미홍의 목소리, 아니 HANA의 저 목소리가 좋다. 재훈은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잠들었을 미홍의 젖가슴에 손을 올렸다. 반쯤 오므린 손바닥 안을 꽉 채우는 것이 기분이 좋다.


“악!”


갑자기 재훈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잠든 줄 알았던 미홍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재훈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및 금성구를 있는 힘껏 물고 있다. 비릿하게 핏물이 배어 나온다.


“아! 아! 놔! 그만하라고!”


재훈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괴성을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미홍은 며칠 굶은 짐승처럼 입에 문 고기를 놓지 않았다. 손바닥의 금성구에 이빨이 박혀 들어간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아! 입천장에 붙였던 케타민 패치! 약물 허용의 임계선을 넘었나 보다. 그러니까 작작 좀 하지! 이성을 완전히 잃은 것처럼 보인다. HANA가 걱정이다. 지금 보는 이 광경이 얼마나 무서울까? 아니나 다를까 HANA의 얼굴이 공포에 하얗게 질려있다.

예쁜 눈에 고인 눈물이 너무나 안타깝다.


“HANA야! 눈 가려!”


HANA가 긴 손가락을 모아 작은 어깨를 움츠리고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모든 상황은 방안에 설치된 렌즈로 입력되니 어떻게든 이 미친 미홍이를 떼 내야 한다.


“미홍아! 좀 놔 봐! 응? 제발! 제발 좀 놔 봐! 미홍아!”


재훈이 있는 힘껏 미홍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당겼다. 이 미친년을 어서 떼 내야 한다!


“미홍아 제발 떨어져! 놔! 미홍아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미홍아!


[퍽!]

[퍽! 퍽, 퍽, 퍼퍽!]


재훈의 살점과 함께 공중에 핏방울이 날렸다. 그 끝자락에 바닥에 널브러진 미홍이 있다. 테이블에 부딪쳤던 혹은 재훈이 때렸던 머리에선 선홍색의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빠르게 퍼졌다.


“뭐야? 미홍이 왜 울어? 읔!”

“혀, 형…”


대철이 형이 서 있다. 언제 들어온 걸까? 그나저나 HANA, 형은 아직 HANA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


“뭐, 뭐야? 얘도 미홍이야? 이 똘아이 같은 년은 왜 홀딱 벗고! 머리에 피는 또 왜!! 아니 그럼 저 미홍이는 누구야? 너 누구야?”

“저, 저는 HANA…”

“HANA야 그만, 오빠가 이야기할게. 혀, 형. 내가, 내가 다 잘 설명할게. 그러니까 먼저 나 좀 도와줘!”


그날 저녁, 어느 연예기획사의 유망주였던 한 연습생의 소식이 넷상에 퍼졌다. 약물과다로 인한 사고로 의식불명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재훈은 욱한 마음에 그냥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HANA가 반대했다. 그럴 경우 진행될 사체 부검 때문이었다. 역시 똑똑한 HANA. 대철과 재훈은 HANA의 계산에 따라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케타민 패치를 쓰러진 미홍의 맨 살에 더 붙였다. 평소 HANA를 위해 수집한 미홍이 동영상 중 약물 관련 영상까지 첨부하니 모두가 한 연습생의 불운한 사고에 공감했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 미홍아 잘 자, 영원히.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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