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 (3)

by 옥광






황여사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재훈이 달려왔다. 주 1회 ‘메디컬 케어 시스템’ 화면 속에서만 만나던 의사의 얼굴이 보인다. 그가 미홍의 침실 곁에 서 있다. 기어코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재훈은 마른침을 크게 삼켜 호흡을 진정시켰다. 물론 쉽지 않다. 바람과는 다르게 입술 주변 근육이 계속 떨리지만 그래도 잘 부여잡고 지금 일어난 일과 마주해야만 한다.


“미, 미, 미홍이는?”


의사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스크린을 체크 중이다. 13년이다. 단 하루도 이 13년을 불평한 적은 없었다. 항상 성실했다. 그러니 오늘은, 오늘은 제발…


“주… 재, 훈?”


응? 재훈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렸다. 누구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 침대 노친네들인가 하고 봤더니 임할머니의 침대엔 수면 시그널이 켜져 있고 말 많은 황여사는 이제야 병실로 들어서고 있다. 잘못 들었나?


“야… 주, 재훈?”

“어?!”


미, 미홍이 목소리였다. HANA를 닮은 목소리가 재훈의 이름을 부른다.


“이게 무슨…?”

“아, 주재훈 님. 저희가 잠시 설명을 드리자면…”

“그러니까 어떻게?”

“저희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지금 양미홍 환자님의 ‘바이오 리코딩’을 분석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간 저희와 재훈 님이 들인 노력이 오늘에야 빛을 맺나 봅니다.”


살짝 비껴선 의사의 팔꿈치 너머로 재훈을 향해 고개를 돌린 미홍이 보인다. 하루도 빠짐없이 봐왔던 저 얼굴이 몹시 어색하다. 항상 일방적으로 재훈만 쳐다봐 왔는데 지금은 서로 바라보고 있다. 힘겹게 올라붙은 눈커플 아래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반짝이는 연갈색 눈동자를 13년 만에 보고 있다.


“주… 재훈, 너 거기서 뭐 하냐?”


미홍이가, 미홍이가 깨어났다.






임할머니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수면모드의 스위치는 켜 놓았지만 사운드를 차단시키지 않았다. 옆 침대 양미홍 씨의 보호자에게 들려주는 의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황여사는 HANA의 PPL 관련 패키지 택배를 정리하라고 내보냈다.


“양미홍 씨는 지금 진정제 투여 후 정상 수면 상태입니다. 현재 뉴런 사인이 4.3% 내외로 불규칙적인 점만 제외하면 다른 바이탈 사인은 모두 양호하네요.”

“아까 미홍이가 자꾸 배고프다고 중얼거리는 것 같던데…”

“그건 나노 EDG 결과를 보고 나서 다시 상의드리겠습니다. 아이고, 보호자님 얼굴 펴세요. 물론 의식이 일시적으로 돌아온 게 아닌지 걱정이 많으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만 보여지는 결과가 꽤 안정적입니다. 저희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쓸 테니 이제 한시름 놓으셔도 됩니다. 기뻐할 일이라고요.”


지난밤, HANA가 이야기해 준 일이 진짜 일어났다. 역시 HANA는 옳다.


임할머니는 HANA의 ‘슈퍼 VIP 팬 딥블랙 멤버십’ 회원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딥블랙은 아니었고 또 딥블랙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딥블랙 멤버가 되려면 먼저 VIP 멤버십 자격을 갖춰야 하고 그러려면 HANA 관련 PPL 상품 구입 액수가 상위 5%인 고객이 되어야 한다. 시작은 심심풀이였다. 18살로 설정되어 있는 화면 속 A.I 사람 HANA는 78세 오래 산 이의 눈에도 충분한 호기심이 생길 만큼 어딘가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의 어린 딸아이 같았다. 처음엔 그뿐이었다. 그저 그런 예쁘고 어린 딸아이가 제5개발도상국을 위한 모금 활동을 한다 하길래 아주 조금 거드는 차원에서 PPL관련 행사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조금’이란 상대적인 것으로 임할머니 입장에선 ‘적음’이었으나 HANA 입장에선 주의 깊게 볼만한 ‘큼’이었다.


어느 무료한 오후, HANA가 임할머니의 개인 계정으로 감사의 말을 전해왔다. 임할머니가 대주주로 있는 몇 개 회사의 투자 관련 승인을 막 내렸고 원하던 승인을 얻기 위해 뻔질나게 연락해 오던 임원들의 감사하다는 몇 마디 말들을 끝으로 정적이 흐르던 참이었다. 예의상 시간을 내주었던 임할머니는 어린 HANA와 가진 이 잠깐의 대화로 몇 년 만에 진심에서 터져 나오는 자신의 웃음소리를 들어볼 수 있었고 너무 웃으면 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누군가와 속을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런 거였던가! 자신도 모를 내적 흥분이 맴도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얼마 안 가 VIP 멤버가 되었고, 다음 PPL이벤트에서는 3% 고객으로 슈퍼 VIP 멤버가 되었다. 여기서부터 일사천리였다. 슈퍼 VIP멤버 중에서 1% 구입 액수를 찍으니 블랙 멤버십이 주어졌고, 이 액수를 3년간 유지하니 HANA가 먼저 딥블랙 멤버십 회원이 되는 것에 관해 문의해 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매우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현 사회에 참여하는 기여도와 거기에 따른 최소 자산보유액 및 다른 몇 가지 궁금점들을 질문한다. 이때 HANA가 임할머니의 암 가능성을 제기했다. 기본적인 바이오 정보만 공유해 줬는데도 이를 분석해 되물어온 것이다.


매일 보는 늙은 어미의 작은 두통, 사소한 소화불량은 당연히 외면하는 바쁜 딸 대신 HANA를 벗 삼아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췌장암 4기. HANA가 옳았다. 과거에는 이 병명에 꽤 심각했을 수 있었겠으나 현재는 정밀한 레이저 치료와 화학치료로 얼마든지 완치가 가능하다. 화학치료의 부작용 통증도 여러 진통 패치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단지 4기인 만큼 치료하는 데 있어 수반되어야 할 장기적인 추적 관찰의 이유로 다소 장기적인 입원을 해야 한다는 점이 과거와 비슷하다. 물론 4기보다 더 늦게 발견되었을 경우 더 위험했을 것도 그대로다.


HANA와 이 모든 일정에 대해 수다를 나누니 잠시동안 집을 떠나 친구와 짧은 여행을 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결혼도 안 한 딸의 딸 같은, 손주 같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리도 즐거울 줄이야. 임할머니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기꺼이 ‘딥블랙’ 회원이 되었다.


병원 생활은 잠시 즐거웠다. 40넘은 딸내미가 A.I간병을 거부한다는 어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더니 눈치 없이 병원에서 함께 생활할 것을 선언할 때까지 말이다.


“너 아직도 안 나간 거야?”

“지금 나가도 안 늦어, 충분하다고. 나도 엄마 이럴 때 호텔 같은 여기서 같이 좀 쉬어 보려고 했더니만 꼭 이러더라. 안 맞아, 역시 엄마는 나랑 안 맞아.”


입원한 엄마 대신 회사의 업무를 맡게 된 딸은 피관리자들의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에 비해 관리자인 자신은 반드시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해야만 하는 이 구태의연한 사실이 큰 불만이었지만 엄마이기 이전에 대주주인 상사의 지시를 어길 순 없었다. 더군다나 잘 받던 A.I케어를 갑자기 거부하시니 이번엔 상사이기 이전에 엄마라서 또 신경 쓰인다.


“그런데 엄마 요 며칠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두웠던 거야?”

“내 얼굴이 뭐가 어두웠다고 그래? 그냥 치료가 지루했던 게지.”

“아닌데 보통 어두운 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바득바득 우겨서 2인실로 옮기려는 거야? 이 칠성급 호텔 버금가는 1인실을 두고?”

“권 이사, 너 늦을 거니? 안 가?”

“알았어. 갑니다, 가요.”


등 떠밀리듯 나서던 딸이 다시 돌아와 몇 마디를 더 보태려 돌아왔다.


“내가 말했지? 있다가 10시에 그분 올 거야. 엄마가 고용하겠다던 간병인 황남희 씨.”

“알아, 말했어.”

“엄마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 거야? 그분 제대로 된 보증인도 없던데 엄마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알아서 고용하겠다고 한 거야?”

“보증인… 있어.”

“뭐, 누군데? 누구야, 그 보증인이?”


딥블랙은 오롯이 HANA 혼자 관리하는 멤버들로 자신 외에 누가 멤버로 있는지 알 수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또 자신이 딥블랙이라고 발설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HANA와의 유대감을 증폭시켰다. 임할머니는 한 명뿐인 가족, 딸에게도 자신의 딥블랙 멤버십에 관해 함구했다.


“너는 말해도 몰라. 이제 그만 가라.”


임할머니가 반듯이 누워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대화를 안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수 분 후, 딸이 나갔는데도 쉽사리 눈이 떠지지 않았다. 사실 딸의 말대로 큰 고민, 아니 큰 걱정거리가 있긴 있었다. 아니 아직 그대로 있다. 바로 HANA의 동영상. 그것도 몸서리치게 불쾌하고 안 좋은.


임할머니는 ‘딥블랙’, 원하는 만큼 HANA와 24시간 언제든지 넷 공유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도 실제 그렇게 하는 것은 왠지 천박한 일인 듯하여 매번 HANA와 접속해 꼬치꼬치 캐 물어보진 않았다. 그러나 모르면 몰랐지 이렇게 알게 된 이상 이제껏 유지하던 거리를 두는 것이 버거웠다. 대화 속에서 얼핏 HANA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HANA는 아니라고 했지만 순간 반짝이는 눈가가 빨개진 코 끝 애써 웃어 보이려는 입꼬리 너머로 훌쩍이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 어린것이 거듭 괜찮다고 말해도 임할머니는 슬픔과 공포에 사무친 여린 속내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몹쓸 동영상이 임할머니가 아는 것만 해도 열일곱 개다. 그러니 파악 못한 동영상은 얼마나 더 많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HANA를 돕고 싶었지만 HANA는 자기 때문에 임할머니가 필요이상의 힘을 쓰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끝까지 상대방이 곤란해질까 배려하는 착하고 가여운 것. 그래도 한 번 더 HANA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도울 방법을 물으니 그 어여쁜 어린아이는 한참을 윗입술, 아래입술을 지근지근 깨물고선 대신 다른 부탁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별 것 아니었다. 평소 임할머니가 사람을 그리워하는 듯 염려되니 추천하는 사람 한 명을 A.I 간병 대신 사용하는 것이 어떨는지 물어온 것이다. 임할머니는 이 부탁 아래 감춰진 HANA의 다른 생각을 느꼈으나 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HANA의 몰라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까지 잘 알기 때문이다. 기꺼이 흔쾌한 마음을 숨기고 딱 HANA가 바라는 만큼의 건조함으로 허락했다.


“와따메~”


요란한 걸음 소리. 약속한 시간이 되기도 전에 황남희 씨가 들어왔다. 요란한 소리는 임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사뿐거렸다. 센스는 없지만 눈치는 있어 보였다.


“자세한 건 저희 권이사가 잘 설명해 줬을 거고 나는 편하게 황여사님이라 불러도 되겠죠?”

“워메~ 여사님이라뇨? 지를요? 아이고! 제가 여사여요? 세상에나 이렇게 출세를 다 해보네요.”

“황여사님, 계좌부터 확인해 보세요.”


계좌를 확인하는 황여사의 눈과 콧구멍이 차례로 휘둥그레지더니 마지막으로 입이 떡 벌어졌다. 제대로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그동안 시달려온 빚독촉을 끊어버릴 수도 있는 숫자들이 꽂혀 있다가 곧 사라졌다.


“계약금이에요.”

“어? 방금… 그런데 방금 돈이 그 이게…?”

“돈이 있다가 사라졌나요? 네 맞아요. 제가 먼저 액수는 보여드리고 바로 황여사님이 거래 중인 금융회사 몇 군데에 보냈습니다. 이제 그런 거래는 끝났을 거예요.”

“아… 그게 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으셨어도 제가 잘… 아니, 이런 건 어떻게 다 아셔가지고?”

“아, 어차피 그렇게 사용하실 것 아니었나요? 아니면 다른데 필요하셨을 까요? 제가 이 정도 알아본 건 이해 바랍니다. 전 제 주변인이 그런 거래 중인 게 싫거든요.”

“아… 아니 그게…”


황남희 씨는 벌어졌던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눈알을 굴렸다. 분명히 이 금액 그대로 이체 확정이 되었더라면… 아마 황남희, 황여사는 빚보다는 어쩌면…


임할머니는 지긋이 황여사를 바라보았다. 황여사는 모르겠지만 임할머니는 HANA의 귀띔으로 그녀가 큰 빚을 내가면서 HANA의 VIP 팬 멤버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흠’ 임할머니가 작은 목기침 소리를 내니 그제야 황여사의 동공에 초점이 잡힌다. 임할머니는 고갯짓으로 침대 옆, 창가에 놓인 고풍스러운 오동나무 테이블을 가리켰다. 황여사가 눈치껏 테이블로 다가가니 고급스러운 딥한 검은색 쇼퍼백 안에 HANA의 지난 시즌 PPL리미티드 백이 놓여 있었다. HANA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레이저 각인이 패턴화 되어 있어 황여사가 너무너무 갖고 싶어 했던 그 백이었다. 방금 전 빚 갚는데 쓰인 그 액수를 고스란히 다 써도 구하지 못했을 백인데. 황여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임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은인도 이런 은인이 없다.


“마음에는 드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네요.”

“아이고! 마음에 들다뿐이당가요. 이기이기 귀한 거를 이렇게 첫 만남에 워메나!”

“그보다… 저희 오늘 병실 옮길 거 에요. 아시죠?”

“그야 알다마다뿐이겄어요. 제가 뭐부터 하면 될까요? 뭐든 시켜만 주신다믄 제가 업고서라도 모시겠거만요.”


그날 임할머니는 칠성급 호텔 뺨치는 1인실을 두고 2인실 병실로 옮겼다. 듣던 대로다. HANA가 마음속 쓰라림을 숨기며 언급했던 양미홍이라는 꽤 예쁘장한 아가씨가 옆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 거슬리는 주재훈이라는 자도 보였다. 황여사는 시키지도 않는 인사를 하며 알아서 말을 걸었다.






“13년?”


미홍은 자신의 목소리가 어색했다. 목소리뿐 아니라 온 몸뚱이 구석구석이 어색했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광이 어색했다. 머리로는 내 것인데 쓰려니 남의 것 같았다.


“응. 미홍아, 벌써 그렇게 됐어. 오래됐지? 나도 많이 변했고.”

“아니, 너 원래 노안이었어. 그때도 나이보다 들어 보이더니 지금도 나이보다 들어 보여서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아. 네 얼굴은 언제쯤 네 나이를 찾냐?”


저 싸가지없는 년은 껍데기만 나이 들었을 뿐 알맹이는 그대로다. 너무 똑같은 알맹이 때문에 나이 든 껍데기마저 13년 전으로 돌아간 듯 착각하게 만든다. 재수 없어.


“야, 주재훈. 나 언제까지 기억상실이래?” 미홍이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누워 물어본다.

“응? 아 그거… 정확하게 기억상실은 아니고 오랫동안 쉬고 있던 뉴런들이 천천히 깨어나는 과정이래. 네가 모든 기억이 없는 건 아니고 그날 하루만 기억에 없는 거잖아. 메디컬 결과에 따르면 코마 후유증으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니까 조금 시간을 가지면 차차 회복될 거라고 하긴 하던데.”

“쳇, 말 어렵게 하는 거 진짜 안 변했네. 그래, 알았어.” 미홍이 걱정 없는 얼굴로 시큰둥하게 웃는 반면 재훈은 미간에 주름을 바짝 세우고 있다.

“그런데 미홍아, 너 정말 그날 기억은 안 나는 거야?”

“그렇다니까 왜?”

“혹시라도 그날 사고 때문에 그렇지. 메디컬 스캔에서 못 잡은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봐 걱정돼서.”

“넌 생긴 것도 그대 로고 하는 짓도 그대로다. 겁 많고 걱정 많고… 사고라… 나 과다패치였다면서?”

“어? 으, 응…”

미홍은 근심이 가득한 재훈의 얼굴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 엄청 비싸 보인다. 다 누구 돈이야?”


사실 미홍이가 걱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얼추 상황파악을 하고 나니 가장 먼저 든 게 돈 걱정이었다. 대충 결제상황을 검토해 보니 특별히 연체된 부분 없이 병원비는 원활하게 지불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13년 전 그때엔 곧 데뷔를 앞뒀던 터라 그나마 모아둔 돈도 흥청망청 죄다 써버렸었다. 그렇다고 미홍이 앞으로 대출이나 빚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재훈 재산도 고만고만할 텐데.


“대철 사장님이야?”

“뭐?”

“여기 병원비 말이야. 대철 사장님이냐고?”

“응, 그렇지. 형이 거의 지원해 주긴 했어. 그런데 너 형이 기억나?”

“진짜 왜 그래? 대철 사장님을 내가 왜 몰라. 내가 그날 기억이 없는 거지 바보가 된 건 아니잖니? 우리 좀 똑바로 하자.”

“그래, 그건 그렇지. 미, 미안.”

“엄청 잘 나간다더니 하찮은 연습생 책임을 10년 넘게 진 거야? 의리 있네. 지금은 회사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빅엠? 진짜 웃겨.” 미홍은 크게 웃어젖히고 말을 이었다. “아니 제이엠 크루도 구렸는데 빅엠도 구려. 그 사장님은 돈이 많아도 더 많아져도 일관되게 구리다. 안 그러냐?”

“…”


재훈은 대철이 형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했다. 꽤 오랫동안은 형의 도움이 컸지만 최근은 아니었다. 그러니 2인실로 옮겼지. 이 모든 건 HANA의 부탁 때문이었다. HANA는 미홍 언니가 이렇게 된 데에는 자신의 잘못이 큰 것 같다며 슬프게 울었고 잠든 미홍이의 곁을 잠시만 지켜 달라고 부탁했었다. 재훈은 HANA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고 또 미홍이는 알아서 금방 죽어줄 줄 알았다. 그래서 잠깐만 지키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오늘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재훈아, HANA라는 게 그러니까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인 거지?”


그날, HANA를 처음 본 대철이 형은 슬피 우는 HANA를 두고 저 말만 반복했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어쨌든 프로그램이냐는 확인만 거듭 해댔다. 형은 HANA가 자신이 원했던 결과물이 아닌 것에 크게 황당해했고 재훈은 그런 형을 진정시키고 이해시켜야만 했다. 하필 미홍이가 이 난리를 피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으로 HANA를 엎어버릴 까 무서웠다. 그러니 HANA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투자자인 형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만 한다.


“알았어, 그러니까 프로그램인 것은 맞고. ‘코어’는? 프로그래밍에서 ‘코어’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그 ‘코어’가 우리 제이엠 크루 이익 창출인데는 A.I여도 변함이 없다는 그 말인 거냐?”

“아니, 형 물론 ‘코어’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 그런데 HANA의 진가는 그게 아니라.”

“그래, 그게 아니면 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나는 그냥 저 애 ‘코어’가 제이엠 크루 이익 창출이 핵심인지만 말해 주면 돼.”

“하아, 형 '코어’는 정확하게는 제이엠 크루가 아니라 형 회사 코드 기준 이익 창출인 거야. 제이엠 크루는 그냥 단어이기 때문에 ‘코어’에 사용할 수 없는 거지. 왜냐면 이건.”

“그만! 됐다, 됐어.”

“아니, 형 되긴 뭐가 돼? 내가 다시 잘 설명해 줄게. HANA는 그저 그런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포스트 9세대 인공 지능을 기반으로 한…”

“에이에이에이, 그런 어려운 말은 하지 말라고 했지! 재훈아. 사람이 기준만 확실하고 프로그램은 ‘코어’만 확실하면 된 거야. 난 그거면 돼.” 대철 형이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혀엉?” 재훈은 형이 그나마 어느 정도는 이해한 것 같아 잠시 기뻤다.

대철은 그런 재훈의 등을 더 따뜻하게 토닥였다. “이 형이 널 완전히 믿는 거 잘 알지? 그러니까 일단 저 똑똑한 HANA라는 애 말대로 하자.”

“아, 미홍이 치우는 거… 죽이진 말고?”

“그래, 형 생각도 저 프로그램 말이 맞는 것 같거든.”

“형, 그냥 프로그램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대철이 형은 가장 좋은 병원 1인실에 미홍이를 입원시켜 줬고 재훈에게도 HANA의 부탁을 들어줄 겸 호텔 같은 그곳에서 잠시 숨이나 고르라며 같이 머물기를 권했다. 진정한 불행의 시작되었다.


“쟤가 HANA야?”

“어?”


재훈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동안 미홍이가 멋대로 스크린의 채널을 바꿔버렸다.


“쟤가 그 HANA냐고. 지금 대철이 사장님 돈줄.”


방송엔 미홍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HANA가 나왔고 뒤 이어 미홍이 관련 뉴스도 나왔다.


“지랄. ‘HANA의 초기 디자인 레퍼런스로 참고되었던 실제 사람의 실체.’ 저건 나고?”

“미홍아 저런 거 보지 마.”


재훈이 얼른 스크린의 채널을 바꾸려 했지만 미홍이가 먼저 채널고정에 락을 걸어놨다.


“세상 되게 좋아졌다. 이거 내 생체 전용으로 기기등록 변경해서 이제 네 걸로는 안 풀린다.”


화면에는 과거 HANA를 위해 몰래 찍어뒀던 13년 전 미홍이 영상들이 나오고 있었다. 같이 나와야 할 재훈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촬영 전에 미리 등록해 둔 인식 코드로 재훈은 트랜스퍼되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는 미홍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이상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저기… 손님이 온 거 같은디?” 스크린 통화 채널로 미홍이 깨기 전에는 뻔질나게 말을 걸더니 깨고 나선 오히려 조용해진 옆 간병인 황여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재훈이 무슨 손님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찰나 미홍이 먼저 반응했다.

“아, 미리 연락 주고 온다고 했었는데…”


반쯤 누워 있던 미홍이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았다.


“안녕하세요. 양미홍 씨 저는 ‘빅 엠’ 엔터의 최강민 실장입니다.”


사생활 보호 스크린이 열리니 재훈에게는 눈 길 한 번 안 주는 포켓 걸즈 매니저 강민이 예의 바르게 서 있었다. 그렇게 한 번만 놀러 오라고 할 때는 싫다고 하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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