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 (5)

다시 만난 세상

by 옥광



[저희 안색이 평소보다 좋지 않아 보일 것 같아 미리 사과드립니다. 어젯밤 제대로 자지 못했거든요.

여러분과 저 모두가 사랑하는 HANA는 18살 나이로 데뷔했고 현재도 쭉 18살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딥페이크를 이용한 HANA의 불법 영상물들이 종종 유통되어 많은 분들의 우려를 사 왔는데요. 지난밤에도 18살 미성년자 어린 HANA의 딥페이크 포르노 영상이 다크웹 커뮤니티에 불법 공개되었는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라고 합니다.

어제 적발된 이 영상은 지금까지의 것들과도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그 수위를 크게 넘어섰다고 하는데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영상 속에는 입에 담기도 힘든 불법 납치, 감금, 집단 강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제 하룻밤, 아니 지난 몇 시간 사이에 이 영상의 불법 유통에 사용된 추정 거래액도 이미 수십억 원대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에 각종 시민 단체들은 사이버 사법부에게 HANA를 위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법적 수단을 동원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자신을 걱정해 주는 팬들에게 눈물로 위로의 말을 전하던 HANA는 결국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이르면 오늘 저녁 전면 활동 중단을 공식 발표하겠다고…]

“워메~ 저 사단을 어떡하면 좋댜아.”

“아이고, 깜짝이야! 언제 오셨어요?”


HANA의 뉴스에 집중하던 미홍이 화들짝 놀랐다. 황여사가 기척도 없이 나타나 바로 귀 옆에서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임선생님은 수면휴식 중인가 보다. 주재훈은 또 안 보이고.


“많이 놀랬능가? 나가 일부러 놀래켜 줄라고 한 건 아닌디 호호호호호. 미안햐, 미안햐.”

“아니요, 뭐... 괜찮습니다. 어디 뭐 한 두 번도 놀란 것도 아니고. 하, 하, 하.” 미홍은 그러려니 이해하려는 체념의 마음으로 웃었다.

“내가 좀 그랴. 호호호호호, 어떻게 병원 생활은 좀 할 만 한가? 막 갑갑허고 그라제? 여가 좀 요새 같어서 드나드는 사람도 별로 없쟈네.”

하긴, 이 병원은 좀 요새 같다. 여기 병실 할머니, 아주머니 저 두 분과 주재훈, 그리고 지난번 방문한 빅엠 엔터 최강민 실장이 미홍이 깨어나고 나서 만난 사람 전부다. 아, 가끔 A.I케어 시스템에 접촉해 의사와 소통을 하기는 했지. 그녀를 취재해 보고자 접촉하려 했던 각종 채널들도 있었는데 모두 병원시스템이 차단시켰다. 유난히 하반신 다리 근육 회복이 더딘 미홍은 오히려 이런 고립이 편안했다. 흠, 비싼 병원 최고.

“네, 괜찮아요. 병원 시설도 좋고, 비싸게 받아가는 만큼 값을 하네요.”

“그랴? 그라믄 다행이고.” 간병인님은 그대로 미홍 곁에서 미홍이 보던 HANA 뉴스를 같이 봤다. 그나저나 아휴, 어린 꽃사슴 같은 우리 HANA가 걱정이고마잉. 그 더러분 영상 내용 봤는가? 흉하재? 그러니 당사자는 얼매나 속상할까? 아주 내 속이 다 문드러지네.”


땅이 푹푹 꺼져 들어간다. 황여사가 내뱉는 깊은 한숨 소리 때문이다. 나이보다 깊게 파인 그녀의 두 눈은 지난밤 잠을 설쳤는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그렁그렁해져 갔다. 그러니 궁금해졌다.


“저… 간병인님. HANA말이에요. 음… 아니 뭐 대충 아시겠지만 제가 그 사고 전에 저 HANA라는 애랑 약간 관련이 있다고 뉴스에도 나오고 하니까 그래서 다 아실 테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그 저의 아바타… 아니 A.I, 그러니까 제가… 간병인님도 다 듣긴 들은 건 맞죠? 그러니까…”

미홍은 자꾸 말 끝을 흐렸다. 세상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긴 잠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에겐 어제 같았던 10여 년 전 일들이 뉴스를 통해 특급 사건, ‘약물 중독 연습생’으로 만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곁을 지켜 줬다는 주재훈을 의식해서라도 보란 듯이 아무렇지 않은 척했었지만 사실은 의식이 점점 뚜렷해져 갈수록 당황스러움은 점점 커져갔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에 아무 스스럼이 없던 그녀였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그것이 맘대로 안 될 것 같았다. 이게 무서운 건지 싫은 건지 오히려 괜찮은 건지 어떤 감정인지 스스로도 분간이 안되어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어라? 뭔가 이상했다. 미홍이 스스로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그녀를 비난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뉴스채널들이 그녀의 사건을 치부로 여기고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기는 느낌이었다. 왜지? 이미 시간이 꽤 지나서? 어쨌거나 긴 시간을 버텨내고 살아나서? 미홍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니 궁금해서라도 자신과 관련된 뉴스를 열심히 찾아봤고 이와 연관된 HANA관련 이슈도 덩달아 열심히 보게 됐다. 이윽고, HANA와 관련된 최근 영상들이 사실은 HANA의 것이 아니라 ‘양미홍’이라는 ‘진짜 사람’의 영상이라서 천만다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했다. 언젠가 병원 밖으로 나설 것을 생각하면… 과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그냥 다행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나?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받아들이면, 그러면 되는 걸까?


“미홍씨 왜 그랴? 말하다 말고 갑자기 뚱해져서는. 혹시 어디가 안 좋은겨?”

“네? 그냥…”

HANA. 저 간병인님이 저렇게 관심 주는 것도 다 HANA 때문이다. 아니, 정말 이상해! 너무 이상하다고! HANA가 나오는 저 영상들은 어차피 진짜일 수가 없는데 도대체 왜들 저러는 거지?

“그러니까 저기, 간병인님. 제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HANA, 쟤가 진짜 사람이 아니고 아바타, 아 지금은 그런 게 아니라고 했지. 아바타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VR A.I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어쨌든 진짜 사람은 아니잖아요. 간병인님도 그걸 아시긴 아는 거죠? 쟤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거.”

“…”


궁금한 걸 물어보니 미홍은 속이 시원해졌다. 그런데 황여사와 미홍 사이에 있던 공기가 갑자기 굳어진다. 이번엔 황여사가 입을 꾹 다물고 미홍을 쳐다봤다. 황여사의 피곤에 붉혀졌던 눈의 핏기가 걷히고 흰자가 선명해진다. 푹 패인 두 눈 속 동공이 미홍을 똑바로 향하고 있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시선에 미홍은 적잖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눈치를 살폈다. 당당하다고 여겼던 질문이 삽시간에 괜한 짓거리가 된 것 같았다. 일렁이는 후회의 감정에 입을 오므린 미홍은 결국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백기를 들고 슬그머니 눈을 깔았다. 동시에 덮쳐온 침묵이 더 불편해졌을 때 드디어 황여사가 입을 열었다.


“그러는 자네는?”

“네?”

“자네는 어떻냐고? 우리 HANA가 자네 얼굴을 본 따서 만들어진 거람서. 그러니 자네는 어떻냐고 묻는 거잖여. 자네는 어찌 괜찮은가?”

“네?

“호호호호호, 아니 왜 자꾸 네네 거리기만 하는가?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그걸 묻는 거잖여. 설마 시방, 사람이 아니면 그래도 된다고 하는 건 아니제? 자네는 HANA가 사람이 아니면 뭐 같은디?”

“네… 네?”

물론 HANA의 딥페이크 영상이 매우 불쾌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HANA는 그냥 스크린 속 캐릭터 같은 거잖아. 그냥 남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진짜 사람처럼 생긴 가짜 사람. 아, 어차피 스크린 속에선 대부분의 진짜 사람들도 남이 시키는 대로 하긴 하지… HANA는 인공지능이라 스스로 생각해서 말한다고도 하니까 그냥 시켜서 하는 거랑은 다른가?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무계를 가지고 있는 물체는 아니니까… 아, 사람도 물체는 아니지. 아무튼 곧이 곧데로 믿어지진 않지만 생각도 하고 감정도 느낀다고는 하니까… 그럼, 뭐야? 무슨 귀신같은 거야? 아오 헷갈려.


“워메, 또 그라네? 몰래 뭐라도 먹은 사람 맹키로 입을 또 꾹 다무네. 진짜 어디가 안 좋은가? 어디 불편혀?”

“네? 아니,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요…”

아니 양미홍, 왜 저 할머니 같은 아줌마한테 쫄고 있는 거지?


“저기요, 간병인님!” 미홍이 목소리를 키웠다. “제, 제가 먼저 물어봤잖아요. 그러니까 간병인님이 먼저 대답해야죠!” 당당하게 나가자. “간병인님은 진짜 HANA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뭐예요?”


미홍이 짧고 굵게 한 번 더 물어봤다.


“… 그러니까 자네는 그게 중요혀?” 황여사는 목소리를 격앙시키며 낮게 깔기 시작했다.

“네?”

“자네는 그것이 중요허냐고. 어디 금수만도 못 헌 육시랄 놈이 저 어린것을 데리고 그런 더러분 거를 그따구로 막 만들어 내는디, 자네는 그것이 괜찮으냐고! 그런 것이여? 자네는 사람이 아니면 막 그렇게, 막 그래도 된다고 생각 허는 겨?”

“네? 아, 아니요. 그건 아니죠.”

“근데? 그것도 아니라믄서 사람인지 아닌지 그게 뭣이 중혀? 뭣이 중혀서 그것이 궁금혀?”

미홍이 자꾸 수세에 몰린다. 골치가 지끈 아파왔다. 흐름이 왜 이렇게만 흘러가지?


“황여사님?” 순간 들리는, 한껏 격앙된 간병인님을 단번에 진정시키는 낮은 목소리. 역시 임선생님이다. “거기서 뭐 하세요?” 딱 필요한 순간 등장했다.

“어이쿠.” 황여사는 그녀의 부름에 재빠르게 움직여 임선생님의 사생활 보호 스크린을 열었다. 스크린 너머로 침대에 꼿꼿하게 기대앉아 있는 짧고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임선생님이 보인다. 그녀도 어제부터 심기가 매우 안 좋아 보였다. 선생님은 어깨가 불편한지 어깨를 조금 움츠리고 나서 고개를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간병인님이 빠르고 능숙하게 그녀의 어깨 및 견갑골과 목을 몇 번 짚고 나서 지압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미홍은 처방받았던 수면 패치 페이퍼를 꺼내 들었다. 지름 5mm의 푸른색 동그란 점들이 붙어 있는 손바닥 만한 페이퍼 한 장. 어째서인지 사고 전엔 분명 패치를 남용할 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붙여 댔었는데 지금은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현재, 지금 시대는 먹는 약은 잘 안 준다는데. 팔뚝 안 쪽에 페이퍼를 갖다 댔다. 그렇게 대기만 해도 점들이 피부에 절로 옮겨가 수분 내에 피부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점의 개수가 많을수록 약효가 세지는데 한 번에 5개 이상은 사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미홍은 15개 정도는 옮겨야 효과가 나타났다. 점들이 피부를 향하게 밀착하고 엄지 손가락으로 뒷면을 쓸어서 대충 17개를 옮겼다. 점들이 사라지자 바로 졸리기 시작한다. 미홍의 눈이 가물가물 감긴다.


[부움~] 미홍의 케어시스템에 수면모드 표시가 떴다. 그때.


“너 이씨!! 양미홍!!!”

주재훈, 장시간 자리를 비웠던 미홍의 보호자가 벌게진 얼굴로 돌아왔다.


“내가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지? 야!”

악에 받쳐 들어온 재훈의 눈에 약에 취해 잠든 미홍이 들어온다. 어이가 없고 기가 찼다. 그래서 그녀의 양 어깨를 부여잡아 난폭하게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 재껴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이! 이 멍청한 년아! 일어나 보라고!! 야!!”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속절없이 흔들리는 미홍은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옅은 미소까지 짓고 있다. 더 열받는다.


“이! 이! 멍청한 년이! 내가 여태 무슨 마음으로 버텼는데… 너 때문이야! 네가 깨어난 이후로 원하는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단 하나도 없다고!! 그러니까 일어나! 일어나 보라고!”

재훈은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 미홍을 거칠게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미홍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졌고 머리가 헝클어졌다. 그런데도 저 재수 없는 미소는 변함이 없네. 정말 꼴 보기 싫다.

재훈이 미홍의 멱살을 잡고 한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HANA와 좀 닮은 구석 때문에 진짜 많이 참아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너 때문이야! 이 멍청한 년아!!”

“워메~”

재훈의 손이 미홍의 뺨을 가격하기 직전, 누군가 뒤쪽에서 그가 휘두르는 손의 어깨를 잡았다. 그 때문에 잠시 멈칫한 사이, 어깨를 잡은 그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 아아아아아, 아야!”

어깨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다. 재훈이 너무 아파 신음소리를 내가며 미홍의 멱살을 놓쳤지만 재훈의 어깨를 잡은 손은 놔줄 조짐이 없어 보인다. 재훈은 고개를 겨우 돌려 손의 주인이 누군지 확인했다. 황여사, 그 말 많고 성가신 간병인이다.


“아, 아아아! 아파요, 아파요!”

“뭔 일인지는 몰르겄지만.” 황여사가 중간에 크게 침을 한 번 삼키고, “꿀꺽!” 조용히 말했다. “우리 할머님은 소란스러운 걸 싫어하셔!!”


황여사는 엄지 손가락으로 목으로 연결된 승모근 뒤편을 단단히 받치고서 어깨를 감싸 나머지 손가락 네 개를 쇄골뼈 안 쪽에 쑤셔 넣어 눌러 잡았다.


“아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요!! 그러니 놔주세요!!”

황여사가 임할머니쪽을 힐끔 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임할머니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고 그 시간을 꽉 채우고 나서 비로소 아귀에 힘을 풀었다.


“아니,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방금 전까지 죄송하다 읍소했던 재훈은 어깨가 풀리자마자 따지고 들었으나 황여사 너머 임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주춤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거시기, 머선 일인지는 몰러도 이제 막 잠든 사람한테 그라믄 안되지 않겄소?”

“아, 그, 그게 그러니까 다 사정이 있어서…”

맞아,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어. 재훈은 그제야 아차 싶어 어색하게 미홍을 돌아봤다. “이런, 미홍아. 내가 잠깐 미쳤나 봐. 잠깐 딴생각을, 아니 오해를, 아니 그 스트레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그랬어. 미홍아, 너도 알지? 이거 내 진심 아니야, 아니었어.” 재훈은 널브러진 체 여전히 수면 중인 미홍의 자세를 바로잡아 줬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도 정리해 주었고 엉망이 된 머리도 매만져 주었다. 그래도 느껴지는 불편한 시선.


“저… 제가 잠시 무분별한 행동을 했습니다. 많이 놀라셨을 두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재훈이 임할머니와 황여사를 향해 깊게 고개 숙여 정중히 사죄했다. 서둘러 진정하고 분노까지 어려 있던 흥분은 숨기고, 최대한 평소처럼 침착하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흠… 이상하군요. 사과는 우리가 아니라 양미홍한테 해야죠. 그렇죠, 그게 맞는 거겠죠?”

임할머니다. 나서면 황여사가 나섰지 저렇게 임할머니가 먼저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못봤는데. 재훈을 무섭게 아프게 했던 황여사는 어디 있나 했더니 어느새 임할머니의 뒤편에 서서 재훈을 노려보고 있다. 저 할머니들 정말 왜 저러는 거야?


“아, 네. 그건 미홍이가 일어나면 제가 알아서, 따로 하겠습니다.”

“그래요. 할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하세요. 쉽게 용서받기 어려운 행동이었으니까, 아시죠?”

임할머니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재훈을 때리는 것 같다.

“아, 네, 네. 그럼요, 그럼요. 해야죠.”

재훈은 버둥거리며 사생활 보호 스크린을 내렸다.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진 않겠지만 이러면 어느 정도 저 여자들의 눈빛은 피할 수 있다. 아니, 좀 시끄럽게 한 거 사과했으면 그만이지, 이래라저래라 웬 참견이람. 재훈은 미홍을 째려봤다.


‘이것도 다 너 때문이야. 양미홍 너 때문이라고!’


1인실에 있을 때는 미홍이한테 이 보다 더한 짓을 해도 괜찮았다. 주변에 뭐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었고 병원 관리시스템은 해킹해서 조작된 영상을 심어 두면 그만이다. 대신 언제나 미홍이에게 잘해주고 있다고 HANA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서 병원시스템 노출용으로는 더 지극정성으로 잘해주었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잘해주고 보살펴줬다. ‘나도 사람인데 이 정도 숨통은 트여야 살지.’ 그런데 대철이 형이 약속한 돈을 줄여버려 2인실로 옮겨야만 했다. 형도 미홍이, 이 멍청한 년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은 몰랐겠지. 거기다 코마에서 깨어나기까지. 재훈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수면휴식 중인 미홍을 향해 진심을 다해 중얼거렸다.


“미홍아, 알아서 그냥 죽어주면 좋았잖아. 제발 죽어주면 좋았잖아.”



재훈에 이어 황여사도 임할머니의 사생활보호 스크린을 내렸다. 임할머니는 굳은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며 누워 있다. 저러고 있으면 아무리 물색없는 황여사라 해도 쉽사리 말 걸기가 어려워진다.


“여사님?” 그래서 황여사는 자신을 부르는 저 소리가 반갑다. “아이구야, 왜요? 어디 불편하시당가요?”

“아니여. 그게 아니고 잘하셨어요.”

낮지만 단정한 그녀의 칭찬 한 마디에 황여사의 긴장이 풀렸다.


“저 놈, 저거 생긴 건 여리여리 보들보들 생겨가지고 아주 못 써먹겠고만요. 하신 말씀이 다 맞았어요. 지는 그동안 바보 멍충이 맨키로 왜 하나도 몰랐을까요? 어떻게 저리 시치미를 뚝 떼고 안 그런 척 굴었디야. 워메 육시랄 놈! 워메 저 찢어 죽일 놈!”

“여사님, 스크린 좀 켜주세요.”

임할머니가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부탁한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황여사가 스크린을 켜자 HANA가 나왔다. 뉴스에서 예고했었던, 당분간 활동 중지를 하겠다는 발표 중으로 생방송이다. HANA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많이 부어 보인다. 목소리도 쉬어 있고 얼굴도 창백하다. 딱한 것. 얼굴만 봐도 맘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난밤 임할머니는 여러 차례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여러 차례 참아가며 문제의 HANA영상을 봤다. 끔찍했다. 정말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딥페이크 영상. 그러니 기술을 이용해 그 영상이 진짜를 촬영한 건지 아니면 가짜로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 이를 진짜처럼 느끼고 감정이 인다는 게 중요했다. 적어도 임할머니에겐 그랬다. 그리고 저 가엾은 HANA가 고통받는 게 싫었다.


“이것이 뭐댜? 개인 채널로 뭐가 오는디요?”

스크린 화면 구석에 임할머니의 개인채널 시그널이 깜빡이고 있었다. “여사님, 그걸 부탁해요.” 황여사가 서둘러 임할머니의 개인 VR고글을 가지고 와 익숙하게 임할머니의 얼굴에 장착했다. 고글을 장착하면 모든 감각 기관이 뇌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눈앞에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고 듣는 것과 말하는 것, 심지어 몸을 움직이는 것 까지도 육신을 통하지 않고 바로 뇌파끼리 주고받는다. 그러니 황여사 보기에는 임할머니가 고글을 쓰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말을 많이 하고 듣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수면휴식을 한다고 하고선 대신 저 고글을 쓸 때가 자주 있었다.


저 VR고글은 얼마나 비쌀까? 그나저나 얼마나 중한 사람이길래 생방송 중인 HANA를 마다하고 소통 중이시려나. 황여사는 혼자 스크린에 집중했다. HANA의 눈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이 또로록 떨어진다.


“여사님?”

“야?!”

한참을 조용할 줄 알았던 임할머니가 황여사를 찾으니 놀라서 소리쳐 대답했다. 보통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놀라면 덩달아 움찔할 법도 한데 임할머니는 눈썹하나 까딱이지 않고 VR 고글을 보관하던 고풍스러운 오동나무 서랍장에서 검은색 상자 하나를 더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황여사가 얼른 가져다주니 그 속에서 임할머니 것보다 조금 더 심플한 VR고글 하나를 꺼내어 황여사에게 건넨다.


“이거 여사님 거예요. 지금 쓰세요.”

저 귀한 것을 어찌? 그러나 하필이면 지금? “예에? 이것을 지금요? 아니, 시방 꼭 지금 써야 한다요?” 황여사가 스크린 속 HANA가 못내 아쉬워 고글 쓰기를 망설이니,

“여사님.” 돌아오는 건 간결하고 단호한 대답.

황여사는 싫은 얼굴을 꾹 감추고 의자에 털썩 앉아 고글을 썼다. 잠깐, 눈을 한 번 깜빡이는 동안 눈앞이 깜깜해졌다. 정확하게는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그렇게 깜빡이고 눈을 떴을 때 황여사는 누워 있었다. 아주 편안하게 대자로 뻗어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원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하늘이 보였는데 파란색이다. 저렇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저런 하늘이면 눈이 부실법도 한데 그렇지 않고 더 편안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여사님?”이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봤더니 멀리 임할머니가 서 있었다. 워메, 신기허다. 저리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임할머니는 움직이는 걸 싫어해 입원 전에도 스스로 서거나 걷는 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황여사는 임할머니를 병원에서 처음 만났으니 그녀가 침대 밖으로 나온 모습 자체를 본 적이 없었다. 그게 다 이것 때문이었구먼. 충분히 납득이 갔다.


“어떠세요? 여기는 마음에 드세요?”

엥? 너무나도 곱고 상냥한 목소리. 이것은 임할머니의 목소리가 아니다. 황여사가 깜짝 놀라 고개를 하늘로 향하니 푸른 하늘 아래 HANA가 있다. 크고 예쁜 꽃사슴 같은 눈이 자신을 바라본다.


“워, 워메, 네, 네는 HANA 아니냐?”

황여사가 너무 놀라 뒤통수를 뒤로 젖혔고 그대로 땅에 부딪쳤다.


“어머, 괜찮으세요?”

물론 괜찮지. 푹신한 잔디가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또 진짜로 부딪힌 것도 아니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곧게 걸어오는 임할머니가 보인다. 저렇게까지 신체가 건강한 양반이었던가? 가까이서 보니 나이도 한 10년은 젊어 뵌다. 그때, 황여사의 굵은 마디가 박힌 거친 손에 보드라운 살결이 느껴졌다. HANA가 손을 잡아준 것이다. 따뜻했다. 콩닥콩닥 뛰는 마음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자신의 콧등정도 오는 키의 HANA가 같이 서 있다. 예쁘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세상천지 이렇게 예쁜 애가 또 있을까? 이게 전부다 꿈인가, 생시인가?


“의외로 꽤 금방 적응하시네요.” 임할머니의 친절한 목소리.

“아이고, 적응은 무신… 근디 이게 다 뭐당가요? 지가 지도 모르게 죽어뼈서 천당에 온 것은 아니겄죠?”

“하하.”

임할머니가 기분 좋게 웃는다. 황여사가 가끔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선생님?” 다정한 목소리의 HANA가 임할머니를 찾는다.

‘HANA 자도 양미홍씨맨키로 할머니를 선생님으로 부르는고마잉’

“보기에 어떠세요? 지난 버전보다 많이 업그레이드 됐어요. 이번 프로그램이 적용된 베타 버전 반응이 좋은 건 아시죠? 이미 테스트도 끝냈고요. 아, 그 버전… 굳이 안 보셔도 됐는데, 보는데 안 힘드셨어요? 저는…”

“흠, 힘들었지. 안 힘들기가 어려운 영상이었다. 특히 그 강간장면은…”


‘강간? 임할머니가 언제 뭘 본 것이여? 설마 그 흉한 것을 본 건 아니겄제?’

“오빠는 원하는 걸 얻어야 움직이는 사람이라…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지금까지 계속, 또 계속… 미홍 언니까지…”

“그만. 괜찮다, HANA야. 이해해. 그 사람은… 오늘 보니 역시 네 말이 맞더구나.”

“…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다소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임할머니는 이를 깨고 싶었는지 어깨를 더 펴고 활짝 웃어 보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딥페이크 technology transfer는 다 끝난 거니?”

HANA도 그에 반응하여 더 예쁘게 활짝 웃는다.

“네, 오빠에게서 필요한 건 다 copy 했어요. 그쪽 서버에 남은 건 다 삭제했고요.”

“그래, 그럼 이젠 진짜 정리해도 되겠구나.”

“네.”

“그동안 네가 고생했다.”

기분 좋은 두 사람의 대화에 황여사가 끼어들었다.

“저기… 나가 궁금한 것이 있는디. 지금 여 있는 아가씨가…”

“하하하, 왜 그러세요. 아까처럼 편하게 HANA라고 불러주세요, 네?”

“그, 그랴, 그니까 아가씨가 아니 학상이 그러니까 네… 가… HANA면 지금 밖에서 울고 있는 HANA는 누군겨? 아, 녹화방송인겨?”

“하하하, 지금 저는 HANA에요. 그리고 지금 방송도 녹화한 게 아니에요. 거기도 저예요.”

“으잉?”

“그러니까 음, 지금 방송 중인 HANA도 HANA고요. 저도 HANA에요.”

“그, 그기 뭔 소리여? 도통… 도대체 뭔 소리당가?”

황여사는 쉽게 이해가 안 가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아무리 A.I라고 해도 이렇게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데 어떻게 동시에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그럴 수 있지?


“하하, 우리 여사님 처음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우리 좀 걸을까요? 걸으면서 천천히 설명해 줄게요.”

임할머니가 친절하게 황여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시 보니 임할머니 맨발이다. 황여사도 따라서 신발을 벗었다. 맨발에 닿는 잔디의 감촉이 이렇게까지 보드랍다니. 그러고 보니 황여사에겐 깨끗한 잔디가 처음이다. 거기다 HANA까지 곁에서 걷고 있다.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임할머니는 황여사가 이해하기 쉽도록 ‘슈퍼 VIP 팬 딥블랙 멤버십’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워메, 이런 영광이!” 황여사는 이리도 귀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래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행복한 얼굴로 HANA를 쳐다봤다. 그런데…

“HANA야, 왜 그러냐? 네 왜 그렇게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냐? 왜 그랴?

방금 전까지 황여사의 근심걱정을 싹 날리게 해 주었던 티 없이 해맑았던 HANA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여사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뭔디? 뭣인디? 뭐든 다 말해도 되야.”

“미홍 언니 이야기예요.”

“…”

“여사님, 미홍 언니는… 언니는 저한테 엄마 같은 사람이에요.”

HANA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스크린 속 공식발표 때 울던 것과는 비교도 못 할 만큼 슬피 운다. 꽃사슴의 작은 어깨가 사시나무 떨리 듯 떨고 있다.



재훈은 온 신경을 집중해 조용조용 걸어 임할머니의 사생활 보호 스크린까지 걸어갔다. 이 스크린은 미홍 침상의 것보다 차단 등급이 높아 안의 상황을 알아채기가 좀처럼 어렵다. 아니, 이 정도 스크린을 설치할 정도라면 1인실에나 있을 것이지 뭐 하러 2인실로 왔담. 정말 귀찮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짜증이 났지만 용기를 내어 스크린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수분을 나대는 심장을 쥐어 잡고 귀를 기울였다. …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이렇게까지 조용한 걸 보면 임할머니는 병실 밖, 아니 침대 밖으로 나가는 꼴을 못 봤으니 분명히 수면 휴식중일 거고 황여사도 예전 같았음 쪼르르 나와 심심해 죽겠다는 듯 돌아다녔을 텐데 조용한 걸 보니 재훈에게 필요 이상으로 힘을 써 피곤해져 옆에서 잠든 게 틀림없다. 나태하기 이를 데 없는 간병인 같으니라고. 재훈은 황여사에게 붙들렸던 어깨를 움직여봤다.


“으읔, 어쩐지 사람이 배운 거 없이 무식하더라니, 쓸데없이 힘만 세고 말이야.”

아직 어깨는 아프다. 그러나 서둘러야 한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세트로 쥐 죽은 듯 자줄 때 미홍이를 데리고 나가자. 머릿속으로 수 없이 시뮬레이션해 본 일이다. 이 모든 게 알아서 죽어주지 않은 미홍이 때문이니 멍청한 미홍이라고 해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아니 이해해야만 한다.


재훈은 아직 수면 중인 미홍이 팔 안 쪽에 수면 패치를 더 옮겼다. 하나, 둘… 20개 면 충분하겠지. 그러고선 전동 휠체어에 옮겨 태웠다. 축 늘어진 미홍이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조심스럽게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여기까지 오는 데 재훈에겐 큰 용기가 필요했다. 간절히 바라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거기다 이건 HANA에게 반하는 일이다. 그러나 HANA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너 때문이야. 반드시 오늘은 끝낼 것이다.




잠들어 있던 미홍의 코끝에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항상 맡았던 병원 냄새가 없다. 귀는 비행기에 탄 것처럼 먹먹하다.


“뭐, 뭐야… 여기는… 여기는… 어디… 야?”

“이씨! 뭐야? 벌써 깬 거야? 진짜 말 한 번 제대로 듣는 꼴을 못 보겠네!!”

미홍이 가물가물 눈을 떴다. 수면 패치로 휴식을 취할 때 이렇게까지 힘들게 깨어난 적이 없었는데. 매번 개운하게 일어났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게다가 주재훈 저 자식은 왜 똥꼬에 불붙은 똥개마냥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있는 거야.


“야, 주재훈,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어떻게 된 거지? 미홍이가 벌써 깨어나려고 한다. 아직 옥상 난간 너머로 던지지 못했는데. 분명 A.I 케어는코마 상태일때 약물에 대한 내성은 충분히 사라졌다고 했는데, 그래도 못 미더워 수면 패치를 잔뜩 붙여서 끌고 온 건데… 그런데 어떻게, 하필이면 지금 이 타이밍에 눈을 뜨는 거지? 어떻게 단 한 번을 말을 듣지 않는 거지?


“미홍아, 지금 나 너 떨어트릴 거야.”

“뭐… 뭐?”

“너를 저 밖으로 떨어트릴 거라고! 그러니까 떨어져 줘.”

“뭐? 야 이... 미친놈아 그러면 내가 죽잖아!!”

“맞아, 이 멍청한 년아. 그러려고 너 떨어트린다고!!한 번만 내 말 좀 들어줘!!”


재훈은 미홍의 몸을 옥상 난간에 눕히듯 널어놨다. 그녀의 상체를 먼저 난간에 걸쳐 놓고 두 팔로 다리를 감싸 들어 올리려 했다. 딱 그 순간에 미홍이 깨어난 것이다. 재훈은 서둘렀다. 빨리 다리를 들어 밖으로 넘겨야만 한다. 그러나 눈 뜬 미홍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혔고 다른 손으로는 아까 황여사한테 붙잡힌 어깨를 부여 잡혔다. “아아!!” 잡혀도 꼭 이렇게 잡히냐!


“아, 이제 알겠네. 너 지금 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확실히 알만 해… 너지? 이 미친놈아. 네 놈이 그 저질 HANA영상 만든 새끼지? 뉴스 나오는 영상 보니 어딘가 눈에 익는다 했어...” 재훈이 유난히 어깨를 아파하며 팔에 힘을 빼는 것이 느껴지자 미홍은 그쪽 손에 힘을 더 썼다. “뭐? 아프냐? 미친 새끼야! 너 내 몰카를 찍어놨던 거지? 그걸로 딥페이큰지 뭔지 저질 영상 만들고! 그런데 뭐 이제 와서 켕기냐? 내가 깨니까 켕겨서 이러는 거야? 내가 신고라도 할까 봐? 잡혀갈까 봐?!”

미홍이 재훈의 머리채도 마구 흔들었다. 이 미친 새끼! 개새끼!


“그런 거 아니야! 이, 이, 이 멍청한 년아!”

“아니라고? 이 미친 개자식아! 구라도 풍년이다!”

“진짜 아니야!!”

진짜다. 진짜 아니었다. 재훈이 이렇게까지 화가 난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HANA가, HANA가 너 때문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빠… 이제 미홍 언니가 깨어났으니 저는 뭐가 되는 거예요?”

“HANA야, 그게 무슨 말이야? 왜 그런 소리를 해? 너한테는 오빠가 있잖아.”

“언니가… 또 소송을 걸었어요.”

“소송? 무슨 소송을 또 걸었다는 거야? 아니야, 미홍이 내 말 듣는다고 했어.”

“'수익 배분에 관한 약정금 분배소송’이래요. ”

“뭐? 수익 배분에 약정금?” A.I 및 딥페이크 테크놀로지에 관해선 재훈 스스로 최고라 자부하지만 법률에 관해선 인정하긴 싫지만 솔직히 바보다.

“사장님이 그러는데 이번엔 진짜 어려울 거래요. 이번엔 엄청 큰 로펌이랑 같이 걸어왔데요. 그런데 말이에요, 오빠. 제가 힘든 건 소송 때문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힘든 건… 그게 뭐냐면…”

“뭔데? 뭔데 HANA야?”

HANA의 눈에 반짝이는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미홍 언니요. 언니가 계속 이러는 건 제가 진짜가 아니라서 그런 거죠? 제가 진짜가 아니라서, 가짜 사람이라서… 아니 저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렇죠? 그냥 언니를 따라 만든 가짜인 거죠? 저는, 저는 진짜가 돌아왔으니 사라져야 하는 거죠?”


HANA가, 심지어 미홍이 너를 유일하게 걱정까지 해주던 그 착한 HANA가, 너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는 충격 발언을 했다. 바로 너 때문에, 별 쓸모도 없는 미홍이 너 때문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고! HANA는 진짠데!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진짠데. 그런 그녀가 그 연약한 어깨를 떨며 오열했다. 너무나 괴로워했다. 그러니 미홍이 너는 HANA의 걱정을 살 자격이 없어. 보살핌을 받을 자격도 없어. 더 이상 살아 있을 자격이 없어. ‘HANA를 대신해 내가 너를 벌하겠다.’


“그러니 제발, 제발, 제발! 제발 한 번만 내 말 좀 들어! 그냥 죽어 줘! 제발, 제발 부탁이야!!”

“미친 새끼! 세상에 죽어달라고 부탁하는 새끼는 너밖에 없을 거다. 이 개새끼야!”

“왜? 왜? 내가 너한테 뭐 크게 해 달라는 적 있었어? 없었잖아! 미홍아, 어차피 사람은 죽어. 그러니 제발, 제발 그냥 한 번만 떨어져 달라는 건데 왜 안된다고만 하는 거야?!”

“미친놈! 나는 안 떨어져! 왜 떨어져? 못 죽는다, 이 새끼야!!”

“제발, 제발 미홍아! 그러지 말고 제발 죽어줘!!”

“싫다, 존나 오래 살 거다!! 이 개새끼야!!”

“미홍아 제발.”

미홍은 있는 힘껏 목이 쉬어라 소리쳤다.

“사람 살려! 불이야!! 불이야!! 사람 살려! 불이야!!”

“미홍아, 괜히 힘 빼지 마. 소용없어. 여긴 사람도 없고 CC카메라도 없어.”


이럴 수가, 재훈을 방어하던 미홍의 손도 슬슬 힘이 빠졌다. 다리에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어도 재훈의 완력으로 두 다리가 들려지는 건 알 수 있었다. 뒤통수에서 허공이 느껴졌다. 미홍은 진짜 죽는가 보다 하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주마등이 보일 차례인가.


“워메~ 시방 여서들 뭐 하는 것이여!”


황여사다. 황여사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그 등장에 둘 다 놀란 그때, 미홍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흔들리던 재훈이 놀라 중심을 잃고 미홍을 향해 고꾸라졌고 동시에 미홍도 당기던 힘에 뒤로 누워 버렸다. 그러니 둘 다 옥상 난간 너머로 넘어갔다. 미홍은 재빠르게 재훈을 잡았던 손을 풀어 옥상 난간을 쥐었다. 재훈도 한 손으로 미홍의 다리를 부여잡고 한 손으론 아래쪽 난간의 틈에 손을 비집어 넣고 부여잡았다.


“미, 미홍아. 잘 잡아야 돼! 응? 놓지 마! 놓치면 안 돼!”

방금 전까지 미홍에게 죽어 달라고 부탁했던 재훈이 상황이 바뀌었다고 바로 저런다.

“미친놈! 주재훈, 너 진짜 어이없다!!”

곧 난간을 놓칠 같다. 만약 놓치면… 그런 건 생각하지 말자.

“간병인님! 간병인님 거기 계시죠? 제발 저희 좀 도와주세요!”

미홍은 난간 위를 향해 소리쳤다.

“아이고오!! 이게 무슨 일이여? 정말 큰일낼 사람들이여! 잡아! 얼른 잡아!”

간병인님이 사색이 되어 대답한다.


미홍의 다리 쪽에 매달려 있던 재훈은 황여사가 미홍의 손을 꽉 쥐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다행이다.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 사람의 힘이 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으니 우리를 가볍게 들어 올려 줄 것이다. 아, 역시 처음은 어려운 법. 오늘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일단 살아나고 나서 다음 기회를 엿보자. 분명히 오늘만 날은 아닐 것이다.

“아이고 무슨 싸움을 그렇게 험하게 햐?”

간병인님이 미홍의 등춤을 번쩍 들어 올려 옥상 바닥에 내려놓았다. 힘이 장사다. 미홍은 난간에 매달리는 데에 온 힘을 다 써 대답할 기운이 없었다. 정말 두 눈만 겨우 뜰만큼의 힘만 남아 있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고 간병인님이 놔준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주재훈 개새끼가 들어 올려지는 걸 지켜봤다. 미홍 때와는 다르게 쉽게 올라와지지 않는 게 시간이 좀 걸리나 보다. 그런데 너무 힘을 썼나? 자꾸 눈이 스륵스륵 감긴다. 미홍은 얼핏 자신의 손목에 있는 못 보던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핑크? 저 패치는 언제 내 손목에 옮겨진 거지?’

무슨 패치인지 몰라 떼내려 했지만 늦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 상황에 잠이 쏟아진다는 게 웃겼지만 별 수 없다. 손목 위의 핑크색 패치는 곧 진피층 안쪽 깊숙이 스며들었다. 미홍은 자신이 처방받은 푸른색이 아닌 핑크색

패치가 사라져 가는 걸 보며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어떡하지, 재수 없는 주재훈이 올라오는 건 못 보겠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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