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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Apr 05.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12. 체중감량



12. 체중감량



이미 몇 년 전 크게 한 번 속았다. “살은 대학 가면 다 빠져!” 하, 빠지기는 무슨.

가율은 훌라후프를 집어 들었다. 원 안쪽으로 돌기가 쪼르르 박혀 있는 어마무시한 훌라후프다.


“아이고, 홍가율. 방금 밥 먹었는데 그걸 돌리려고? 너는 뺄 살이 없다니까.”

 

큰 이모가 부른 배를 두드리며 가율에게 거짓을 고한다.


“그래 가율아, 괜히 먹은 것만 얹힌다. 그렇게 안 해도 예뻐. 세상에서 최고로 예뻐.”

 

셋째 이모가 거기에 뻥을 더 얹는다. 그럼에도 가율은 아랑곳하지 않고 훌라후프를 허리에 걸었다. 너무 먹었다. 어떻게 해서든 만회해야만 한다. 세상에 절대 저절로 빠지는 것은 없다.

오늘 가율은 큰 이모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큰 이모집에 놀러 왔다. 아직 파티는 하기 전이고 이제 점심만 먹었을 뿐이었다.

솔직히… 이모들이 만들고 사 와서 먹으라고 주는 건 다 맛있다. 게다가 그런 이모들이 가율을 두고 바로 옆에 붙어 앉아 이것도 먹어보라 저것도 먹어보라 하며 거들기까지 했다. 요요가 올 것이 분명하다. 아니 이미 슬금슬금 오고 있다. 뒤늦게 찾아오는 깊은 후회. 가율은 가열하게 훌라후프를 돌렸다. 예상보다 더 센 자극이 허리둘레를 휘감았지만 꾹 참아야 한다.


“아이고, 가율아 안 아파? 그거 네 오빠들도 해보겠다고 덤볐다가 다 포기한 건데. 그럴 거면 아까 네 아빠랑 이모부들, 오빠들이랑 공 차러 간다고 할 때 거기나 따라가지 그랬어. 그거 돌리는 거 보니까 내 배가 다 아프네.”

“아이고, 언니는 걔들이 가율이 낀다고 봐주기나 해? 저번에도 괜히 따라나섰다가 공에 맞아서 코피만 쏟고 왔잖아. 그것도 쌍, 코, 피! 깔깔깔깔.”

“맞아. 우리 가율이가 우리 닮아서 운동 신경은 좀 없어, 그치? 깔깔깔. 그래도, 그 자식들은 여자 형제라곤 사촌 전부 통틀어서 우리 가율이 밖에 없는데 그럼 안되는 거였어. 그래서 내가 아주 혼꾸녕을 내줬잖아. 가율아 이모가 오빠들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혼낸 거 기억나지? 이모가 잘했지? 어때? 우리 가율 이한테 이 큰 이모밖에 없지?”

“아니지, 아니지. 야, 이 이모는 이모부까지 혼내줬다. 그러니까 가율 이한테 이 셋째 이모 밖에 없지? 셋째 이모가 최고지?”

 

이모들 눈에는 가율이 아직도 코 찔찔 흘리는 아기로 보이는지 너무 애 취급이다. 물론 예뻐해 주는 거란 걸 잘 알지만. 그래서 더 답이 없다.

 

“언니들, 그만해. 그냥 냅 둬, 가율이 쟤, 지도 좀 컸다고 이제 우리말 안 들어. 내가 말 듣는 꼴을 못 봤어.”

 

4 자매의 막내인 가율의 엄마가 큰 이모네 부엌을 뒤져 쟁반에 약과와 곶감말이를 한가득 담아 들고 왔다. 저 곶감말이 가율이 잘 아는 거다. 이빨 자국 남는 풍미 가득한 버터에 호두가 꽉꽉 들어차 있는 맛있는 곶감.

재래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는 큰 이모가 단골손님한테 귀동냥으로 듣고 직접 만드는 간식이다. 가율은 다이어트 중에도 저 곶감만큼은 이겨 보질 못 했다. 량을 보아하니 엄마와 이모들은 이미 배 터지게 밥을 먹었으면서 또 저걸 배 터지게 먹으려나 보다. 정말 대단하다.


“가율아 곶감 먹자.”

“... 안 먹어. 싫어.”

“왜? 이거 우리 가율이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그냥 냅두라니까 그런다. 가율이 지금 저만큼 뺀다고 얼마나 독하게 굴었는데. 진짜 독하게 뺀 거야.”


엄마와 두 이모는 간식거리를 앞에 두고 소파는 등지고서 거실 바닥에 편하게 눕는다.


“독하게? 우리 순하디 순한 가율이가 뭘 독하게 했는데? 운동을 그렇게 했어?”

“운동은 무슨!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를 아주 독하게 했다니까.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한약을 샀어, 쟤가.”

“무슨 한약? 보약? 가율이 어디 힘들었어?”

“아휴, 보약 같은 소리 한다. 언니는 그게 보약이겠어? 말 들어보니까 뭐 그런 거, 살 빠지는 약 그런 거 사 먹었나 보네. 어쩐지 애가 낯빛이 허옇게 푸르뎅뎅한 게 그냥 안 좋아진 게 아니었어. 그 포동포동하던 예쁜 뽈살이 다 어디 갔나 했네. 너 그런 거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

“그래, 그렇게 뺀 살은 요요도 금방 온다더라.”

 

가율의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그간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으려 한다.

 

“아니, 언니. 가율이 쟤가 한 번은 쓰러질 뻔했다니까. 약 먹은 지 한 삼주 지나서던가 아르바이트 간다는 애가 나가다 말고 현관에 픽 눕는 거야. 눈이 요레요레 게슴츠레해져 가지고. 어디 그것뿐인 줄 알아. 가율이 제가.”

“아, 엄마! 그만해!”

 

가율은 소리를 빽 질렀다.


“가율아, 그런 약 먹어 봐도 소용없어. 아무리 그래도 네 궁둥이는 우리 궁둥이다. 우리 피는 다 너한테 갔어, 어디 안 간다니까. 하하하하하.”

“아! 이모!!”

“아이고, 깔깔깔깔 그래, 가율아 넌 그냥 서류상으로만 '홍'씨지 네 피는 '장'씨야.”

 

아휴, 엄마도 그렇고 저 이모들도 그렇고 정말 도움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또래 친구보다 갑절은 통통한 어린 가율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단 말로 방심시켰고 하다 하다 70kg에 육박한 고등학교 때도 나중에 다 빠진다며 당시에 핫한 산해진미는 전부 해 먹이고 사다 먹였다.

나중이 되어 왜 살이 안 빠지냐고 가율이 따지고 들자 자신들 궁둥이를 팡팡 치며 집안 내력이라고, 혈통이 이런데 뭐 하러 사서 고생하냐고, 가율인 뭐 먹을 때가 제일 예쁘다고, 잘 먹고 튼튼한 게 장땡이라며 저렇게 자기들끼리 좋다고 웃는다.


“뭐야? 왜? 가율아 왜 그래? 누가 우리 가율이 울렸어?”


엄마의 둘째 언니, 여행사 업무를 마치고 늦게 온 가율의 작은 이모가 들어왔다. 최근 들어 가율이 제일 좋아하는 이모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둘째 이모는 몹시 날씬한데 저 이모도 처음부터 날씬한 건 아니었다.


“쟤가 이혼하면서 맘고생이 너무 심했어. 그래서 우리한테 까칠한 거야.”

“저 언니 살도 그때 다 빠진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그 생각만 하면... 그때 그 자식을 그렇게 보내주는 게 아니었어. 우리가 너무 곱게 보내줬어.”

“맞아.”

 

지나치게 튼튼한 통뼈와 건강한 살집을 가진 엄마와 이모들은 자신들의 둘째에게 원치 않는 불행을 안겨준 가율의 ex둘째 이모부를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흠씬 두들겨 패줬었다. 장씨 집안 사위들과 그 아들들이 말려보려 노력은 해봤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가율은 겁에 질렸던 ex둘째 이모부의 표정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그 얼굴이 얼마나 웃겼는지 아직도 그 생각이 들면 절로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아이고,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그 레퍼토리를 읊어 대는 건데? 지겹지도 않냐? 나는 지겹다, 지겨워. 그러지 말고 언니 좀 앉아라. 네들도 좀 앉아 있어. 어떻게 볼 때마다 먹는 거 아니면 눕는 거야.”


작은 이모는 그때 이후로 다른 자매들과 확연히 다른 체형이 되었다. 그만큼 이모의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이다. 어린 가율의 눈에도 이모가 어떻게 될 까봐 무서운 때였다.


“그리고 좋은 말로 할 때 우리 가율이 좀 그만 놀리고!”

“너는 맨날 우리가 가율이 놀린다고 그러더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한 이모들이라고 말 나오겠어. 너 정말 너무 섭섭해.”

“나도 섭섭해. 우리가 가율이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그런데 작은 언니, 언니 얼굴이 좀 달라졌다. 살이 찐 것 같진 않은데… 어디 우리 몰래 병원 다녀? 예뻐졌어.”


가운데 누워 있던, 얼음 장사를 해 그런지 자매 중 특출나게 더 힘이 장사인 셋째 이모가 작은 이모의 얼굴을 거꾸로 올려다보더니 무언가 바뀐 걸 느꼈다.


“병원? 무슨 병원? 왜? 너 어디 아파?”

“아니 예뻐졌다니까. 큰 언니 지금 그 병원이 그 병원이 아니라, 작은 언니 말이야. 좀 어디가… 혈색이 좋아진 것 같은데? 역시 살이 좀 붙은 건가?”

“진짜? 작은 언니 이제 좀 원상복구 되는 거야? 제발 좀 그래 줘. 우리 가율이가 언니 보고 더 그러는 거 같단 말이야. 살 빼겠다고 얼마나 유난을 떠는지.”


그러고 보니 작은 이모, 지난번에 봤을 때 보다 어딘가 변했다. 살이 더 찌지도 빠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이모 확실히 미묘하게 달리 보인다.

 

“너 우리 몰래 어디 가서 무슨 시술 같은 거 받았어? 그럼 배신이야. 우리가 자연 미인 추구하는 거 알지?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봐줬지만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다. 우리 그 선은 넘지 말자.”

“그래, 선은 넘지 말자.”

“기가 차네, 기가 차. 무슨 자연미인들 다 동상 걸려서 얼어 죽었데? 당신들은 그냥 자연인이잖아요. 왜 거기에 죄 없는 미인을 갖다 붙이시나요. 이건 아니죠.”

 

역시 이모들 중에 말이 통하는 건 작은 이모밖에 없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자연인에서 자연미인이 되고 싶은 가율의 열정을 작은 이모만큼은 이해해 줄 것이다.  


“그리고 언니도 그렇고 네들도, 가율이가 살을 빼든 말든, 아니면 찌우던, 그냥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좀 냅둬라. 아주 옆에서 감 나와라 배 나와라 거들지 좀 말고, 아주 이 사람들이 한가해서 그래, 한가해서.”

 

우리 이모 파이팅! 가율은 희망의 빛을 보았다. 잘만 하면 엄마의 허락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언니가 몰라서 그래. 가율이 저게 요즘 아르바이트를 아침, 점심, 저녁, 새벽 하루 종일 한다고. 무슨 돈독이 아주 바짝 올라가 주고.”

“아, 엄마! 새벽은 아니지. 주말에도 쉴 때 있었고. 아니 엄마는 그런 걸 왜 다 말해?”

“어? 왜?”

“가율아 왜?”

“그래 가율아, 무슨 아르바이트를 그렇게까지 해? 네 얼굴이 반쪽이 된 게 한약 때문이 아니었구나?”

“한약? 뭐야! 가율이 너 살 빼려고 약까지 먹었어? 이놈의 기지베가! 어딜 그따구 약을 먹어. 나중에 그거 요요 다오고 잘못하면 간까지 상하는데.”

“아니, 이모 그게 아니라.”

“너 이 이모가 널 그렇게 가르쳤니?”

 

방심했다. 뒤늦게 접한 가율의 한약 소식에 믿었던 작은 이모가 급발진, 순식간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탔다.

 

“언니, 지금 한약이 문제가 아니야. 그건 이미 떠난 버스고. 가율이 저게 그렇게 피똥 싸면서 알바 한 돈으로 뭐 하고 싶다는 줄 알아? 엄청 비싼, 무슨 연예인들 살도 빼 주는데 관리 센터? 광고에도 막 나오고 그러는 데 등록하겠다잖아. 뭐 거기서 운동도 시켜주고 식단 관리까지 해준다고 거기 다니겠데. 자기 알바한 거 다 거기다 쓰겠다고 아주 난리야.”

“뭐?”

“얼마나 하길래?”

“왜? 그게 뭐 어때서?”

“큰 언니 뭐가 어떻냐니. 거기 얼만 줄 알아? 오백이야, 오백!”

“아니, 정확하게는 오백 이십 삼...”

 

오백 소리에 작은 이모는 가율의 등짝을 찰싹 내리쳤다.


“이노무 기지베! 아주 간땡이가 부었구나!”

 

가율의 오백으로 본디 의리 빼면 남는 게 없는 장씨 집안 4 자매는 하나로 똘똘 뭉쳐 집중 토론을 시작했다. 여행 혹은 무언가 배울 수 있는 학원 수강, 자기 계발, 기타 등등 모두 각자의 의견을 피터지게 주장한다.


“엄마, 이것도 자기 계발이야. 이모들, 이거야말로 진정한 자기 관리라고!” 


가율은 어설프게 끼어들었다 등짝만 더 맞았다.

큰 이모가 의외였다. 둘째 네가 방금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고, 가율이 저렇게 하고 싶다는데 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심지어 돈도 얼마쯤 보태주겠다 말하는 게 아닌가. 물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3명의 동생들로부터 크게 혼쭐이 났다.

엄마는 일단 전부 저금을 하라고 했고 자기 계발 학원비는 따로 빌려줄 테니 나중에 반드시 갚으라고 했다. 셋째 이모는 여행을 적극 권했다. 작은 이모는 오백 중에 백정도 떼어서 가볍게 주식공부를 해 보는 게 어떻냐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작은 언니, 언니 헬스장 다닌다고 하지 않았어?”

“나? 응.”

“어쩐지 사람이 태가 좀 달라졌다 했어, 운동을 해서 그렇구나. 가율아 괜히 엄한데 돈 버리지 말고 차라리 너네 작은 이모랑 운동을 해. 더 좋지 않겠니?”

“이모, 운동해? 어디서? 어디서 하는데?”

“여기, 우리 동네 관리실 헬스장.”

“으헤에? 여기 헬스장? 샤워실도 없는 그 꾸진데?”

 

가율의 셋째 이모네만 큰길 건너 동네에 살고 나머지 세 자매는 한 동네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큰 이모네와 가율이네가 먼저 한 단지에 들어와 살고 있었고 작은 이모도 이혼 후 살던 집을 정리하고 같은 단지 작은 평수로 이사를 왔다. 그러니 가율도 작은 이모가 다닌다는 헬스장을 잘 안다. 가면 아줌마, 아저씨들 아니면 시끄러운 고삐리들만 있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이다.

 

“뭐가 꾸져? 있을 거 다 있는데. 그리고 샤워실이 뭔 상관이야? 너 호텔 안 가 봤어?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하면 어디 가서 씻어?”

“몰라. 호텔에서 운동을 왜 해?”

“나는 모른다. 호텔이라는 데를 아예 안 가봐서.”

“이야, 장씨 집안 둘째 딸 출세했네. 호텔까지 가서 운동을 다 하고.”

 

작은 이모는 다른 자매들이 놀려대도 별 타격을 입지 않는다.

 

“눼, 눼. 우리 회사는 월급이 적은 대신 출장을 좀 좋은 데로 보내줍니다. 아무튼 운동하고 룸에 와서 씻으나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집에 와서 씻으나 뭐가 달라? 똑같지. 거기 운동기구도 웬만한 건 거 다 있어. 안에도 넓고.”

“그래, 거기 월 만 원 밖에 안 하잖아.”

“만 원? 진짜?”

 

가율 엄마의 눈에서 빛이 반짝 빛났다.


“만원이 월 만원이잖아. 그럼, 일 년이면 십이만 원. 아효, 그것도 적은 돈은 아니네.”

“뭐, 오백에 비하면 충분히 적은 돈 아닌가요, 홍가율 어머님?”

“그건 그래. 홍가율, 너 이모 따라 헬스장 가. 잘 됐어, 그 오백은 무조건 저금이야!”

“아, 엄마아!! 이모오!!”

 

만장일치, 가율의 오백은 동결되었다. 이모들은 정말 결정적인 순간엔 꼭 엄마편이더라.

 

“아까 뭐라고 그랬지? 관리 센터? 운동도 시켜주고 식단도 관리해 준다고? 우리 사랑하는 가율아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란다. 이 작은 이모가 산전수전공중전 다 살아보니까 운동이고 식단이고 누가 뭘 시켜줘서 되는 건 하나도 없더라. 다 자기가 해서 되는 거지.”

 

작은 이모는 자신이 내리쳤던 가율의 등짝을 다정하게 쓰다듬어줬다. 어째 쓰다듬을수록 가율의 입은 점점 더 코 밖으로 튀어나온다.


“가율이 많이 속상해? 거기 연예인들 관리받으러 가는데라고 했지? 그럼, 우리 가율이가 연예인이 되면 그때 이 큰 이모가 책임지고 보내줄게. 어때? 응, 약속?”

“아, 이모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무슨 수로 연예인이 되냐고.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정말 다들 너무해. 나는 내가 번 돈도 내 마음대로 못 쓰냐?!”

“누가 마음대로 쓰지 말래? 그런 영양가 없는데만 쓰지 말라는 거잖아!”

 

가율의 입이 더 튀어나왔다. 이모들은 오랜만에 보는 잔뜩 삐진 조카의 얼굴이 너무 반갑고 귀여워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었다. 그 정도 눈치는 챙겨야지. 가율이가 본인 말마따나 아주 아기는 아니니까 말이다.


“가율아, 오빠들이 아이스크림 사 온다고 너 뭐 먹고 싶은지 알려 달라는데?”


셋째 이모가 갑자기 아이스크림에 대해 물어 온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빠들도 가율이 밖에 안 챙기네. 나는 뭐 먹고 싶은지 아무도 안 물어보지?”

“크크크, 응. 언니는 안 궁금하데.”

“... 어디 거? 베스킨?”

“그래, 거기. 왜? 우리 가율이 속상해서 안 먹는다고 할까?”

 

가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부터 가족 단톡방에 계속 톡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게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나 보다.


“... 아몬드 봉봉.”

 

아이스크림 이름을 말하느라 툭 튀어나왔던 가율의 입이 슬그머니 기어 들어가더니 이내 입을 앙 다문다. 아몬드봉봉 하나에 기분이 좋아지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저녁에 우리 삼겹살 먹으러 가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가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너는 애가 먹는 거 가지고 왜 이렇게 짜치게 구니?”

“그래, 언니는 언니의 소화기관이나 잘 챙겨. 주는 게 너무 없어. 좀 넣어 줘라, 넣어줘.”


작은 이모는 깊은 한숨을 쉬고선 가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율아, 안 되겠다. 너는 이모랑 어디 나가 있자. 이모가 커피 사줄게.”

“... 싫은데, 나 아몬드봉봉 먹고 싶은데.”

 

어느새 큰 이모와 셋째 이모 사이에 쏙 들어가 앉아 곶감말이를 오물오물 먹던 가율은 다이어트 한약을 먹는 동안 아이스크림은 근처에도 안 갔었으니 최애 아몬드봉봉이 꼭 먹고 싶어졌다.


“어머, 홍가율. 너의 굳은 다이어트 의지는 다 어디로 간 거니?”

“어디 안 갔어. 그저 잠시 쉬고 있을 뿐이야.”

“거 봐라, 우리 가율이는 우리랑 놀 거니까 나가고 싶으면 너 혼자 나가주세용.”

                    

작은 이모는 “배신자들!” 이라고 외치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율이 내려놓았던 돌기 박힌 어마무시한 훌라후프를 돌리기 시작했다.


“작은 이모! 이모가 나 헬스장 만원 내줘. 이모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어머, 홍가율.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는 수중에 오백씩이나 있는 애가 어떻게 혼자 사는 이모한테 돈 만원을 내놓으라고 하니? 따지고 들면 너랑 운동해 주는 내걸 네가 내줘야지.”

“아웅, 이모!”


부웅, 오도도도. 부웅, 오도도도. 작은 이모가 가율보다 훌라후프를 훨씬 잘 돌린다. 셋째 이모가 재밌어 보였는지 도전했다가 돌기 때문에 한 바퀴도 못 버티고 손사래를 쳤다.

가율은 엄마와 이모들 보란 듯이 만원의 백배되는 뽕을 뽑으리라 굳은 결의를 다지며 마지막 곶감말이를 오물오물 맛있게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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