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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곰 Mar 04. 2021

자살이라는 역병 혹은 연쇄살인

우리는 여전히 사람 귀한줄 모른다

전염병 때문에 매일 매일 38명씩 죽는다면. 혹은 '백신을 맞고 나서' 죽는 사람이 그와 같은 숫자라면 그야말로 나라가 뒤집어질 겁니다. 코로나 얘기가 아닙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자살이야말로 어떤 무서운 전염병보다도 더 높은 치명률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연쇄살인'하고 있습니다.

38명이라는 숫자는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내놓은 '2019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른 것으로, 코로나 이후의 숫자는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상컨데, 코로나 이후의 숫자를 포함한 2020년 사망원인통계는 아마도 훨씬 더 높은 숫자로 나오겠지요.


자살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죽이는 행위지만, 사실 그 트리거는 대부분 외부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도 결코 과장은 아닐 겁니다. 전에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에게 들은 얘기입니다만,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타이틀은 이미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나마 몇년새 감소 추세에 있던 자살률이 다시 급등해서 복지부가 뒤숭숭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복지부가 전문가 등에 의뢰를 해 원인을 분석해보니 유명인의 자살이 유난히 많았던 그 해, 그에 따라 자살도 덩달아 증가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는 자살 방법도 그대로 따라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자살을 다루는 뉴스 보도가 얼마나 신중해야할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테고요. 요컨대, 자살은 개인이 스스로의 목숨을 끓는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매우 큰 외부 영향의 결과로 나타나는 지극히 사회적인 행위이며, 이런 경향이 밀집되어 매일 수십명의 사람이 목숨을 끊는 것은 심각한 사회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저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던 자살 뉴스는 출생 등록조차 안된 여자아이가 생모에 의해 목숨을 잃자 따라 죽은 어떤 아버지, 그리고 스튜어디스가 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출근할 기회조차 잃어 목숨을 끊은 여성과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아동살해나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죠. 이처럼 대부분의 자살의 이유는 외부에 있고, 손에 피를 묻힌 살인자가 없는 대신 원인 제공을 해놓고도 결백하다는 듯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회가 있을 뿐이죠.


미국 연방대법원이 '연방결혼보호법(DOMA)'에 위헌 판결을 내린 이후 미국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률이 감소했다는 점은,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된 사회적인 포용이 얼마나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이를 고려하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안철수가 '보지 않을 권리' 따위의 헛소리를 공연히 지껄일 수 있는 사회가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이고 배타적으로 느껴질까 싶어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김기홍 씨와 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은 결코 무관할 리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공공연히 혐오당하고, 차별당하는 데에 그 어떤 강철의 멘탈도 버틸 수 있을리 없어요. 


코로나로 인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 차별받는 소수자들, 법과 제도와 문화로 지키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스스로의 손으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하는 사람들은 기실 우리 사회가 죽으라고 등을 떠민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의 피와 무덤 위에 쌓아올리는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낙인 찍고 웃음거리로 삼고 있잖아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병이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태어나는 생명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은 이 나라는 아직도 '사람 귀한줄' 모르기에, 새로운 아이들의 탄생을 바랄 자격이 없습니다.


김기홍님과 변희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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