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의 부인을 묻어준 베를리오즈

사랑하면 떠나보내야 했던 비운의 베를리오즈

배우자를 잃는다는 것은 스트레스 지수를 숫자로 나타내는 1부터 10까지의 스트레스 측정 기준표에서 10에 해당하는 가장 큰 스트레스랍니다. 결혼을 했다 이혼도 쉽게 하는 요즘 세대에 뭐 그게 무슨 큰 스트레스라고 난리인가 하고 늘 생각하곤 했는데, 직접 배우자를 떠나보내니 스트레스 강도 10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 1869)는 세명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낭만시대를 대표하는 선구자로 각광을 받으며 살았던 베를리오즈는, 개인적으로는 세명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처음의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정식으로 함께 살던 부인들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그의 사랑은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의 무덤인 몽마르트르 공원묘지를 찾았다가 우연히 만남 아말리에라는 아가씨로 그녀도 금방 세상을 떠납니다. 세명의 배우자를 잃은 베를리오즈는 당시 미망인이 되어 돌아온 자신의 첫사랑 에스텔에게 마음을 붙이려 노력하지만, 웬일인지 에스텔은 그저 친구로서의 관계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어 버립니다. 하지만, 베를리오즈는 죽기 직전까지 에스텔과는 좋은 관계로 매달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공동묘지


베를리오즈에게 닥친 가장 커다란 불행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마저 쿠바의 하바나에서 황열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베를리오즈의 친구들은 베를리오즈에게 여행을 권하고, 또 러시아 모스크바의 진출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베를리오즈는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2년 후 자기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따라갑니다. 전에는 그저 음악사로 읽히던 것들이 제가 사랑하는 남편을 보내고 나니 다큐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무엇일까요?


베를리오즈 아들, 루이즈 베를리오즈

물론, 베를리오즈의 부인들은 속이 터져 죽을 것 같기는 했을 겁니다. 처음, 영국의 배우 해리엣 스미드슨을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따라다니며 교향곡까지 바쳐가며 결혼에 성공한 베를리오즈는, 신혼의 단꿈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오 리치오라는 메조소프라노와 눈이 맞아 연주 때마다 함께 동행하곤 했으니. 한때 잘 나가던 여배우였던 스미드슨이 거품 물고 쓰러질 만하지요. 하지만, 베를리오즈는 의리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뇌졸중으로 간병인이 필요한 스미드슨에게 간병인과 모든 비용을 책임져줬고, 파리에 있는 동안은 꼭 하루에 한두 번씩 방문했다 하니, 날 버리고 먼저 간 남편보다는 책임감 있네요! 여하간, 1854년 스미드슨은 유명을 달리하고, 죽어가는 사모님의 병상 앞에서 베를리오즈는 아들에게 그래도 내가 리치오랑 단 몇 년이라도 살아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 라고 말했다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나 듣고 알았다고 하는 아드님이나, 이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네요.

베를리오즈와 첫 부인 해리엇 스미드슨


어쨌든, 베를리오즈 사모님이 된 리치오도 오랫동안 사모님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8년 정도 베를리오즈와의 결혼생활 후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남기고 말이지요. 이거 또 미담인데, 베를리오즈는 리치오의 어머니를 자신이 죽을 때까지 챙겼다네요. 평소에 사모님께 좀 잘하시지, 쯧쯧.

베를리오즈의 두 번째 아내, 마이오 리치오

여하간, 둘째 부인, 첫째 부인 다 당시 파리의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혔기에, 베를리오즈는 묘지 방문이 잦았어요. 그런데, 끼는 속일 수가 없는지, 묘지를 지나다 만난 아멜리에라는 딸이라고 해도 의심 안 할 정도의 어린 아가씨와 사랑을 하게 되지요. 서로의 사랑을 편지를 통해 확인하던 베를리오즈와 아멜리에의 펜팔은 어느 날 아밀리에가 답장하지 않으면서 뚝 끊기게 되는데, 베를리오즈는 6개월쯤 후, 몽마르트르 공원묘지의 비석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게 됩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던 것이지요. 배우자 한 명을 떠나보내도 견디기 힘든데, 두 명의 아내와 한 명의 연인 그리고 아들까지 떠나보낸 베를리오즈의 삶은 음악적으로는 큰 명예를 얻었을지 몰라도, 사생활은 기구하다 못해 비극인 거지요. 베를리오즈의 첫 번째 교향곡 다섯번째 악장의 디에스 이라에(Dies Irae) 죽음의 미사곡을 쓴 것이 우연은 아닌가 싶기네요.

파리 몽마르트르 공원묘지의 베를리오즈


이렇게 많은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힘들어했던 베를리오즈는 1869년 3월 8일, 6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의 사체는 그의 두 명의 부인들이 묻힌 파리 몽마르트르 공원묘지에 안장되고, 첫 번째, 두 번째 부인 모두 이장을 해서 베를리오즈 옆으로 옮겨 왔다니, 천국에서도 처첩 갈등은 계속될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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