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비에니아프스키와 그의 아내 이사벨라 햄톤
폴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헨릭 비에니아프스키(Henryk Wieniawski, 1835-80)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우상입니다. 러시아가 지배하던 폴란드의 루블린에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만 8세에 파리 음악원에 정식 입학하고, 만 12세에 수석으로 졸업을 합니다. 졸업 후 두살 아래의 남동생과 본격적인 연주 여행을 시작하여 유럽 전역에 독주회를 열며 큰 성공을 했고, 자신이 연주할 작품을 직접 작곡해 자신의 화려한 바이올린 테크닉을 자랑했지요. 피아니스트인 안톤 루빈스타인의 초정으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교수로 자리를 잡으며 후일 러시아 태생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독특한 활 주법으로 알려진 "러시안 보우 그립"을 만들어 내고 안톤 루빈스타인과 함께 3년에 걸친 미국 연주여행을 성황리에 마무리 하지요. 이후 벨기에 브뤼셀 음악원으로 자리를 옮겨 유진 이자이 등의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해내기도 하지만, 지나친 음주와 흡연, 도박 등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1879년 자신의 마지막 연주회 때는 연주 중간에 이자이가 무대 위에 올라가 힘겨워하는 자신의 스승을 대신해 바흐 무반주 소나타를 연주했다고 해요. 이듬해 봄, 건강악화로 세상을 떠난 비에니아프스키는 동시대에 활동을 했던 연주자들이 기술의 발달로 자신들의 연주를 음원으로 남기고 떠난 것과는 달리, 그에 대한 무수한 뒷이야기와 작품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남긴 비에니아프스키에게도, 결혼만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국 연주여행을 하며 귀족인 이사벨라 햄톤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햄톤 백작은 자신의 귀한 딸을 폴란드에서 온 근본도 모르는 깡깽이 연주자에게 줄 수 없다고 펄펄 뛰며 반대를 했지요. 이에 비에니아프스키는 절망한 마음으로 "전설"이라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작곡하고 그 첫 연주에 이사벨라 햄톤의 부모님을 초대합니다. 비에니아프스키를 그저 거리의 악사 정도로 생각했던 햄톤 백작은 그의 아름다운 소리와 호소력 있는 연주에 감명을 받아 그를 사위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는 "전설"이 돼버렸지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테크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곡을 주로 작곡했던 비에니아프스키에게, 이 곡은 그의 비통한 마음과 이사벨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절절한 마음을 보여주듯, 서정적인 멜로디와 호소력 있는 전개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합니다.
비에니아프스키와 이사벨라는 어렵게 결혼한 이후 남부러울 정도로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일단, 두 부부는 일곱 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비에니아프스키가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연주여행을 다닐 때, 이사벨라는 비에니아프스키의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줄 수 있을 때만 남편을 따라다니고,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을 키워며 보냈다네요.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지만,, 비에니아프스키 부부는 일곱 명의 아이들 중 제일 첫 번째 아이만 돌을 조금 지나 세상을 떠났고, 다른 여섯 명의 아이들은 모두 장수했다네요. 막내인 레지나 비에니아프스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태어났다니 부부의 금슬은 좋았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술과 도박, 그리고 이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쉬지 못하고 연주를 했던 비에니아프스키는 점점 건강이 나빠져 갔습니다. 그의 말년은, 앞에 이야기한 것과 같이 연주회를 다 끝내지 못해, 제자나 친구들이 대신 연주를 해 주고, 그가 도박으로 탕진한 돈을 갚기 위하여 차이코프스키 등 그와 친했던 러시아의 친구들이 그를 위한 자선 음악회를 준비했지만, 미처 그 음악회가 열리기 전, 모스크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45세 생일을 몇 달 앞둔 채, 그의 시신은 많은 러시아 사람들의 애도 속에 장례식을 치르고, 바르샤바로 운구되어 폴란드에 안장됐습니다.
이사벨라와 비에니아프스키는 1860년 8월 8일, 파리에서 피아니스트 안톤 루빈스타인이 신부를 인도하고, 작곡가 로시니가 증인으로 서명하고, 뷔에탕의 바이올린 연주로 세상에 다시없을 결혼식을 올렸지만, 채 20년도 살지 못하고, 비에니아프스키가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게다가 젖먹이를 포함한 여섯 명의 아이들을 키워야 했으니, 결혼을 반대한 아버지의 말을 들을걸 하고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1남 5녀였던 비에니아프스키의 자녀들은 타이타닉호에서 숨진 딸 해리에뜨를 제외하고는 모두 장수하며 91세까지 산 이사벨라의 옆을 지켰습니다. 비에니아프스키의 마지막 딸인 레지나 비에니아프스키는 작곡가가 되어, 아버지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갔으나, 결혼과 함께 "포르도브스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네요. 비에니아프스키의 이름을 물려받을 아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3명의 딸들이 결혼하여 그의 자손들이 영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살고 있다네요. 가장 아쉬운 건, 비에니아프스키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그의 소리가 음원으로 남아 있을 텐데, 아쉽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그 음악을 들어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유진 이자이가 천상의 소리라고 추억했던 비에니아프스키의 아름다운 소리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천국에 가서 꼭 들어보고 싶은 소리로 전설처럼 내려오니, 그의 삶 자체가 전설이 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