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브람스만 좋아해야 하나요?
지난 주말, 코로나 팬더믹 때문에 미루어졌던 지인 따님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다녀왔습니다. 신혼부부의 선택인지, 아니면 코로나 영향인지, 야외에서 치러진 결혼식은 눈부시고 아름다웠습니다. 누구든 남이 하는 말에는 귀 기울이지 못하는 제가, 왜 주례사는 마음에 와서 꽂혔을까요. 신랑 신부가 함께 손잡고 들어온 꽃길이 가시밭길의 시작이기에, 앞으로도 꼭 손잡고 헤쳐 나가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와 닿더라고요.
요즘에는, 신혼부부의 취향대로 입장과 퇴장 시 음악을 골라 취향대로 행진을 하지만, 제가 자랄 때는 무조건 결혼식 하면 "딴 딴 다단~" 하고 시작하는 바그너의 음악이 결혼식 입장곡으로 쓰였습니다. 어릴 적, 보자기 두르고 엄마 립스틱 훔쳐 바르고 이 노래 부르며 결혼식 흉내 한 번 안 내고 자라난 여자 아이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틀에 박힌 듯, 입장은 바그너, 퇴장은 멘델스존의 결혼식 행진곡이었습니다. 게다가, 힘차고 박력 있게 신랑과 함께 걸어 나오는 멘델스존 행진곡 대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은 소녀가 돼서도 가끔씩 흉내 내던 놀이였습니다. 물론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의 무서운 진실을 알기 전까지 말이지요.
다행히, 지난 주말의 신혼부부는 두 번의 행진 다 클래식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다행이지요. 아무리 결혼 후에 가시밭길을 걷기는 해야 하지만, 바그너의 이야기처럼 비극적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바그너(1813-1883)는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파 후기의 작곡가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은 "로엔그린"은 바그너가 드레스덴에 살며 작곡한 2 개의 오페라 중 하나입니다. 바그너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심취해 있었고, 로엔그린도 그런 연장선에서 백조로 변하는 여주인공 엘사의 동생 이라던지, 성배를 수호하는 비밀의 기사단 등 신화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그냥 한 문장으로 풀어보자면, 여주인공 엘사는 작위를 물려받기 위해 동생을 숨기거나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자신을 위해 대신 싸워 줄 기사를 찾는데, 그게 바로 로엔그린입니다. 성배의 수호신 중의 하나인 로엔그린은 적들을 물리쳐 주고 자신에게 일정 기간 신분에 대해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때 바그너는 불후의 명작, 결혼행진곡을 엘사의 불행을 암시하는 행진곡으로 쓰게 되지요. 멋진 로엔그린과 결혼한 엘사 공주는, 절대로 묻지 말라는 부탁을 잊고, 로엔그린의 신분을 묻게 되지요. 자신을 옆 나라 왕자이자 성배의 기사단의 한 명이라고 밝힌 로엔그린은 신분이 밝혀진 이상 신의 명령을 수호할 수 없다며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엘사는 마법이 풀린 동생 곁에서 실신하고 만다는 결혼의 쓴맛을 보여주는 오페라라고 할까요? 물론, 결혼식장 나가는 순간부터 갈등이 시작되는 것은 맞지만, 너무나 비극적인 줄거리라 결혼식 가서 연주할 때도, 아니면, 행진을 보며 하객으로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있을 때도 가끔 뒷골이 서늘하긴 해요.
바그너는 이 곡을 작곡할 때 이미 유부남이었지만, 아내의 외도를 알고 다시 받아들인 터라 결혼하는 커플들에 대한 심술이었을까요? 외도에 사치에 잔소리까지 삼종 세트를 완벽하게 갖춘 부인 미나 덕분에, 빚을 잔뜩 지고 고향을 떠나 드레스덴에 안착하나 했더니, 이번에는 민주화 운동에 연루되어 또다시 드레스덴에서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중립국인 스위스의 취리히로 도망을 가고 이 작품은 1850년에 바이마르에서 스승이자 후일 그의 장인이 되는 리스트에 의해 초연되었다고 하네요. 바그너는 초연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는데 초연은 아주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네요. 당시 십 대였던 후일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국왕이 이 오페라에 너무 감명을 받아, 나중에 자신의 노인슈반슈타인 궁을 건축할 때 이때의 영감을 많이 표현했다고 하네요. 이 성은 디즈니랜드의 랜드마크인 디즈니 성의 모델로 유명하다 하니, 음악작품의 영향력이 참으로 놀랍네요.
아버지가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초연할 당시 13세였던 리스트의 딸 코지마는, 20세가 되는 해에 당대 최고의 지휘자 한스 폰 뵐로와 결혼했지만, 바그너를 흠모했다네요. 두 사람은 바그너의 이혼한 전 아내인 미나가 세상을 떠난 후 결혼하고 코지마는 2명의 딸과 아들을 낳고 바그너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 후 47년을 바이로이트 극장을 맡아 운영하고 활성화 시킨 후 남편을 따라갔다네요. 평생 결혼을 못한 아버지 리스트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고 갔다고 믿고 싶네요.
요즘, 어머님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보셔서 언제나 삐딱선인 나는 왜 맨날 브람스일까?라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브람스와 바그너는, 브람스가 20년이나 연하이지만, 독일의 후기 낭만 음악의 두 거장으로 불리는 작곡가들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행보가 너무 상반되기에, 두 작곡가의 작품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힘들어서 아닐까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이어가는 "고전"주의자들은 브람스의 음악을, 시대를 앞서가고, 유행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바그너를 선호했던 것 아닐까요? 사실, 결혼식장의 행진곡으로 들을 수 있는 바그너의 결혼행진곡 말고는 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그리 흔치 않으니, 엘레노아 사강도, 드라마 작가도 다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지 않았겠어요? 브람스란 클라라 슈만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라던지, 자신의 습작들을 고치고 또 고쳐가던 신중한 모습, 전통을 이어가려 애쓴 것이 보이는 작품들까지, 조금 더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것 아닐까요? 게다가 바그너는 히틀러의 최애 작곡가라는 이유로 전범이 아닌데도 전범의 오명을 덮어쓰기까지 했으니, 바그너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약간 유태인 혐오자인가 하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시대상황 아니었을까요?
저는 어떻냐고요? 저, 브람스 좋아합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아합니다. 바이올린을 위해 쓴 모든 곡을 다 연주해 본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절절한 선율이 연주하면서도 눈물이 흐를 때 도 있지요. 그럼 바그너는 싫어하냐고요? 아니요 바그너는 존경합니다. 시대를 앞선 화성과 15시간을 연주해야 하는 니벨룽겐의 반지의 전곡을 통일시키는 유도동기, 음악과 드라마가 별개인 것이 아니라, 통합 예술로서의 오페라를 추구했던, 바그너는, 약 50년 정도만 늦게 태어났어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능가하는 뮤지컬 작곡가로 돈과 명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제가 아무리 존경하고 흠모하는 작곡자라도, 그의 결혼 행진곡을 제 딸아이의 결혼식에 추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좀 무섭잖아요? 전 뭐에 맞추어 들어갔냐고요? 물론 바그너지요. 아버지께서 무대 울렁증 있으셔서 무지 연습했던 기억납니다. 그래서 설마 제 왕자님이 이웃나라에 보내진 건 아니겠지요? 그럼, 우물가에 가봐야겠네요. 개구리 왕자였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