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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Sep 25. 2020

전공의 일기.

5-14화. 또다시 혈뇨


"환자분 입실하셨습니다."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왔다. 소변줄을 통해 시뻘건 혈뇨가 배액 되고 있었다. 선홍색의 분명한 출혈이었다. 아마도 조직검사를 시행한 변연부에서 혈액의 누출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인턴이 환자를 수술용 침대로 옮겼다.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짙은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환의 하의가 벗겨지고, 수술을 위한 자세를 취했다.  


"또 피가 나네요. 최대한 빨리 끝내보겠습니다. 전에 해보셔서 아시죠?" 


"그려. 왜 자꾸 피가 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전에도 이선생이 수술해주고 피 안 났으니까 이번에도 잘 부탁해. 나 좀 살려줘. 죽겠어 진짜." 


"제가 최대한 통증 없이 빠르게 해 볼게요. 어제 수술한 부위 주변에 혈관이 파열되면서 피가 나는 것 같아요. 혹시 오전에 배에 힘을 많이 주셨어요?" 


"대변본다고 화장실에 앉아있긴 했어" 


"아마 약해진 혈관이 대변본다고 파열되면서 그런 것 같아요. 출혈 부위만 확인되면 금방 끝날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셔요." 


"그려 잘 좀 해줘" 


환자에게서 소변줄을 제거했다. 소변줄 끝에 혈괴가 딸려 나왔다. 환부를 소독하고 멸균 방포를 이용해 수술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를 가렸다. 준비가 끝났다. 


"이제 시작합니다. 배에 힘 빼시고 입으로 숨 쉬세요." 


"후~ 악!" 


"이제 거의 다 들어왔어요. 천천히 숨 쉬세요. 배에 힘주시면 시간이 더 오래 걸려요. 어려운 건 알지만 그래도 배에 힘 빼셔야 합니다!" 


환자의 요도는 어제 있었던 수술의 영향으로 염증소견이 관찰되었지만, 출혈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방광으로 내시경이 진입했다. 내부의 출혈 때문이지 시야가 좋지 않았다. 

 

"선생님 saline(생리식염수) 주입 속도 좀 올려주세요. TUR(경요도 방광 종양 절제술 용 수액줄) line 꺼내 주시고요." 


"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방광 내부의 출혈이 생각보다 심한 상태였다. 시야가 흐려서 내시경 카메라의 바로 앞도 분간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내시경을 방광벽에 최대한 붙인 뒤, 출혈이 있는 부위를 찾기 시작했다. 환자는 방광이 팽만되면서 통증을 더욱 심하게 호소하였다.  


'시야가 너무 안 좋은데...... 그렇다고 수액을 너무 많이 주입하면, 어제 수술 부위가 팽창하면서 없던 출혈도 만들어 낼 거야. 이거 어떻게 한담......' 


"선생님 TUR-line 나왔습니다. 벅비(bug-bee, 내시경 지혈술 기구) 드릴까요?" 


"네 지금 TUR-line으로 바로 교체하겠습니다. 벅비도 바로 꺼내 주세요." 


환자의 방광에 삽입되어 있던 내시경 카메라를 제거하자 시뻘건 혈뇨가 쏟아져 나왔다.  재빨리 수액줄을 교체하고 내시경에 벅비를 결착했다.  


다시 내시경이 방광에 진입하자, 훨씬 두꺼워진 수액줄을 통해 공급되는 수액량이 많아서인지 이전보다 시야가 좋아졌다. 내시경을 이용해 방광 내부를 살폈다. 출혈이 있는 부위는 내 예상과 같이 방광 후벽이었고, 어제 수술한 부위 주변이었다. 작은 혈관 하나에서 혈액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출혈부위 찾았어요. 이제 소작기를 이용해서 지혈할 겁니다. 조금 불편하실 수 있어요! 움직이시면 위험해요!" 


"아우 빨리 해줘. 소변 마려워 죽겠어!" 


[뚜- 뚜- ] 


벅비를 이용해 출혈부위를 지혈했다. 다행히 작은 혈관이었기에 국소마취로 시술이 가능했다. 만약 방광 팽창에 따른 점막 전반에 걸친 출혈이었다면, 국소마취 수술로는 어림없었을 것이다. 무사히 지혈을 마치고, 수액의 속도를 조절하여 방광의 압력을 낮춰가며 미세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더 이상의 출혈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Foley 24 fr. 3 way(혈뇨를 완화시키기 위한 세척액 주입구가 있는 소변줄) 주세요. 할아버지 이제 끝났어요! 이제 피 안 나요!" 


"그려? 그래도 오늘은 지난번보다 괜찮았어. 고마워" 


"안심하긴 일러요. 또 배에 힘이 들어간다거나 하면 출혈이 다시 생길 수 있으니까, 무리하지 마셔요! 아셨죠?" 


"이선생이 해줬으니까 걱정 안 해. 고마워!" 


"네 조심히 올라가셔요"


환자가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수술기록지를 작성했다. 환자의 차트를 보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직검사 결과를 조회했다.  


'어? 이렇게나 빨리 가판독이 입력되었다고?' 


병리 판독은 보통 평일 기준 3일에서 7일 정도 소요된다. 특수 화학염색이라는 절차가 추가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이 환자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으로, 하루 만에 가판독이 입력되어 있었다. 가판독은 확정 판독이 있기 전 판독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가판독이 입력된 경우에는 보통 다음날 확정판독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결과 확인 일자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내일이면 이 불안함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57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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