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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Sep 26. 2020

전공의 일기.

5-15화 육종

사진. 서울아산병원 BS Hong

'아...... 육종(Sarcoma)이네......'

우려했던 일이 생겼다. 방광에서 발견된 종양은 진행속도가 빠르고, 예후가 좋지 않은 육종이었다. 환자의 차트를 확인하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암이라고 모두 같은 암이 아니다. 종양의 종류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환자의 얼굴을 보기가 두려워졌다. 좋은 결과 있을 거라 위로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환자의 병실을 찾았다.


"이선생 왔어? 교수님 오셨다 가셨어. 수술을 또 하자고 하시네 이번엔 큰 수술이라고......"

"네. 조직검사 결과를 저도 방금 보고 왔어요."

"수술하면 살 수 있는겨? 많이 아픈가?"

"꽤나 큰 수술이에요. 방광에서 발견된 종양의 성상이 그리 좋지 않아요. 진행도 빠를 수 있어요. 서둘러서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사실 나는 이번에 내시경 수술만 하면, 피도 안 나고 좋아 질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뭐여. 환장하겠어. 밥도 목구녕으로 안 넘어가."

"할아버지, 이번에 하시게 될 수술은 사실 꽤나 큰 수술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 수술이에요. 방광 전체를 절제하고, 주변에 있는 림프절까지도 모두 떼어내야 하고요. 소장을 잘라서 소변이 나오는 길을 만들어 줘야 해요. 배를 명치부터 치골까지 절개하고 수술하셔야 한다고요."

"무서워 그만 혀"

"그러니까요. 이 수술받으시려면, 몸 상태가 좋아야 해요. 식사도 잘하시고 운동도 좀 하시고 하셔서 몸이 큰 수술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컨디션을 끌어올리셔야 해요."

"이선생 그만 얘기 혀. 걱정 때문에 나도 돌아버리겠으니까. 오늘은 이만 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절모 할아버지 상심이 느껴졌다. 전립선에 암이 생겨 고생하고, 이제는 방광에 또 다른 암이 생겨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건강해진 모습으로 병원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던 내게도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 기운 내셔요. 이겨내실 수 있어요. 지금 이렇게 멀쩡하시잖아요. 수술 전까지 몸을 만드셔야 해요. 아셨죠? 수술하시고 회복 잘하셔서, 오래오래 저 보셔야죠. 기운 내세요. 아셨죠?"


"......"

환자는 병실 밖으로 보이는 한강을 바라보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 나 역시 저녁노을이 흩뿌려지는 한강을 함께 바라보다가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라면 그나마 위로가 되었을 것을. 너무나 눈부신 풍경이 지금 할아버지와 나, 우리의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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