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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Oct 02. 2020

전공의 일기.

5-16화 노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하루 종일 수술방에  갇혀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기에 중절모 할아버지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늦은 퇴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내일 그 할아버지 퇴원하신다. 수술을 안 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설득을 해도 방법이 없네. 너한테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내일 퇴원하신다고? 왜 수술은 안 받으시겠다는데?" 


"몰라. 이대로 수술 안 받으시면 1년 안에 사망하실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도무지 설득이 안된다. 네가 가서 얘기해볼래?" 


"음...... 왜 그러셨을까..... 그러실 분이 아닌데...... 내 말이라면 듣는 척이라도 해주실 것 같긴 해. 내가 가서 말씀드려볼게" 


중절모 할아버지를 담당하고 있던 동기와의 대화 후, 할아버지를 찾아뵙기 위해 다시 가운을 챙겨 입었다. 어제 있었던 환자와의 마지막 대화가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왜 안 받으시려 하시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진짜 위험할 텐데......' 



환자를 설득해서 어떻게든 수술을 하시도록 말씀드릴 요량으로 병실로 들어섰다. 환자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붉은 석양이 한강에 반사되어 병실을 휘감고 있었다. 하얀 침대 커버와 베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 왜인지 나를 너무 불안하게 만들었다.  


"선생님 할아버지밖에 나가신 지 꽤 됐는데 아직 안 들어오시네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병실에 입원한 다른 환자가 할아버지의 행적을 알려주었다. 병실을 나와 할아버지를 찾았다. 내가 왜 이리도 중절모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쏟는지 나조차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왜인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병동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름다리에서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우두커니 뒷짐을 지고 밖을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섰다.  


"어? 이선생! 왔어? 어제 내가 말이 좀 심했는가?"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 심해요. 전혀 그런 거 없었어요. 저녁은 드셨어요?"  


"어 먹었지. 이선생은?" 


"저는 집에 가서 먹으려고요. 담당의에게 얘기 들었어요. 수술을 안 받으시겠다고요?" 


"그려. 이제 그만하려고. 이제껏 살았으면 많이 살았지 뭐. 그만하고, 집에 가서 마누라랑 여행도 다니면서 좋은 것도 먹고 그러려고." 


"수술하셔요. 수술하셔야 합니다. 이 병은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요.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빠르게 퍼져서 고통스러워지실 거예요." 


"나도 알아. 그 퉁퉁한 선생님이 그러더라고 1년도 안 남았을 거라고." 


"맞아요. 1년도 안 남았을 거예요. 정말로 꼭 수술받으셔야 해요." 


"이선생. 내가 수술받으면 얼마나 더 살 거라고 생각해?" 


할아버지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수술을 하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완치가 될 것인가는 지금 당장에 장담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수술을 하게 되면 환자는 방광을 드러내고, 소장을 이용해 소변이 나오는 길을 배 밖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평생 요루 주머니를 달고 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잦은 요로감염으로 몇 차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지 모른다. 수술 후에는 적어도 2주 이상은 입원을 해야 할 것이고, 6시간이 넘는 대 수술을 하고 나면, 기력을 회복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수술을 하다가 대량 출혈로 사망에 이를 수 있고, 회복 과정 중 패혈증으로 위급한 상황을 마주할 가능성도 있다. 나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이선생. 이 병원 말이야. 내가 이 병원 지을 때, 전기 공사를 했었어. 이 병원에 깔린 전선 중에 내가 관여 안 한 부분이 없어. 이걸 지을 때까지만 해도, 이 병원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하나도 없었어. 어서 퇴근해서 내 새끼들 닭 한 마리 사가다 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 고된 일 참아내고 버텼는데...... 근데 말이야 지금 여기서 이렇게 한강을 바라보고 서 있으니까. 내가 참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환자들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병원을 지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야. 내가 지금 벌 받는 것 같아" 


"무슨 그런 말씀을 하셔요. 그런 거 아니에요." 


"이제 그만 할려. 마누라랑 놀러 다니다가 조용히 갈래. 이선생도 그리 알아" 


"......" 


"나 내일 퇴원하라니까 그렇게 할게. 이선생 바쁜 거 아니까 내일은 오지 말어. 내가 나중에 밥 한 끼 사줄 테니까. 간호사 선생님한테 번호나 좀 남겨줘" 


"......" 


"이선생? 알았지? 어서 가봐. 애기들 기다리겠네. 노인네가 말이 많아서 미안혀. 허허허" 


노을 졌던 한강에 어둠이 내리 앉았고, 나는 할아버지를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무조건 설득을 해서 병과 싸워보겠다며, 나만 믿고 따라오시라는 말을 자신감 있게 던지지 못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병이었지, 환자가 아니었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59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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