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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Oct 25. 2020

전공의 일기.

5-25화 유착

수술은 험난했다. 전립선 암으로 이미 한차례 수술을 시행했었고, 잔여 암으로 인해 방사선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골반강 내의 장기들이 구분이 지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착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손가락을 이용하여 주변의 장기와 박리를 진행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전기 소작기를 이용해 경험과 감으로 장기를 박리해 나아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예상보다 험난한 상황에 의료진은 예민해져 있었다.  


"석션(Suction, 음압을 이용하여 체액을 흡인하는 기구) 좀 똑바로 해!" 


"네 알겠습니다." 


"스무스(Smooth forcep, 이가 없는 포셉으로 내부 장기에 손상을 주지 않는다)로 여기 잡아" 


"네 교수님" 


경험 많은 교수님의 리드로 조직을 절제하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을까? 환자의 골반강에서 방광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방광에 자리 잡은 육종(Sarcoma)이 방광을 넘어섰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유착면을 최대한 방광으로부터 멀리서 절제하여 잔여 암이 남아있지 않도록 진행되었다. 기이한 형체의 방광을 완전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골반강 내 타 장기와 완전한 분리가 필요했다. 수술 시간은 어느덧 3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선생 이쪽으로 넘어와. 인턴 선생은 그 자리에서 배를 좀 더 벌려봐" 


"네 교수님" 


"믹스터(mixter forcep), 이선생 보비 들어" 


[뚜--------뚜--------] 


한 시간이 더 지나, 방광 주변의 유착부위가 모두 절제되었고, 골반강 안에서 분리되었다. 요도와 연결되는 방광의 목 부분을 절제하여 동결절편 검사를 시행했다. 동결절편 검사는 일종의 간이 검사로, 수술장 내에서 절제 부위의 암 침범 유무를 확인하기에 적합하다. 영구 검체의 경우에는 일주일이 소요되지만, 동결절편 검사의 경우 약 20분 정도면 암의 침범 유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절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제공해준다.  


https://www.mskcc.org/


"Urethra margin(요도 절제면), Bladder Rt. lateral wall(방광 우측 벽) frozen bx.(동결절편 검사) 나가주세요. 장 정리하고  urostomy(요루) 만들자"  


"조명 조절하겠습니다." 


소장을 이용한 요루 조설술이 시작되었다. 골반강 내 상당한 유착으로 방광을 적출하기까지 시간이 지연된 터라, 마음이 조급해졌다. 길어지는 수술 시간은 환자의 회복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정확하지만 빠르게 나머지 절차들이 진행될 필요가 있었다. 


소장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혈관을 피해야 하므로, 조명을 환자의 머리 쪽에서 다리 방향으로 조절하여, 절제할 장 부분을 조명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소장 주변의 지방층에 숨어있던 미세한 혈관구조를 확인 한 뒤 장을 겸자로 고정하고, 절제했다. 30cm 정도의 장을 절제하여 소변이 지나는 길을 만들어 주는 과정으로, 장괴사 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네 3번 방입니다." 


"병리과입니다. 등록번호 00000000, 환자분 성함 000 지금 수술 중이신 방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보내주신 Urethra margin positive입니다. bladder Rt. lateral wall은 negative입니다." 


"감사합니다." 


병리과에서 동결절편 검사에 대한 결과를 통보해왔다. 방광목과 연결되어 있던 요도의 절제면에서 암세포가 확인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절제면에서 더 이상 암세포가 확인이 되지 않을 때까지 요도를 추가로 절제하여야 한다.  


"일단 small bowel(소장) 정리하고, Ureter(요관)하고 uretrha(요도) 추가 절제해서 frozen 다시 나가자" 


"네 교수님"

 

소장으로 요루를 만들면 신장으로부터 생성된 소변이 내려오는 통로인 요관을 소장으로 만든 요루에 심어주어야 한다. 직경 10mm 미만의 얇은 요관을 소장으로 심어주는 절차는 적절히 봉합이 되지 않았을 경우 소변이 새어나갈 수도 있고, 너무 세게 봉합을 하게 되면, 주변 장 조직의 괴사나 요관-요루 이행부의 협착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도 요관으로의 암 침범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기존 요관과 방광이 만났던 원위 요관 부위를 하방에서부터 절제하여 동결절편 검사로 침범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Lt. ureter, Rt. ureter, urethra resection margin 추가로 접수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동결절편 검체를 간호사에게 넘긴 뒤 양측 요관을 소장에 이식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긴장을 놓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 순간의 실수가 환자에게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면, 수술이 끝나고 환자가 수술장을 나설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요루에 환자의 요관이 심어 지고 나면, 환자의 우측 하복부에 소장 요루를 고정해야 한다. 파랗게 표시된 할아버지의 피부에 동그란 절개를 넣고, 피하조직을 정리하여 요루를 배 밖으로 내었다. 복벽에 요루를 고정하기 전 병리과로 의뢰된 양측 요관과 요도의 절제면 침범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모두들 숨죽이며, 수술방 전화를 응시하고 있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네 3번 방입니다." 


"병리과입니다. 등록번호 00000000, 환자분 성함 000 지금 수술 중이신 방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보내주신 2번째 Urethra margin(요도 절제면)과 양측 Ureter margin(요관 절제면) negative입니다." 


"감사합니다." 


다행히 추가로 절제한 절제면에서는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고, 요루를 복벽에 고정하는 절차가 이어졌다. 소장의 일부를 살짝 뒤집어 할아버지의 복벽에 고정하자 창백한 할아버지의 복벽에 빨간 소장이 대비를 이루어 기이한 안도감을 불러왔다. 수술이 비교적 잘 마무리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https://www.mskcc.org/


"피 잡고 배 닫아" 


"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요루에서 흘러나오는 소변을 확인하고 지혈을 시작했다. 다행히 출혈은 심하지 않았고, 유착면에서도 특이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양측 하복부에 지연 출혈과 Leakage(봉합부위에서 소변이 새어 나오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를 확인하기 위해 JP catether를 삽입하고, 복벽을 닫았다. 복벽에 고정한 요루에 Urine bag(소변주머니)을 연결하자 7시간에 동안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수술 끝났습니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75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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