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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Nov 02. 2020

전공의 일기.

5-26화 병실에서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도 수고하셨어요~"



장장 7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났다. 할아버지의 요루에서는 맑은 소변이 거침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착이 심한 터라 골반강 내에서 방광을 분리하기까지 상당한 수고를 들여야 했으나, 요루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변을 바라보며,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났음에 감사했다. 복강 내 유착을 박리한 부위에서는 다행히 출혈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출혈의 여부를 살피며, 지혈을 시행한 뒤 복강 내 장기를 정리하고, 근막을 단단히 닫아 주었다. 행여나 근막이 느슨하게 닫히게 된다면, 할아버지 복부의 큰 절개창을 통해 복강 내 장기의 탈출(탈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야 했다. 마지막으로 피부봉합을 끝내곤 마취 기계에 의존해 숨을 이어가던 할아버지를 깨우는 과정이 이어졌고, 할아버지는 스스로 호흡을 회복했다. 할아버지가 이송용 침대에 옮겨져 차가운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그래도 유착이 잘 박리된 건 정말 다행이야. 손도 못 대고 닫을까 봐 걱정했는데......' 


수술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며 수술장에서의 일들을 복기했다. 먼 길, 긴 시간을 돌아왔지만 지금 할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오늘에서야 이룰 수 있어 다행이었다.  


탈의실에 들어서서 마스크를 내렸다. 깊은 한숨과 함께 긴장이 터져 나왔고, 의자에 앉아 벽에 등을 마주했다.  


'간에서 보이던 결절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데......' 


CT 소견으로는 아직 전이 여부를 확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불안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방광을 잠식한 그 종양의 성격이 무척이나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수술로 완전한 절제를 해 두었지만,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려운 현미경적 침윤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큰 고비를 넘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선생님, 환자분 회복실에서 올라오셨어요. Vital sign(활력징후)는 특별하게 이상한 점은 없고요. JP는 bloody 하게 30cc 정도 배액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특별한 comment 있을 때 까지는 2시간마다 활력징후 확인해 주세요. 요루 배액량도 꼭 챙겨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오후 회진시간이 다가왔다. 입원한 환자의 명단을 출력해 오늘 있었던 검사 결과들을 정리하고, 수술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괜찮으세요?" 


"아우 우...... 이선생 아파...... 아파 죽겠어...... 진통제 좀 줘......" 


할아버지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신음하고 있었다. 장장 7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받고 난 환자의 상태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할아버지의 의사표현은 확실했다.  


"지금 무통주사 들어가고 있어요. 여기 버튼 보이시죠? 이거 누르면 약이 주입되는데 최소 간격이 있었어, 15분마다 한 번씩 누르셔야 해요." 


"저거 눌러도 아파. 아파 죽겠어. 이선생 진통제 좀 줘. 너무 아파" 


"엄청 큰 수술받으셨어요. 많이 아프실 거예요. 그래도 내일이면 오늘보다는 훨씬 좋아질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일단은 제가 진통제 다른 걸로 한번 더 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선생님. 저희 아버지 수술은 잘 된 건가요?" 


"네. 수술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되었습니다. 자세한 경과는 조금 이따가 교수님과 같이 와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곧 교수님 나오실 시간이니까 자리 비우지 마셔요. 조금 이따가 뵙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상태는 좋았다. 통증을 심하게 호소하기는 했지만, 점차 좋아질 것이 분명했고, 수술 후 시행한 혈액검사와 흉부 엑스레이, 심장 검사 모두 정상범위에 있었다.  


"오늘 수술하신 000님 입니다. post op lab(수술 후 시행한 혈액검사) 특이소견 없습니다." 


"많이 아프시죠? 유착이 심해서 고생을 좀 했는데 잘 끝났어요.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고 이제 회복에 집중하세요" 


"교수님 혹시 전이는 없었나요?" 


"육안으로 봐서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수술장에서 시행한 간이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는 곳까지 절제를 해두었으니 너무 심려 마세요.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다시 설명을 드리죠"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78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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