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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Sep 08. 2020

면접, 자기 PR,  광고의 벽, 절반의 성공인가?

KAL입니까? JAL입니까?

    

요즈음 취업 면접시험을 볼 때 자기소개 1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짧은 1분이 합격, 불합격의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면접관인지 논리를 좋아하는 면접관인지 감성을 좋아하는 면접관인지, 취향은 모르지만 1분 안에 상대방의 머리나 가슴에 자신을 각인시켜 깊은 인상을 남겨야 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1분 안에 나를 다 보여 주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자기소개 1분 스피치를 가르치는 학원도 많이 생겼다.

오래전 공무원 시험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내게 물었다.     


“영어 회화는 상· 중· 하 중 어느 정도 하십니까?”     


어떻게 답할지 단순한 잔머리가 순간 회전을 한다.

‘상’은 너무 잘해서 시킬 것 같고 ‘하’는 면접 점수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가장 평범한 ‘중’이라고 대답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창밖에 비행기가 날아간다. 영어로 해보세요!”     


느닷없이 훅 들어오는 질문에 비행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필이면 면접 보는 오늘 창밖에 비행기가 왜 날아가야 하는지...

비행기도 전투기인지, 종이비행기인지, 여객기가 날아가는지 질문이 명확하지 않았다.

사람을 얼굴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면접관도 영어보다는 막걸리에 가까워 보였다.

지금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드물었다.

그렇다고 그 시대 사람들이 머리가 나쁘다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그런 건 아니다.

문법과 단어 숙어 암기 위주의 교육이 낳은 결과다. 듣기 평가란 말 자체가 없었다.  

군대서 전역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군인정신이 발동해 면접관에게 물었다.


“면접관님 전투기입니까? 여객기입니까?”

면접관이 빙긋이 웃으면서 내 얼굴을 쳐다본다.

“여객기로 합시다.”


여객기라, 의문이 하나 더 생겼다.  

KAL입니까? JAL입니까?

질문을 하려다 면접점수에 영향을 끼칠까 봐 꿀꺽 삼켜버렸다.

오래 생각하기도 싫고 어차피 완벽한 문장은 만들지 못할 것 같아, 명사 하나와 동사 하나로 심플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답했는지 상상에 맡기겠다.  ~ing를 사용했던 것 같다.

면접관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찜찜해 면접관에게 자백했다.


“영어 회화 수준을 ‘하’로 하면 안 될까요?”  

“그럼 ‘하’로 고쳐도 괜찮겠습니까?”     

"예 동의합니다."


참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면접관도 나도, 면접실의 사람들이 잠시 웃고 넘어간 적이 있었다.

이 일이 같은 동기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자기  PR( public relation)에는 실패했지만 이름을 알렸다면 절반의 성공으로 봐야 할지.  

그 당시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없는 한, 어차피 성적순으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던 시기였다.


현대 사회는 자기소개, 자기 PR은 필수가 되었다. 신생 연애 기획사도 신인가수나 연기자를 알리기 위해 신발이 다 닮도록 방송국이나 언론매체에 드나든다고 한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자치 단체장들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축제 등 각종 행사 일정을 방송이나 언론매체에 광고를 한다.       


출판업계도 마찬가지다. 인지도가 높은 작가의 책은 굳이 광고가 필요 없겠지만, 인지도가 낮거나 신인들의 좋은 책은 대부분 광고가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폐지로 사라질 가능성이 많다.

어떻게 보면 광고가 베스트셀러를 만든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서점 매대 중앙 자리에  연예인이 저자인 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인지도에 따른 호기심을 유발한다. 물론, 연예인 중에서도 훌륭한 작가분들도 많이 있다.

이름난 대형 출판사는 덜하겠지만 재정이 열악한 대부분 출판사는 광고비용 부담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인지도가 떨어져 홍보 부족으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사라지는 좋은 책들이 많이 있다.

출판사도 영업이익을 남겨야 하니 인지도가 높은 작가를 선호할 것이고, 인지도가 떨어지는 작가의 책을 광고비용까지 지출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묵묵히 하고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불평불만 없이 잘하는 분들이 많다.

언젠가 상사들이 인정해 줄 것이고 그러면 승진도 순리대로 되리라 생각한다.

직장에서 이런 분들이 승진하고 혜택도 주어져야 하는 게 올바른 직장이고 건전한 사회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직장에 대한 실망감도 느끼게 된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을 그것도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업무량을 사흘 만에 한 동료가 상사에게 인정을 받고 승진도 남보다 빠르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가 한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PR을 시작한다. 상사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한다.

더 웃긴 것은 상사도 실상을 알면서 모른 척해준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은 상사에게 자기 PR을 하지 않는다.

성격상 자기 PR을 능수능란하게 하지도 못한다.

사회 민주화도 중요하지만 직장 민주화가 더 절실한 현실이다.     


사후에 유명해진 예술가들이 무수히 많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그분들이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고.

시대를 앞서갔는지,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없었는지,

주류에 밀려 자기 PR에 실패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삶 속에 녹아있는 진실이,

자기 PR로 위장한 위선보다 앞서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유명 작가의 좋은 책들도 당연히 사랑받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PR, 광고의 벽을 넘지 못한,

무명작가의 좋은 책들이 폐지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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