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진실을 말하는 게 두려웠습니다.
진실 고백으로 비겁자가 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석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끔 쓰는 말이다.
이 말이 무심코 내 입에서 나올 때 나도 놀란다.
정기적인 모임이든 산행 약속이든 자주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
둘만의 산행일, 만날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전화를 하면 그때서야 일이 있어 갈 수 없다고 한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그 일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모르고 산행 약속을 잡았다면 상대방에게 미리 알려주는 게 예의다.
모든 직장인에게 휴일은 소중한 시간이다. 휴일 때문에 직장을 다닌다는 사람도 있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즉시 알려주는 게, 휴일을 즐길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당일 날 약속 파기가 빈번한 사람은 "늑대가 나타났다"이다. 주위 사람들이 믿지를 않는다.
여기 약속을 어긴 두 사람이 있다.
평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어쩌다 약속을 어기면 이유를 들어 보고 즉시 수긍하고 넘어간다.
그 반대의 사람이 약속을 어기면 어김없이 언행일치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것이 아니라, 가진 떡 다 빼앗을 기세로 따진다,
심지어 약속을 어긴 과거사를 하나하나 소환해 언행일치를 강조한다.
이번만은, 전자보다 후자의 사람이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후자를 더 질책한다.
경험상,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람은 평소 남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술기운을 빌려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자주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내 행동을 말하려 한다. 개개인의 사정이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친밀도나 사적인 감정을 앞세워 판단을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
언행일치를 잘 지키며 살아왔던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렇지 않다.
지키며 살아온 것이 과연 60%를 넘을지 의문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 실천 여부를 판단한다면 10%를 넘을지 의문이다.
약속 중 가장 지키지 않는 게 자신과의 약속이다.
나만 눈을 감고 입을 다물면 아무도 질책할 사람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전화 통화와 업무적이든 사적인 대화든, 아니면 혼자서 중얼거리며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든, 그 수많은 말에 대해 일치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무실에서 퇴근 시간 후에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온갖 핑계와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도망가듯이 퇴근을 한다.
후배들에게 올바른 직장 생활에 대해 말을 하던 나는 없고, 퇴근을 서두르는 또 다른 내가 있다.
가족과의 약속은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지인들이 어렵게 꺼낸 부탁은 평소의 친분보다 실익을 계산해 거절한다. 이런 내 마음도 편하지가 않아, 결국 나를 합리화시키려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나 자신마저 속이며 살아왔다.
나서야 할 상황에 나서지 못하고, 뒤에 숨어 억지스러운 정당성의 논리를 만들고 있다.
나는, 나에게 너무나 관대했습니다.
잘못이나 허물을 덮으려고 자신을 철저하게 속이며 살아왔습니다.
나에게 진실을 말하는 게 두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신념을 부정하고,
행동하지 못한 비겁자가 되기는 싫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위로를 가장한 변명으로 포장을 합니다.
그 포장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지.
신념, 소신, 잠시 접어두고 꽃길만 가자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가시밭길을 지나야 더 아름다운 꽃길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항상 편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속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별생각 없이 나와 뒷거래를 합니다.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또 다른 나를 만들었습니다.
둘의 거리가 살아온 세월만큼 멀어져 있습니다.
이 불편한 동거, 여기서 끝내려 합니다.
진실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나에게 진실을 고백하자.
인정하자, 말만 앞세웠다고, 실천하는 용기가 없었다고,
진실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또 다른 나와 하나가 되자.
지금부터, 둘이 아닌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