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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Aug 25. 2020

부지깽이 시론

이 시대의 어머님


시인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칩니다.

아주 드물게 일필휘지로 한 편의 시가 완성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는 시인의 피와 땀을 요구합니다.  

오죽하면 피의 잉크로 시를 쓴다고 하겠습니까.

참선 수행 중인 스님이 화두를 한시도 놓지 않듯이 시인 역시 시라는 화두를 머릿속에 24시간 붙잡고 삽니다. 그러다, 참선 중인 스님이 대오각성하여 오도송을 읊듯이 한 편의 시가 완성됩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만들어 놓은 한 편의 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때로는 실망을 안겨 주면서 바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고 국을 끓였습니다.

논과 밭이나 생업에서 일이 끝나면 부엌에서 가족들의 밥을 짓습니다.

논, 밭, 생업, 부엌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칩니다.     


부엌에는 모든 살림 도구가 있습니다.

살림 도구라 부르기에는 좀 그렇지만 부지깽이란 것도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불을 헤치거나 거두어 넣거나 끌어내는 데 쓰이는 가느다란 막대기입니다. 이 가느다란 막대기는 일생을 아궁이 불 속에서 살아갑니다.

부지깽이로 불 조절을 잘해야 타지 않은 밥과 뚝배기에 담긴 노릇노릇 잘 익은 계란찜도 먹을 수 있습니다.

팔 길이만 한 부지깽이 하나가 버티는 기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입니다.

불에 가까이 있다 보니 자기 몸이 타는 것입니다.

밥 한 솥, 국 한 솥이 완성될 때마다 길이는 짧아져 결국 손잡이만 남은 부지깽이는 아궁이로 들어가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사라집니다. 자식 하나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지깽이가 불에 탔을까?

우리 어머님들이 부지깽이 같은 삶을 살다 가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이 불길에, 생살이 타는 줄 알면서도, 성인이 다 된 아들딸이 혹시나 잘 못 될까, 오늘도 끝없이 자기 몸 태우시는 이 시대의 어머님.         



부지깽이 시론    


한낱 폐지로 남을 시론만 가지고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네

보이는 게 다 시라는데

가느다란 부지깽이 하나로

일생 세 편을 남기신 어머니

시의 골격에 언어의 핏줄을 만들고

거친 행과 연에 상처는 받지 않을까

진흙탕의 여백에 빠지진 않을까

불붙은 몸 활활 타는 줄도 모르고

그만큼의 생이 짧아지는 줄도 모르고

마디마디 언어를 조심조심 연결한다

생살이 타는 팽팽한 긴장 속에

수없는 부지깽이 수명을 다할 때

밥주걱은 반달이 되고

마침내, 한 편의 시 세상에 내민다

가누기 힘든 몸 겨우 일으켜 세워

지구에 첫발 내디딘 저 여린 문장에

손과 시선은 또다시 살피고 살피신다    


오늘

시인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당신은 아직도 나를 퇴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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