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가난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신이 내린 천직
구름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것도, 여백의 미를 살려 큰 도화지 위에 딱 한 그루만 그렸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미술 시간입니다.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플라타너스 그늘에 앉아 무얼 그릴지 생각 중입니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큰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그저 시간만 보내는 수업입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열두 가지 색 크레용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12색 16색 24색 32색으로 크레용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 12색입니다.
하늘은 파란색, 땅은 검은색, 나무는 나무색만 있으면 되는데, 학교 앞 문구점에서 왜 열두 가지 색을 한 세트로 파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미술 시간에 위 세 가지 색 외에 다른 색은 사용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세 가지 색만 사고, 남은 돈으로 군것질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합니다.
친구들은 12색이 골고루 닳아 없어져 새 크레용을 사는 데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 3가지 색만 닳아 없어지고, 나머지 색은 처음 샀을 때 그대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세 가지 색을 사기 위해 새 크레용을 삽니다.
부모님은 이해를 못 합니다.
세 가지 색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아들의 미술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크레용이 많이 남아있는데 사야 한다고 조르는 나와 의견 충돌이 자주 일어납니다.
공부를 국, 영, 수 세 과목의 책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했으면 부모님이 참 좋아했을 텐데.
나무를 그리려다 손이 멈췄습니다.
구도(構圖)를 잡는 것이 큰 고민거리입니다.
무슨 일이든 첫출발, 기획서가 중요합니다.
나무의 위치를 도화지의 중앙에 그려야 할지, 오른쪽 아니면 왼쪽에 그려야 할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그림이 살아나는데 나에게 첫 단추는 나무였고 나머지는 문제도 아닙니다.
나뭇잎을 그리는 건 나만의 숨겨진 비법이 있습니다.
나뭇잎 하나하나 그리고 있는 친구들이 안쓰럽게 보입니다.
나무줄기에 큰 타원형 하나 그리면 그 안에 나뭇잎이 다 들어 있는 것인데, 왜 나뭇잎 한 잎 한 잎 세세하게 그리는지, 잎이 떨어지면 어차피 나무줄기만 남을 텐데, 시간과 크레용을 낭비하면서 저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큰 타원형 하나로 모든 잎을 포용하는 아주 경제적인 마인드를 가졌었나 봅니다.
하얀 나무를 그렸다 하고 이대로 제출하자는 유혹도 뿌리치고 한참 동안 나무 한 그루를 어디에 그려야 할지 도화지를 내려다봅니다. 그때, 10분 남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을 차립니다.
다급한 마음이 도화지의 중심에 나무를 심고 하늘과 땅의 색을 반대로 칠했습니다.
내 그림을 보신 선생님이 “구름 위에 나무를 심었네!” 한 마디 툭 던집니다.
친구들이 내 주위에 우르르 몰려들고 나를 보며 웃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그림은 감히 접근 못 할 신성한 영역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신으로 보였습니다.
백지 위에 수평의 바닥에, 기와집이 지어지고 새가 날아다니고, 온갖 아름다운 색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고기 잡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시냇물을 따라 흘러갑니다.
백지 위에 입체감과 세상 모든 소리와 향기를 담을 수 있다니, 그들이 신이 아니고 누가 신이겠습니까?
나는 지금도 화가들을 보면 경외감을 가집니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능력을 갖춘 것이 부럽기도 하고, 붓이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닫히는 것에 감탄할 뿐입니다.
입대 전,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와 자주 어울렸습니다.
친구는 그림 그릴 도구를 챙겨 진주 남강변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나는 구경을 합니다.
나무로 된 이젤에 캔버스를 올려놓고 건너편 산을 스케치합니다.
순식간에, 건너편 산을 캔버스로 옮겨 놓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멋있다고 한마디씩 합니다.
나는 친구 옆에 바싹 다가앉아 내 친구임을 은근히 알립니다.
시 공부를 하다 보니 흰 종이와 문장에도 입체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그 속에 날아다니는 새들과 진솔한 인간의 삶이 보입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시, 가슴 한쪽이 울컥하는 시,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는 시, 천 길 낭떠러지에서 나를 잡아주는 시, 이런 시를 읽고 있으면 희망이 솟고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낍니다.
화가나 시인이나 공통점이 많겠지만,
대부분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산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일을 놓지 못합니다.
마치 신이 내린 천직이라 생각하고, 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듯,
오늘도 곳곳에서 가난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