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도 아니고 마음을 이해했으면 100% 내 편인데 ,,,
“마음은 이해하는데...” 그다음 말이 무섭다.
행동도 아니고 마음을 이해했으면 다 이해한 건데, 무슨 말이 필요한지.
지인이나 직장동료와 술자리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사회나 직장 생활에서, 어렵고 귀찮은 일은 나에게 시키고 좋은 일은 자기들끼리 나눠 먹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상대방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제3자가 "그 팀은 일할 사람 최 대리 밖에 없어요"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자존심도 상하고 바보 취급당하는 느낌도 들고 하여간 기분이 좋지 않다.
이 불합리한 모순을 타파하려고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벼들 수도 없다.
그럼 그날부로 승진에서 아웃이다. 그러니 참고 혼자 끙끙 앓을 때가 많다.
그럴 때, 친하게 지내는 동료나 지인들을 불러 모아 술좌석을 만든다.
분위기 무르익으면 억울한 사연을 어렵게 이야기한다.
“업무 시간 중에 볼일이 있어 은행에 갔다 왔는데”
대부분 사람은 가만히 듣고 있거나 '응' '그래서' 추임새를 넣는다.
그런데, 말 중간마다 꼭 끼어드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안주를 집어 먹으면서,,,.
“왜? 은행에 무슨 일로 갔다 왔는데”
아니 은행에 은행 일로 가지 사우나 하러 가는 사람 있습니까!
또 개인의 금융거래를 왜 알려고 하는지,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도망갈 뻔한 주제를 겨우 붙잡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번 승진 심사에 문제가 있어,,,”
그 친구 기다렸다는 듯이 또 끼어든다.
“너는 왜 떨어졌다고 생각해!”
이쯤 되면 하소연하는 자리가 아니라 경찰서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기분이다.
같은 말이라도 “이번에 너는 꼭 될 줄 알았는데,,,”
빈말이라도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왜 떨어졌는지 떨어진 사람이 직접 설명을 하란다.
승진에 당연히 떨어질 사람이 떨어졌으니 군소리 말고 반성이나 하란 말인가?
고민을 말하는 사람도 서서히 끓어오르지만 주최자의 입장에서 참는다.
말도 끊기고, 감정도 끊기고, 그래도 사람은 끊지 못해 꾹 참고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한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 친구 첫마디가,
“마음은 이해하는데....”이다.
SBS 다큐멘터리 김상중 씨가 진행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김상중 씨의 “그런데 말입니다”
이 멘트 다음에는 어김없이 반전이 일어난다. 순식간에 선한 얼굴이 범죄자의 얼굴로 변하고 전처가 후처가 되고 사회사업가가 수백 억대의 사기꾼으로 변한다.
‘네 마음은 이해하는데’ 다음의 이야기도 반전이 일어난다.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고, 사람을 너무 믿고 사는 게 문제, 그때그때 불합리한 점을 말하지 않아 문제, 심지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친절하게 지적도 해 준다.
고민을 말한 사람보다, 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사회성 부족이란 방점을 찍는다.
어렵게 고민을 이야기한 사람이 일순간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취급을 당한다.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법까지 어느 정도 결정을 하고 이야기한다. 단지, 이 억울함을 들어줄 사람, 조금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헛말이라도 내 의견에 동조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이 그 사람에게는 격려가 되고 희망이다.
그런데, ‘네 마음은 이해는 하는데’ 다음 말을 듣고 있으면 괜히 말했다는 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차라리 이해를 안 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 알았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안 들은 거로 하자면 또, ‘네 마음은 이해는 하는데’ 그 친구가 말한다.
자기 말 안 들을 거면 왜 이야기를 꺼냈냐고, 이 귀한 시간을 왜 쓸데없이 낭비하냐고, 하면서 화를 낸다.
이 정도 되면 고민을 말한 친구는 오늘 새로운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네 마음은 이해는 하는데”란 친구를 계속 만나야 할지, 아니면 끊어야 할지 참 고민이다.
마음까지 이해했으면 100% 내 편인데,,,